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밴드는 관계적 미학을 향한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를 실험하는 2인조팀이다. 이들은 관객들의 참여와 관계형성을 위해 공연성과 상호작용성을 작업에 적용하고, 관객은 때때로 작품의 적극적인 개입자로서 혹은 일시적 사건에 개입되는 관찰자로서 사건에 초대된다.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는 살아 있을 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항상 전 세계의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에겐 다이애나 왕세자비처럼 주목받는 존재가 되고픈 마음이 있다. 또 다른 다이애나도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1908)에 나오는 앤 셜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다이애나 배리다. 고아 출신이면서도 꾸밈없고 열정적인 앤과 달리 다이애나는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포기하고 보수적인 부모의 뜻을 따르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소심한 다이애나 배리의 모습도 인간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일면이다. 그런데 이런 다이애나들의 양면성을 생각하며 의기투합한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작가 신원정과 이두호가 그들이다. 판화,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한 신원정 작가와 전자전기컴퓨터공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이두호 작가는 예술과 공학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을 토대로 2011년 네덜란드 유학 중에 ‘다이애나밴드(dianaband)’라는 팀을 결성했다. 그들은 예술을 매개로 한 ‘소통과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를 작업의 주요 방향으로 삼았고,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관계들이 펼쳐지는 밴드 활동을 기대했다.




(사진1-1, 1-2) <종이 피아노 Paper Piano> Object International Art fair, Rotterdam, 2011



다이애나밴드는 각자의 특기를 잘 융합해 네덜란드에서 흥미로운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종이처럼 가벼운 물질에 변화를 주어서 다른 사물로 만드는 작업에 매력을 느꼈는데, <종이 피아노 / Paper piano>(2011)가 그 출발점이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관객이 종이에 그려진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피아노 건반 아래에 깔린 밑바탕이 되는 종이에 전도성이 있는 니켈 스프레이를 뿌려서 전기회로를 만들고 소형컴퓨터 칩이 내장된 소리발생기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사진1-1, 1-2)

<종이 피아노>처럼 종이 회로를 이용한 작업 방식은 보다 발전된 형태로 <링링레인 / ring, ring, rain>(2011)에 구현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은 벽에 붙어 있는 가로 2.7m, 높이 1.2m의 큰 종이를 보게 된다. 그 종이 벽엔 비가 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점자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물방울들이 빗줄기 마냥 상하로 줄지어 있다. 관객이 이 빗방울들을 만지면 다양한 빗소리가 들리고, 악기를 다루듯이 손을 움직일수록 빗소리는 독특한 선율로 변한다. <링링레인>은 관객들에게 손끝으로 벽을 만지며 다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비 오는 날의 감성을 동시에 소환한다. 이 작품은 관객들의 호평으로 유럽 곳곳의 전시회에 초대되기도 했다. (사진2-1, 2-2)



(사진2-1, 2-2) <링링레인 ring, ring, rain> Netherland Media Art Institute, Amsterdam, 2011



다이애나밴드가 네덜란드에서 발표한 또 다른 작품으로는 <포겟 더 랜드 / Forget the Land>(2012)가 있다. 소설 제목을 차용한 이 작품에서도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소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이애나밴드는 ‘호투스’라는 암스테르담 식물원에 자신들이 제작한 4가지 종류의 종이마스크를 설치하여 관객들이 체험하도록 만들었다. 방독면을 연상시키는 이 종이마스크에는 마이크와 프로그래밍이 된 소형컴퓨터 칩이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이 종이마스크를 착용한 관객이 말을 하거나 숨을 쉬면 그 소리의 강약에 따라 아코디언, 피리, 플루트 같은 다양한 악기들의 음색으로 변환이 된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말소리나 숨소리가 예상치 못한 선율로 변하는 것을 듣고 자신들의 육체를 낯설게 느끼면서 언어가 사라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전시회 중에 식물원의 숲으로 건너가는 다리에서 종이마스크를 쓴 공연자들이 즉흥극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 다리 위의 퍼포먼스는 땅을 잊고 다른 세계로 건너간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종이마스크를 통해 육체를 잊고 다른 감각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을 은유하기도 한다. (사진3-1, 3-2, 3-3)




(사진3-1, 3-2, 3-3) <포겟 더 랜드 Forget the Land> The Institute of Dirty Horticulture, Amsterdam, 2012



이제까지 살펴본 작품들처럼 다이애나밴드는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소리를 중심에 두고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왜냐하면 다이애나밴드는 인간의 공통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소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형상이 놓이게 되면 그 형상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든데 비해, 소리를 들려주면 사람들 각자가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일련의 작업들을 마친 후 다이애나밴드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다이애나밴드는 자신들의 느낌을 소리뿐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물의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을 보여준 작품으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에서 선보인 <사물행진>(2015)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보행기와 북, 종과 수레, 탬버린과 조명, 링거 거치대와 확성기, 줄자와 가방 등이 등장한다.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선호한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처럼 일상적인 사물들을 닮은 조형물들이 낯설게 결합되어 있다. 관객들은 이것들을 움직이며 체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관객이 확성기와 컴퓨터가 설치된 가방을 메고 가방과 연결된 줄자를 뽑으면 소리가 난다. 줄자의 몸체에 회전측정센서가 달려 있어서 줄자를 길게 뽑을수록 고음이 나오고, 짧게 뽑을수록 저음이 나오게 되어 있다. 관객들은 다이애나밴드가 새롭게 만든 사물들을 공유하면서 이 사물들이 내는 소리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연주한다. 아날로그적인 형체와 디지털 기술이 혼합된 사물들의 행진에 관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셈이다. (사진4-1, 4-2)




(사진4-1, 4-2) <사물행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5



‘소통과 상호작용’이라는 문제를 고민해온 다이애나밴드는 2015년 ACC의 액트 페스티벌(ACT Festival)에서 <손에폰잡고-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했다. 공유 가능한 사물로서 스마트폰에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고성능 스마트폰 사용이 이미 일상화된 상황을 이용한 작업이었다. 다이애나밴드는 워크숍 참여자들에게 각자의 스마트폰을 가져오라고 하였고, 여기에 스피커 역할을 하는 총구를 연결시켰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총을 쏘듯이 소리를 발사하는데, 이때 각자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는 다른 사람들의 스마트폰에서도 함께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런 놀이형식의 작업은 참가자들이 오픈된 사운드앱을 로컬네트워크로 공유함으로써 가능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연결된 네티즌들이 사회적 쟁점에 따라 연대하는 방식을 닮은 것이다. (사진5-1)




(사진5-1) <손에폰잡고-워크숍> ACT Festival, ACC광주, 2015



<손에폰잡고-워크숍>에서 실험한 방식은 2017년 안산국제거리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안산순례길-시티즌밴드2>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선보였다. 100여 명의 사람들이 안산순례길을 다섯 시간 동안 함께 걸으면서 여러 예술행위들을 경험했는데, 그중에 하나로 다이애나밴드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스피커’라는 개념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정한 웹페이지에 접속하여 서로 연결된 스마트폰들이 스피커 장치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웹으로 연결된 스마트폰들은 안산순례길에서 귀뚜라미, 공 튀기는 소리, 악기 소리 등을 공유하였고, 참가자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하면 다른 사람들의 스마트폰에서도 같은 음이지만 각자의 소리가 나오도록 하여 합창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다이애나밴드가 고민해온 ‘소통과 상호작용’의 문제가 인간의 감각을 공통적으로 자극하는 소리에서 사물의 공유로, 또 사람들의 사회적인 연대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6-1)




(사진6-1) <안산순례길-시티즌밴드2> 안산 국제 거리 축제, 안산, 2017



ACC에서 공동작업을 준비 중인 다이애나밴드는 이제 첨단 스마트폰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처럼 통신, 사진, 영상, 음악과 관련된 기능들이 모두 통합된 디지털 장치로 인해 사람들 각자의 취향이나 기호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일깨우는 단순한 기계 장치를 제작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른바 ‘소리의 장소를 기억하는 녹음기’인 ‘SMP(Sound map player)’이다. 복고적이면서도 새로운 이 개인용 기계장치를 이용해 사람들은 원하는 소리를 채집할 수 있는데, 이때 지피에스(GPS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 장치가 소리의 장소, 날짜, 시간을 기록하게 된다. 자극적인 시각 정보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정보와 함께 소리만 집중해서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녹음기인 셈이다. 다이애나밴드는 이 녹음기를 4종류의 디자인으로 제작하여 현장에서 채집된 소리를 전시회에서 들려줄 계획이다.

다이애나밴드의 상상력은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디지털 매체 및 여러 기술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그들은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를 중심으로 시각, 촉각과 같은 개인적인 감각을 넘어 사물의 공유와 사람들의 공동체적 행위의 영역까지 자극하는 공감각적인 작업을 한다. 다이애나밴드의 작업은 개인의 감성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예술이 어떻게 자극하고 소통시키는지 보여준다. 이는 자연과 인간 사회 속에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융합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다이애나밴드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