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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류와 소통의 공간, 커피하우스의 시작 이슬람의 커피가 유럽사회에 끼친 영향


아시아문화연구소

인류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중요한 동기는 카페인 성분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카페인(coffee-in)이라는 용어는 1820년경 독일 화학자 룽게(Friedrich Ferdinand Runge)가 커피 원두에서 이 성분을 추출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로부터 몇 년 후, 차에서도 동일한 성분이 추출되어 테인(tea-in)이라 불렸지만, 두 물질이 동일한 성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먼저 발견된 카페인으로 용어가 통일되었다. 룽게에게 커피 연구를 권유했던 사람은 독일의 대문호였던 괴테였다. 그는 바흐, 베토벤, 칸트와 함께 독일의 문화부흥을 이끈 대표적인 커피 애호가였다.

17세기에 유럽으로 건너간 커피는 서구 사회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에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부터 전 세계의 대표적인 기호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커피가 서구 음료가 아니라 이슬람의 대표적인 음료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이로 인해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아랍이슬람 문화는 애써 무시되었던 게 사실이다. 이슬람의 음료였던 커피가 유럽으로 전해지기 전 유럽인들의 대표적 기호품은 포도주와 맥주와 향료였다. 그중 향료는 유럽 근대화를 촉발하고 신항로 개척 시대를 재촉한 기폭제였다. 동인도회사의 활성화와 함께 17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목격되었으며, 초콜릿, 설탕, 담배, 커피 그리고 홍차 등 기호품의 수요도 증가하였다. 그 결과 커피와 홍차는 세계 3 대 유일신 종교간 갈등과 함께 세계 역사를 변화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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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있는 베두인. 1930.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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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갈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인들. 출처: 위키피디아

이슬람의 커피는 중국의 차와 함께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로 간주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커피를 발견한 이슬람 신자들은 커피의 맛이나 향보다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보기 위한 약용으로 커피를 끓여 마시기 시작했다. 이후 커피는 그 독특 한 효능 때문에 이슬람의 종교의식에 음용으로 활용되었다. 커피를 종교의식에 이용한 최초의 집단은 이슬람의 수피 신비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종교의식에는 정신적 도취 속에서 신과 합일하는 세마(sema) 의식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극복하고 신과 합일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커피를 이용했다. 반면에 서구 가톨릭은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 또는 악마의 음료로 규정하여 음용을 금지하였으며, 일부 보수주의 무슬림들도 커피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종교의식을 방해한다고 하여 커피를 금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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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교의 종교의식인 데르비시 혹은 세마춤. 출처: 위키피디아

아라비아반도 남단 예멘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커피는 15세기부터 단계적으로 아랍이슬람 세계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첫 번째 전파 경로는 예멘→사우디아라비아 메카→요르단 아카바 항→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이탈리아 베네치아 항이었으며, 두 번째 전파 경로는 요르단 아카바 항→시리아 다마스쿠스→터키 이스탄불→유럽 합스부르크 왕조의 빈이었다. 이는 커피가 16세기 경 아라비아반도를 넘어 시리아, 이집트, 터키, 페르시아, 유럽 등으로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커피는 아랍이슬람 세계가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한 원동력이었으며, 오스만 군대가 유럽 기독교권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동력이었다. 또한 《천일야화》 와 같은 위대한 아랍문학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도 커피가 있었다. 이렇듯 커피는 아랍무슬림들을 항상 깨어 있게 했고, 그들의 영혼을 각성시켜 주었으며, 그들의 피곤함과 고통을 덜어주었던 생활 음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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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커피하우스. 출처: 위키피디아

커피가 본격적으로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유럽으로 전파된 시기는 오스만 제국 시기였다. 예멘에서 이슬람의 중심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전파된 커피는 늦은 밤 종교의식 수행 시 졸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음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고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지 않았던 메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이슬람 사원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모인 곳에는 간이 커피하우스가 생겨났으며, 이곳은 이들의 대화와 토론과 소통의 장이 되었다.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이곳은 오스만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정책을 비판하는 정치적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눈치 챈 오스만 제국의 메카 통치자는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고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그는 커피를 불순한 음료로 간주하였으며, 임명자인 술탄에게 이슬람 세계 내에서 커피의 음용 자체를 금지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술탄은 스스로 커피를 마셔보고 난 후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의 각성작용이 이슬람 에 해를 끼치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유용함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술탄은 통치자의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커피를 이슬람의 성스러운 음료로 선언하였다. 이후 커피와 커피하우스는 이슬람 세계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아랍이슬람 세계에서 커피 문화가 꽃을 피우고 번창했던 것은 이슬람 문화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었다. 이슬람 문화는 술을 하람(haram)으로 간주하여 금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커피는 술을 대신 하는 매우 매력적인 음료로 간주되었다. 커피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 사원의 종교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무슬림들도 상용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도시로 빠르게 전파되어 모든 무슬림이 마시는 대중 음료로 발전하였다. 특히 이슬람의 단식월인 라마단(Ramadan) 기간 동안 많은 무슬림이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음용하였다. 아랍이슬람 세계에서 메카는 종교적 상업적 문화 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커피 마시는 관습은 새로운 문화가 되어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커피가 이집트의 카이로로 전파 된 시기는 1510년경이었으며, 다마스쿠스로 전파된 시기는 1530 년대쯤이었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터키 이스탄불로 소개된 시기는 1519년 술탄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귀환하면서부터였다. 1554년에는 이스탄불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한편 기독교 유럽에서는 커피를 여전히 이교도의 음료, 이슬람의 와인, 악마의 유혹, 야만인의 음료, 이슬람의 사악한 나무의 검은 썩은 물로 간주했다. 유럽의 기독교권에서 커피 음용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람은 교황 클레멘트 8세였다. 1600년에 그는 대중들의 커피 음용 금지 요청을 받고 직접 시음한 후, 커피가 악마의 음료이기는 하지만 정말 맛있는 음료이고, 이를 이교도 무슬림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커피는 유럽 기독교 사회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슬람 세계와는 달리 유럽에서 커피 문화는 종교적 측면보다 세속적 측면에서 더욱 발전하였다. 커피가 유입되자 영국과 프랑스에서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으며,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을 이야기하였다. 커피하우스에서 형성된 여 론은 대중들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유럽의 민주주의와 시민혁명이 태동하였다. 직능별로 모였던 대중은 신문과 잡지를 탄생시켰고, 해상보험과 금융업과 과학협회 등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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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커피하우스. 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유럽의 커피 역사는 대중 음료였던 와인과 맥주와의 처절 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계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1683년의 빈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군대에 패한 후 반전되었다. 빈 전투의 결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기독교 군대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이슬람 군대에 승리했다는 의미였으며, 다른 하나는 이슬람의 커피가 이 전쟁 이후 기독교의 와인과 맥주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의미였다. 커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전파된 음료이다. 커피는 불과 300년 만에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커피 문화가 유럽에서 빠르게 전파된 배경에는 유럽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와 개혁 요구가 있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시민의식이 향상되고 토론과 소통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동하면서 커피 하우스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는 가톨릭 음료인 포도주와 독일의 음료인 맥주가 대중적이었는데, 이로 인해 알코올 중독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커피는 맥주와 포도주를 대체할 중요한 각성 음료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가정의 폐쇄적 공간을 벗어난 공적인 모임의 장소를 제공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커피는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진정시키면서 국가정책에 대한 토론 논쟁의 매개 역할을 하였다. 커피하우스에서 논의된 내용은 여론이 되었으며, 그 여론은 국가를 압박하여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결국 유럽에서도 커피하우스의 열린 공간은 정치적 억압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커피하우스의 폐쇄조치가 내려졌고, 커피 금지령이 발동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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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카페 정경. 출처: 위키피디아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아랍이슬람권과 유럽 기독교권에서 억압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성작용과 소통문화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커피를 단순한 기호음료 또는 대중음료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커피가 아랍이슬람 세계의 대표적 음료였으며, 서구 기독교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주도했던 음료였고, 아랍이슬람 세계와 서구 기독교 사회의 문화교류를 주도했던 음료였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다양한 커피하우스를 문화교류와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 . 황병하 bhhwang@chosun.ac.kr
  • 사진. 위키피디아

    현, 조선대학교 글로벌인문대학 아랍어과 교수 전공,
    《아랍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2014, 공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2002, 공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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