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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저자 김형중 에세이 북콘서트 광주의 기억圖


이슈&뷰

광주_ 유년의 기억圖 · 성년의 기억圖



한 사람이 광역 의미의 한 장소에서 50년 이상을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실제 이 책의 저자는 송정리(당시 광산군)에서 태어나 군대를 갔던 물리적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 곳 이곳 광주 안에서 먹고 자고 사색하며 경제활동을 했고 현재도 광주 안에, 광주사람으로 불리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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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토) 평론가K의 북 콘서트가 있었다. 2만원의 참가비로 개인이 직접 신청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음에도 제법 좌석이 꽉 찼다. 진행 오픈 시간도 정확했다. 간간히 웃음도 터져 나왔다. 책 내용처럼 시니컬하고 건조할 것이란 생각은 콘서트를 진행하는 동안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음악콘서트가 삶의 한 때를 휴식으로 제공해준다면 북 콘서트는 넉넉하면서 불끈 치솟는 지적 자유로움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뭔가 뿌듯함으로 채워진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낮처럼 밝았다. 6월의 초입이었고 하지가 가까워지고 있는 6월이었다.

책 속의 K와 현실의 저자 김형중



특별한 책이었다. 책 표지를 감싸고 있는 외관포장재는 광주의 지도, 다시 말하면 평론가 K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던 광주의 길과 방문했었던 장소가 그려져 있었다. 저자인 김형중은 자신의 자서전 격인 내용이라고 K를 지칭했다. 단지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심층 들여다보기 위해 K란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고 자신의 내밀함을 K를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거울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타자인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K의 시선을 따라 책을 읽어가며 눈으로는 K를 읽고 발은 그를 따라 걸었다. 살(肉)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 묘지까지가 K가 걸었던 광주 안의 길이고 장소였다. 광주의 굵은 선을 따라 이어폰을 꽂은 채 따라 걸었다. 그의 귀를 통과한 이어폰 속의 음악은 내 마음 안으로도 망설임 없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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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사명감을 가지고 광주걷기를 한 K는 스스로를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편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움직임이 없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도 잦다. 철학관련 서적을 좋아하고 시시한 국제시장 따위의 영화를 보다가도 울고 봄에 비가 오면 일을 하지 못하는 민감한 사람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으며 몇 년 전 품 안에 들어온 니콘 카메라를 들고 유년시절의 풍경과 흡사한,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은 낡고 허름한 곳을 촬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삼인칭 K와 김형중은 등뼈가 붙어있는 샴쌍둥이 같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샴쌍둥이가 서로를 마주 볼 수 없다면 K와 저자인 김형중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형중은 K를 빌어 고백하듯 자신의 내밀한, 절대 지인 말고는 알 수 없을 유년시절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예를 들면 송정리에서 살았던 자신의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다리를 절고 있는 형의 무게가 귀찮아서 자전거에 태워주기 싫었다거나, 아버지의 가난이 죽도록 싫었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생 불가한 책방을 하고 있는 아들을 찾아와 조용히 영화를 보고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그것이다. 물론 K가 소환한 옛이야기들이 현재의 김형중과 정확하게 들어맞을 거라는 생각을 접으면서도 못내 사실일 것만 같게 만들어버리는 K의 이야기들이다.

3인칭 K는 살아 움직였다



적어도 K는 매우 인간적이었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핑계를 굳이 찾아내고, 1980년 5월이나 1987년 6월 즈음에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거리를 내달리며 날아가고 던지던 돌들과 불타오르는 화염병을 기억한다. 내년이면 불혹의 나이로 기록될 금남로가 갖고 있는 절대 공동체의 자장 밖으로 나갈 수 없고, 가망 없음을 직관으로 알면서도 책방을 열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이 모든 것들을 K는 이렇게 단정했다. 단정하려고 했다. 적어도 이 핑계를 대면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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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역시나 기차가 문제였다. 송정리라는 소읍 자체가 기차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먼 도회지로 떠나는 새벽 기차의 고동소리가 소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도 기차가 문제였다.”(p31)

어린 K의 세계는 기찻길 이편과 저편으로 갈렸다. 지금이 아닌 다른 곳, 현재 관계하고 있는 것이 아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눈길과 마음은 자꾸 기차를 탔고 저편을 향했다. 토요일 밤의 K는 명화극장을 감상했고 한 발 떨어져 현실을 냉소하고, 한 밤중 잠을 설친 K가 모친이 내다 놓은 덜 식은 연탄 위에 소변을 보다가 이상한 조바심 속에서 사정을 한 것도 모두 기차 고동 소리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학업을 위해 광주로 오면서 모두 잊었다고, 옛 기억마저 잊었다고 생각한 K였지만 윤대녕의 ‘빛의 걸음걸이’란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옛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서른이 넘은 화자가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일들인 하루를 기록한 윤대녕의 소설은 빛의 움직임에 따라 집의 구조를 따라가면서 현재와 과거, 기억과 현실을 담담하게 써내려 간 내용이었다. K 역시 소환한 기억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현실과 과거의 풍경을 엮어간다. 이렇게 소년이었던 K는 어른이 되었다. 혼자서도 소주를 마시는 염세적인 화려한 어른이 되었다.

K는 떠나고 저자 김형중은 광주에 남았다



귀에는 늘 이어폰이 있었다.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K는 음악에서 유일한 위안을 얻었다. 아니다. 귀를 통과한 음악마저도 매우 우울하고 염세를 재촉했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산책하면서 느릿한 걸음걸이로 광주 곳곳의 장소성을 탐닉하면서 음악은 장소보다 먼저 K를 안내하며 끌어당겼다. 반복적으로 들으며 걷는 걸음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다름없었다.

자주 기억의 저편과 현실의 이편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유년의, 청년의 K와 자주 부딪혔다. 금남로에서, 양림동에서, 광주극장에서, 우치동물원에서, 대인시장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K는 과거와 현재를 허둥거리며 또는 완곡하게 확신하며 만나고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K가 찾았던 곳은 묘지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신묘역 민주의 문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발길을 돌린 구묘역의 초췌함에 오히려 편안하게 마음을 다잡는다. 영락공원에서 먼저 간 형을 추억하며 자전거를 태워주지 않으려 했던 유년의 K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미 어른이 된 K가 유년의 K에게 오랫동안 등에 얹혀있던 무거운 자전거와 다리를 절었던 형과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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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이 책에서 사족처럼 ‘장고에게’라는 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찾은 묘지인 영락공원을 언급하면서였다. 조금만 부지런히 원고를 마무리했다면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피해갈 수도 있었던 죽음이라는 뼈아픈 후회였다. 분명 K의 ‘장고에게’를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전혜린이 장 아제베도에게 살고 싶다고 자신을 살게 해달라고 보냈던 구원의 편지를 읽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K가 아버지에게 장고처럼 멋지게 살아 돌아와 자신을 구원하고 지켜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읽는 동안 그 어떤 추억의 장소보다 아팠다. 점점 더 아파졌다.

‘비길 수 없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일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 ‘장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살게 해줘.’_ 첫 번째 편지·장 아제베도에게·전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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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광주의 속살을 만지고 냄새 맡고 걸었다. 기억을 소환했고 유년의 K로 돌아가 달리고만 싶었을 형을 만났다. 영원한 장고이길 바라며 아버지도 만났다. 화염병을 들고 내달리던 청년의 K도 지켜보았고, 여전히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대학교수가 된 K도 마주보았다. 그리고 K는 원래의 자리였던 전국의 서점으로 복귀했다. 다시 북 콘서트가 진행 중인 현장에 나는 앉았고 저자인 김형중은 무대 위, 빛나는 조명 아래서 울렁울렁 객석을 향해 말한다. ‘평론가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 . 범현이 baram8162@nate.com
  •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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