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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게 ACC 관객 참여형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이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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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것은 과연 무게를 갖고 있는 것일까? 기억이라는 것은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성의 시대에 전혀 통용되지 않을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공연이 있다. 바로 지난 5월 4일부터 5월 6일까지 ACC 극장1에서 선보인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이다. ACC와 아시아문화원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5월을 겨냥해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자 2019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 총 연출자, 고선웅씨의 연출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관객 참여형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이 특별한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와 함께 80년 오월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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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드라마는 ‘사실’에서 탄생하기에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5·18을 마주하는 방법, 팩트!
사실이 주는 힘과 무게. 그리고 감동



공연은 ‘1972년 박정희 각하의 독재 시작’이라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1972년부터 시작된 현대사는 ‘1979년 K 공작 실시 주요 언론사 장악’이라는 자막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공연이 초반에 주인공을 등장시켜 설명하고 동화시키는데 힘쓰는 반면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극의 초반이라는 천금 같은 시간을 5·18 민주화운동 이전의 정국을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그렇게 쏟아내는 역사적 사건들은 5·18민주화 운동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데, 이것은 5·18에 대한 왜곡과 비방, 가짜뉴스 판치는 시대에서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만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겠노라’ 라는 선언이자 뚝심처럼 느껴진다. 그 선언처럼 공연은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흐르다 1980년 5월 17일부터는 그해 오월, 광주의 열흘 동안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하루 하루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5월 17일은 시민, 학생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5월 18일은 계엄군에 의한 사망자가 나왔으며, 5월 21일은 비가 오는 부처님 오신 날, 5월 23일은 애국가와 함께 도청 앞 집단발포가 되었다는....이런 식이다. 그렇다. 이 공연은 극이면서도 사실의 기록이고, 사실의 기록이면서도 5·18을 위한 씻김굿이다.

1시간 40분의 공연 동안 연대기 순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지루함 없이 흘러가고, 종국에는 관객들을 공감과 감동으로 인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에 기반 하고 있는, 이 잔인하고 가슴 아픈 모든 일들이 이미 역사의 무대 위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억지 감동을 쥐어 짤 필요도, 이른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며 교과서적인 결론을 낼 필요도 없다. 작위적인 예술의 어법에 함몰되는 우도 범하지 않았다. 영민한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80년 오월 ‘광주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5·18 이야기를 건네는 첫 번째 방법은 그저 사실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다.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다. 80년 그해 오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참혹한 비극을 겪는 동안 광주는 어떠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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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없는 공연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마법 같은 1시간 40분
[나는 광주에 없었다]



주인공 없이 챕터마다 주요 인물들이 릴레이 하는 방식으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그렸던 영화 ‘1987’처럼 [나는 광주에 없었다] 역시 주인공이 없는 연극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한 발 더 나간다. 각 챕터의 주요 인물도 없고 시민군들을 맡은 스무 명에 남짓한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소화한다. 게다가 목포댁, 사진기자, 체대생, 중절모, 남고생 등으로 불릴 정도로 이름도 없다. 그렇다. 이 연극은 ‘열흘 동안의 광주 이야기’, 그 자체가 주인공이고,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무대 자체가 주인공이다. 가로로 긴 무대는 사방이 트여 있고 관객들은 동구/북구/남구/서구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시의 행정구역)로 나눠진 구역에 앉는다. 관객들마저 시민군으로 포섭하겠다는 제작진의 패기가 읽히는 부분이다.

이 패기 넘치는 연극의 야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관객마저도 공연 속에서 집어넣겠다며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극의 시작 부분에서는 ‘민주 인사 석방하라’, ‘휴교령 철폐하라’, ‘계엄령 해제하라’ 라는 구호 아래 계엄군과 대치한 시민 학생들의 소리 없는 군무가 이어지는데 무려 10여 분 간의 소리 없는 군무는 매우 스피디하게 진행되고, 그 긴박함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후 배우들은 관객들의 시위대 참여를 독려하는데 이미 관객들은 시위대의 일원인 듯 빠져들게 된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 안의 모든 생명체가 ‘80년/오월/광주의 열흘’을 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없기에 결국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피날레에 이르는 순간, 공연은 기어이 관객들을 주인공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서서히 극장 1의 빅도어가 열리고 관객들은 공연장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공연으로 80년 오월을 경험한 관객들을 마주하는 빛나는 세상. 이어 커튼콜을 끝낸 배우들이 모두 다시 공연장으로 사라지고 빅 도어가 문을 닫으면, 신록이 가득한 오월 세상에 관객들만 남게 된다. 마치 5·18이라는 연둣빛 새순을 가슴 속에 품은 관객들이여! 이제 당신들은 이 밝은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은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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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마주한다는 것
그 커다란 용기에 박수를!
진실을 담는다는 것
실천을 향한 그 작은 발걸음에 응원을!



1시간 40분 간 휘몰아친 80년 오월 광주의 열흘. 그 시공간을 참여케 하는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편하게 보기는 어려운 공연이다. (바닥에 앉아야 하는) 불편한 좌석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극이 시작되기 전 관객 참여를 유도하면서 하는 당부, ‘역할이 계엄군일 뿐이니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계엄군들이 시민군들을 잡고/ 때리고 / 끌고 가는 모습은 보는 내내 가슴이 덜덜 떨린다. 열흘 동안의 현실이 그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장면이었겠지만 계엄군의 구타는 공연 내내 반복된다. 이미 시위대로 감정이입한 관객들은 저 진압봉 아래 구겨진 인물이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소름이 돋는다. 한 발에 한 명씩 쓰러뜨리는 총탄 소리가 열다섯 번이나 이어지는 동안 오금이 저린다. 공연 제목처럼 ‘광주에 없었는데도’ 계엄군과 80년 5월 광주는 공포 그 자체다. 아프고 두렵고 살이 떨린다. 이토록 우리가 ‘어떠한 사실’을 가감 없이 마주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배우와 창작진들이 매번 연습을 마칠 때마다 다 같이 외쳤다는 구호, ‘뼈에 아픈 이야기이지만 극복하고 영광스럽고 행복하게 합시다’의 무게감을 1%라도 알 것 같아 마음이 기어코 울컥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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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예술극장 앞마당에 남겨진 사람들은 한참을 서성이다 두 곳으로 흩어진다. 한 무리는 메시지를 남기는 쪽으로 가고, 또 한 무리는 공연장 앞에 전시된 오월 책을 둘러보러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은 가슴에 담겨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우리의 발걸음을 이끈다. 누가 기억에 무게가 없다 하는가? 누가 기억의 형태가 없다고 하는가? 만약 기억에 무게와 형태가 없다면 사람들이 메시지를 남기게 하고 오월의 책을 들춰보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인가? 또 [나는 광주에 없었다]를 본 후, 이 공연을 떠올릴 때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무엇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광주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광주에 없었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것이다. 80년! 오월! 지금처럼 푸르디 푸른 해방 광주를!




  • . 최민임 samagg@hanmail.net
  •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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