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무작위성을 향한 창조 : 미디어아티스트 김유석












김유석 작가는 숭실대학교 미디어학부 석사, 박사 수료의 과정을 통해서 미디어에 대해서 폭넓은 교육을 받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한 미디어아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 지각, 감각에 기반한 소통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보다 근원적인 물음인 우연성과 무작위성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지닌 차가운 속성과 비물질적인 것에서 비롯된 공허함과 흥미, 효과 위주의 자극적인 방식을 지양하며 따듯하고, 감성적인 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회화작가(오택관)와 ‘오와김’으로 활동하며 회화와 미디어의 융합을 연구하고 있으며, ACC레지던시(팀 : 박성민, 김정은)를 통해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과 키네틱 요소를 탐구하고 있다.







사진1. [Cyclone] wood, polycarbonate, fan, arduino, servo, etc, 1.5m x 1.5m x 2.5m, 2018



회오리바람이 일어난다. 무수한 작은 알갱이들이 바람을 타고 돌며 공중으로 치솟는다. 그러다가 다시 가라앉아 이리저리 흩날리며 떠돈다. 투명한 창으로 이루어진 육각형 구조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마치 끊임없이 운동하는 소립자들 같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태풍의 움직임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김유석 작가가 2018년 개인전에서 발표한 <사이클론 Cyclone>이라는 작품이다(사진1). 이 작품은 통 속의 공기 흐름을 적당히 제어시켰을 때 발생하는 작은 구슬들의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김유석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다 갔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왜 김유석 작가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을까@f26 아마도 인간들이 신비한 자연현상을 마주쳤을 때 느끼는 매우 근원적인 경외감 같은 것을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경외감이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이다. 질서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진 2. [Blind sound] Speaker, Motor, etc 50cm x 50cm, 2013



현재 김유석 작가는 우주의 무작위성과 우연성에 관심이 많다. 무작위성과 우연성이 자연과 인간세계의 본질적인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그는 인간의 감각, 사물의 변화, 상호 소통의 문제들을 작품에서 다루었으나 점차 무작위성이나 우연성과 관련된 작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의 초기작부터 되돌아보면 그 흐름을 알 수 있다.

유년 시절부터 컴퓨터, 음악, 미술 등을 좋아했던 김유석 작가는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하면서 공학과 예술 분야를 함께 접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미디어아트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운드아트 랩’ 활동을 하면서 음으로 표현하는 세계를 알게 되었고, 박사과정 중에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무대기술과 미디어아트를 융합하는 작업도 수행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김유석 작가는 본격적으로 전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작은 <블라인드 사운드Blind Sound >(2013) 라고 할 수 있다(사진2). 소리가 빛처럼 뻗어 나가는 지향성 초음파 스피커 위에 접시가 서서히 왕복 회전운동을 한다. 접시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반사하여 여러 방향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전시장에 입장하는 관람객은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귀 바로 근처에서 발생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관람객은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확인하려고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의 시각과 청각을 속이는 작업이며,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의 감각에 대해 반추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 3. [Breath] Mixed Media, Led, Motor, Sensor, 40cm x 40cm, 2014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초기작은 <숨Breath>(2014)이다(사진3). 이 작품은 숨 쉬는 허파를 보여준다. 허파는 가만히 있다가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점점 숨을 가쁘게 쉰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긴장하는 순간을 보는 듯하다. 김유석 작가는 사람들의 표정, 몸짓, 언어 외에도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인체 내부의 장기도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어쩌면 인간의 장기가 감정에 가장 솔직히 반응하는 매개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작품의 일부인 허파는 3D 프린터로 형태를 만들고 실리콘을 씌워서 질감을 살렸고, 허파 아래로는 공기 펌프와 조명을 설치하여 허파가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숨Breath>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방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사진4. [Between light and shape] paper, light, micro controller, 3m x 2m, 2014



인간의 감각과 소통의 문제들을 다루던 김유석 작가는 점차 시각적인 형태의 변화와 빛의 움직임에 관심을 두게 된다. 2014년 중국 사천예술대학에서 전시된 작품 <빛과 형태 사이에 Between Light and Shape>는 그런 관심의 변화를 보여준다(사진4). 이 작품은 규칙적인 패턴으로 만들어진 부조 같은 종이 구조물과 주변의 조명들로 이루어져 있다. 좌와 우 그리고 바닥에 설치된 조명들은 번갈아 가며 종이에 빛을 비추고, 빛의 위치나 밝기에 따라 종이의 패턴들은 애니메이션처럼 연속적으로 형태의 변화를 일으킨다. 옵아트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우리가 형태를 인지하는 데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빛이 변하면 형태도 변한다는 것은 만물의 핵심적인 양상이다. 그 양상이 시각을 자극하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진 5. [Collective windy light] led, fan motor, etc, 5m x 4m, 2016



빛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은 2016년작 <집단 풍등 Collective Windy Light>으로 이어진다(사진5). 목걸이 선풍기를 고쳐서 만든 드론들이 여기저기 줄에 매달려 빛을 뿜어낸다. 그 드론들은 자체의 바람을 동력 삼아 UFO마냥 자유롭게 움직인다. 더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각각의 드론들은 서로 내뿜는 바람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욱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행로를 보여준다. 작가는 드론을 매달았지만 드론의 움직임은 작가의 계산을 벗어난다. 김유석 작가는 드론들의 움직임이 집단지성에 참여하는 지능을 갖춘 개체들의 모습이라고 상상했다. 그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무작위적인 현상이 우주와 인간사회의 모습을 닮지 않았냐고 넌지시 질문한다.





사진6. [Viewpoint] camera, motor, wood, sand, etc, 3m x 3m, 2017 (collaboration with Park YuJin)



대청호미술관에서 전시된 <시선 Viewpoint>(2017)에서는 상호소통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사진6). 이것은 관객참여형 영상설치작업인데, 전시장 중앙의 카메라 3대에 잡힌 영상을 3곳의 벽면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관람객은 카메라 앞에서 색실이 묶인 나뭇가지들을 꽂거나 재배치한다. 카메라에 비친 영상 속의 나뭇가지들은 숲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숲밖에는 인간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관람객은 숲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영상을 통해 숲을 만드는 과정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숲속에서 숲 밖을 보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은 자연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에 관여하는 인간의 힘을 자연의 시선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 김유석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센서에 반응하는 기계적인 상호소통 방식의 미디어아트가 아니라 작업 속에 관람객들이 동화될 수 있는 간접적인 소통방식의 미디어아트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사진7. [Random box] transparent Screen, styro ball, fan, 50cm x 50 cm x 180cm, 2017



앞에서 설명한 여러 작품들을 거치면서 김유석 작가의 관심은 자연이 보여주는 순수한 무작위성에 모아졌다. 그래서 제작한 작품이 <랜덤박스 #3 Random Box #3>(2017)다(사진7). 이것은 말 그대로 무작위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상자다. 특이한 것은 무작위적인 현상을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가지 방식으로 동시에 보여준다는 데 있다. 박스 앞면은 디지털 영상이 뜨는 투명모니터로 되어 있는데 여기엔 색색의 동그라미 무늬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킨다. 박스 안에는 수많은 스티로폼 구슬들이 쌓여 있다. 다양한 색상의 스티로폼 구슬들은 박스 위쪽에 설치된 환풍기의 영향으로 위로 솟구쳐 오른다. 디지털 화면의 추상적인 원형 무늬의 움직임과 아날로그적인 입체 스티로폼 구슬의 움직임이 교차하며 예측불허의 양태를 연출한다. 김유석 작가는 이러한 혼돈의 와중에 우연히 규칙적인 움직임이 형성될 듯하다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무작위성의 아름다움을 본다. 이 랜덤 박스의 작업 방식은 서두에 소개한 작품 <사이클론 Cyclone>으로 이어졌다.

김유석 작가는 앞으로도 자연의 속성인 알 수 없는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깊이 연구하여 미디어아트로 표현할 계획이다. 그는 단순히 기술적 효과에만 의존적인 차갑고 건조한 미디어아트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최소한의 기술만 이용하여 따뜻하고 감성적인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는 최근 ACC 레지던스에서 2명의 작가들과 협업을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소리를 내는 장치를 만드는 작업이다. 기둥 형태의 그 장치에는 현이 설치되어 있는데, 자동적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발생시킨다. 이 작품에서도 소리들이 자유롭고 무작위적으로 퍼져나간다. 김유석 작가의 무작위성을 향한 실험적인 작업들이 전인미답의 창조적인 길을 보여줄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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