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2019 ACT 크리에이터스인랩 쇼케이스 < Art & Science >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크리에이터들


레지던스

ACC에서는 여러 레지던스 프로그램 중 하나로 2015년부터 ACT(Art & Creative Technology) 크리에이터스인랩(Creators in Lab)을 운영하고 있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뉘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연구자 등이 참여하는데, 그들에겐 주로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ACC 의 크리에이터스인랩은 미래지향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협업하고 교류하는 국제적인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크리에이터스인랩에 참여한 예술가와 전문가 들의 프로젝트 결과물은 ACT페스티벌과 쇼케이스로 관객들에게 소개되어 왔다.

이번에는 ‘아트 & 사이언스(Art & Science)’라는 주제 하에 지난 2019년 12월 5일부터 15일까지 쇼케이스가 개최되었다. 이 쇼케이스는 하반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곱 명의 크리에이터들(마이클 휘틀, 문준용, 언해피서킷, 정문열, 정지연, 제레마야 타이펜, 캣 스콧)이 연구하고 제작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여러 분야의 학문과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대중적인 소통을 고민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는데,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탐구와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융합된 작품들은 저마다 미래지향적이고 가치있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ACT 스튜디오에 전시된 일곱 개의 작품을 하나하나 만나보자.

이미지 설명
(사진1) 문준용 <그림자 증강현실 테스트(가체)> 인터렉티브 설치, 조형물과 그림자로 구현한 증강현실, 컴퓨터, 프로젝터, 위치추적 센서와 LED를 활용한 맞춤제작 전자장치, 맞춤제작 소프트웨어, 2019

먼저 ACT 스튜디오3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문준용의 <그림자 증강현실 테스트(가제)>가 설치되어 있다(사진1). 전시장에는 공중에 매달아 놓은 사각형 액자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데, 그 액자 안에는 나무 형상이 하나 또는 두 개씩 들어 있다. 이런 나무 형상이 있는 액자들은 중앙에 놓인 손전등 같은 기구 때문에 사방 벽에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관객은 이 손전등 같은 기구를 들고 움직이며 작품에 개입할 수 있다. 관객이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액자들을 비추면 빛의 각도에 따라 액자의 그림자들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흥미로운 점은 그 그림자들이 단순히 액자 안의 나무 윤곽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액자 안에 없는 사슴, 새 같은 동물 형태의 그림자까지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손전등이 단순한 조명 기구가 아니라 증강현실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기기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처럼 현실과 상상이 더해진 그림자 놀이를 하며 관객들은 시적인 환상을 경험한다. 문준용 작가는 이와 유사한 작업을 2010년부터 해오고 있는데, 자신이 창안한 그림자를 이용한 증강현실을 ‘Augmented Shadow’라고 명명했다.

이미지 설명
(사진2) 정지연 <마디 바람> 키네틱 사운드 설치, 스테인리스 스틸, 전자 장비, 오간자, 2019

문준용 작가의 작품 옆에는 정지연의 <마디 바람>이 전시되고 있다(사진2).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8미터에 달하는 날개 형태의 조형물과 거기서 울려 나오는 독특한 음향 그리고 날개 조형물을 감싸듯이 길게 걸려 있는 수많은 반투명천들 때문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이 <마디 바람>은 지난해 ACC 복합 1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 정지연 작가는 2018년 하반기 프로그램에 이어 2019년 하반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여 날개 조형물의 완성도를 높였다. 날개 조형물의 특징은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마디마디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디’는 경계 지점에서 다른 것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마디마디 연결된 커다란 날개가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미가 작품에 함축되어 있다. 커다란 날개는 마디 바람을 일으키며 신비한 음향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 음향은 전시 작품을 위해 따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재질의 날개가 진동하면서 내는 소리를 특수한 장치를 통해 확대시킨 것이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사진3) 제레마야 타이펜Jeremiah Teipen <시공간 개입> 종이, 목재, 4채널 영상 프로젝션, 거울, 2019

ACT 스튜디오2에는 다섯 개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이 미국 작가 제레마야 타이펜의 <시공간 개입>이다(사진3). 목재와 종이로 만든 반구 형태의 입체작품 2개가 천장과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데, 반구 형태 구조물 안에는 구 형태의 거울과 빔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360도로 영상이 투영되고 있다. 그 영상은 작가가 광주에서 촬영한 다양한 풍경들이다. 작가는 외부에서 온 낯선 종(種)이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처럼 자신의 작업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개입하여 전혀 다른 시각을 유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반영하듯 반구 형태의 입체작품은 다양하고 복잡한 면을 가진 현실의 시공간처럼 다면체를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한 조각과 디지털 기술로 제작한 영상이 새로운 형식으로 결합되어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사진4) 정문열 <소리의 나무> 광섬유, LED체인, 아두이노, 적외선 센서, 미니 PC, 2019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면 정문열의 <소리의 나무>가 설치되어 있다(사진4). 전시공간 중심에 빛을 발하는 광섬유들이 가득 매달려 있고 묘한 음향이 흐르는데, 작가는 관객이 그 광섬유 숲을 통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작가는 광섬유 숲을 ‘소리나무’라는 일종의 사이보그로 보고, 생명의 원천인 자연과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소리나무는 영화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2010)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은 신비한 나무인 소리나무에 그들의 꼬리를 연결하여 자연과 소통하고 조상과 교감하기도 한다. 정문열 작가는 지난 20년간 과학 기술 연구 개발을 하면서 과학 기술 속에 숨어 있는 신비로움을 표현해왔는데, 특히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자연과의 교감 능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작업을 해왔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사진5) 마이클 휘틀 Michael Whittle <정물> 드로잉과 액자(종이에 잉크, 연필, 수채), 혼합 매체 설치(알루미늄 장치, 디지털로 인화한 블라인드). 2019

정문열의 작품을 뒤로 하고 전시공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미로 구조물이 보인다. 영국 출신의 작가 마이클 휘틀의 작품 <정물>이다(사진5). 이 작품은 작가가 이제까지 다루어온 다양한 이미지들을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작업 과정에서 제작되는 각종 아이디어 스케치, 드로잉, 조각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 이미지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블라인드에 인화되어 미로의 벽으로 설치되었다. 블라인드에 새겨진 이미지들은 미지의 문양이나 상형문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로 인해 미로는 낯선 이미지들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이 미로 구조물은 고정되어 있지만 블라인드 벽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블라인드의 개폐를 조작해 최대 50만개에 가까운 새로운 경로의 미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미지 설명
(사진6) 언해피서킷 <A Letter Across the Stars>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를 위한 전파망원경 관측 데이터 오디오-비주얼라이제이션, 다채널 프로젝션 맵핑 및 입체 음향 시스템, 2019

마이클 휘틀의 작품 건너편에는 언해피서킷의 <A Letter Across the Stars>이 있다(사진6). 커다란 전시벽면을 가득 채운 영상과 특이한 음향이 전시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언해피서킷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주도한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프로그램(SETI)’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이 탐사 프로그램은 우주에서 온 각종 전파의 주파수를 분석해 지적 생명체가 보낸 메시지를 찾아내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언해피서킷은 SETI프로젝트를 통해 수집된 전파망원경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다음 이를 시각적, 청각적 작업으로 번역했다. 수많은 디지털 픽셀 이미지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영상은 전자 음향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키며 수직 또는 방사 형태를 이룬다. 언해피서킷은 전시장의 관객들이 외계 신호를 기다리며 미지의 존재 가능성을 교감하고, 나아가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길 기대한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사진7) 캣 스콧 Cat Scott <내면의 지평선> 지향등, 사운드, 전자기기, 유압식 기계, 밸브, 에어 컴프레서,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스틸, 튜브, 고무, 글리세린, 2019

관람 동선의 마지막에 이르면 영국 작가 캣 스콧의 <내면의 지평선>을 만날 수 있다(사진7). 어두운 전시장 중앙에는 반구형 유리통 같은 것이 빛나고 있는데, 그 반구형 유리통 안에는 수족관처럼 물이 가득 차 있고 기포들이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관객들은 반구형 유리통 주변을 맴돌다가 점차 이 물건의 쓰임새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반구형 유리통 안으로 관객 한 사람이 얼굴을 밀어 넣고 모종의 체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면 마치 유리 어항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금 더 오래 서 있으면 특수한 잠수복을 입고 어두운 심해 속을 헤매는 느낌도 든다. 아니 어쩌면 미지의 우주를 떠도는 느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궁 내 양수 속에서 숨 쉬는 태아의 느낌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과학자, 기술자 등과 협업을 하며 뉴미디어 설치작업을 해오고 있는 캣 스콧은 관람객에게 평상시에 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2019년 하반기 크리에이터스인랩 쇼케이스는 예년보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이는 크리에이터스인랩 프로그램의 운영이 조금 더 매끄러워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앞으로 크리에이터스인랩 프로그램이 더욱 발전하고 활성화된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창의적인 작품들을 쇼케이스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 상반기 쇼케이스에서는 어떤 작품들을 선보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 백종옥 icezug@hanmail.net
  • 사진. ACC 제공

다시보기

환상이 자라나는 그림자 세계

April, 2020

시대의 징후, 불안을 드러내는 회화

March, 2020

ACC 레지던스 프로그램, 어떻게 운영되나?

February, 2020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크리에이터들

January, 2020

음식문화에 어린 고려인의 삶과 역사

December, 2019

패션 디자이너 서수진

November, 2019

유휴공간에서 피어나는 공공예술

October, 2019

디자이너 문경나

September, 2019

큐레이터 조주리

August, 2019

미디어아티스트 언해피서킷

July, 2019

구독하기 팝업 타이틀
이메일 주소 입력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

1. 이용목적 :  '웹진 ACC' 발송
2. 수집항목 :  이메일
3. 보유기간 :  '구독 취소' 시 이메일 정보는 삭제됩니다.
4. 동의여부 :  개인 정보 수집 동의 후 '웹진ACC'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웹진ACC' 발송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통해서도 '웹진ACC'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