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이라는 단어는 영어 ‘international’을 번역한 단어다. 일본인들이 제작한 단어다. 근대화 이후 서양으로부터 새로운 물건들과 사상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아시아 근대화의 기수 역할을 해왔던 ‘막말명초’ 일본의 지식인들은 번역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학교, 은행, 국가, 가족, 자동차 등 대부분의 일상적 단어들도 그때 만들어졌고,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국제라는 단어도 그러한 트렌드의 결과물이다.
나도 이참에 단어를 하나 제작하려고 한다. 광주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한 지방이다. 귀주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한 지방이다. 광주와 귀주 사이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표현할 것인가? 현재 영어사전에는 ‘interlocal’이란 단어가 등재되어 있지 않다. 국가 사이의 현상을 인터내셔널 즉 국제라고 했으니, 지방 사이의 현상은 “인터로컬” 즉 방제(方際)라고 이름해야 할 것이다. 중심부-주변 주의 구도는 더 이상 작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독재 시대의 유산이다. 실제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로컬(지방)에 있다. 서울도 지방이고, 진도도 지방이다. 중심이란 것은 상상적인 존재일 뿐이다. 무엇이든지 간에 삶에 관한 한, 그것은 지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자연스럽다. 그래서 나는 방제라는 단어가 필연적으로 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광주라는 지방에서 코딜레라라는 필리핀의 지방과 관계를 맺을 경우에 사용될 수 있는 개념적 구도가 방제이다. 방제를 생각하는 한, 중심을 설정할 필요도 없고, 중심을 설정할 필요가 없으면, 헤게모니란 것도 필요 없고, 헤게모니가 필요 없으면, 권력 관계가 형성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방제란 현상은 지극히 호혜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표현이다.




<그림 1> 필리핀 코딜렐라의 계단식 논



뉴기니아 산간으로부터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산악지대 그리고 대만의 고산지대는 일련의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복장제, 문신, 목 자르기, 조개 장식 등, 문화 영역설을 빌리면 이 일대는 하나의 문화영역을 구성하는 셈이다. 이름하여 오스트로네시안 산악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코딜렐라는 30종이 넘는 종족집단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이푸가오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산의 숲에서는 멧돼지를 비롯한 동물을 잡고 산기슭은 모두 논이다. 숲이 저수지 역할을 한다.
그곳에서는 쌀이 주식이고, 곡신이 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에 무당과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제를 지낸다. 가운데 있는 목각 상이 곡신의 신체로서 ‘불룰’이라고 부른다. 제물은 닭 두 마리와 종지기에 담은 닭의 피다. 그 옆에 술 항아리가 있다. 쌀 술이 넓은 사발에 담겨 있고, 무당이 오른손에 술잔을 들고 주문을 외운다.




<그림 2> 코딜렐라 지방의 기우제 모습



또 기우제를 지낼 때 돼지 한 마리를 산 채로 묶어 바친다. 아래 사진은 제물이 되어 누운 채 멱따는 소리를 내고 있는 돼지이다. 수확한 볏단 역시 제물로 바친다.




<그림 3> 기우제를 지낼 때 희생된 돼지



코딜넬라 지방의 축제나, 혼례, 조상에 대한 제사 중 가장 중요한 장식품이 조개로 만든 목걸이나 어깨띠, 혹은 허리띠이다. 그것도 작은 조개들로부터 시작하여 아주 큰 조개들이 필요하다. 코딜넬라에서 해변까지 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인데, 필요한 조개들을 구하기 위해서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과 단골 관계를 맺고 대대로 교역을 한다. 단골 관계가 형성되어야 안정적으로 좋은 조개들을 공급받을 수 있고, 좋은 조개들이 공급되어야 바람직한 의례를 치를 수가 있다.




<그림 4> 조개로 만든 몸띠. 필리핀 마닐라의 국립박물관 전시품



대만의 고산족들도 마찬가지다. 루카이족이 사는 곳은 해발 천 오백 미터이다. ‘옷을 입지 않으면 혼인을 할 수 없다’는 전통을 따라 혼례를 위한 신랑·신부 와 친척들의 의상에 치장된 조개들은 모두 해안가로부터 수송된 것들이다. ‘자안패’라고 부르는 조개들이 선호된다.




<그림 5> 루카이족(대만) 혼례식에 치장하고 나온 여성 머리장식과 몸띠.



산에 사는 사람들이 조개를 귀하게 여겨서 장식품으로 사용하고 축제에 동원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산-천-해는 하나의 연결시스템이다. 산의 수목에서 발생한 영양분이 강과 하천을 통로로 운반되고 바다의 생물들은 산으로부터 출발한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공급받는다. 바다의 수증기는 증발되어 구름을 이루고 비를 뿌린다. 산의 수목과 농작물들은 비를 맞고 자란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순환하는 공생체계 속에서 사람들은 의례의 역할을 담당하여 바다의 조개로 산신을 섬긴다. 자연의 연결시스템뿐 아니라 원만하고 안정적인 방제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야 모든 의례가 가능하다. 조개들을 교환하기 위해서 중간상인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중간상인의 이익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세상은 미증유의 위기를 향하여 치닫고 있다. 인류의 문제가 곧바로 광주의 문제라는 인식을 저버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고,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시아를 생각하고, 아시아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는 좋은데, 그러한 의지와 발상의 근본 자세에 대해서 스스로 점검하지 않으면, 오만불손의 표본이 되고 만다. 아시아를 배우는 것이 우선이고, 배우기 위한 자세를 정립하는 것이 기본이다. 과거 유럽 사람들이 내세웠던 ‘백인의 짐’을 모방하고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기본정신은 방제공생(方際共生)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