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 「전쟁의 슬픔」 아시아 소설, 옷을 갈아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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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2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전쟁의 슬픔](바오 닌 作)이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으로 다시 태어났다. ACC의 콘텐츠 선순환 체계를 시험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한 이 공연사업은 ACC 예술극장의 비전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문학을 무대 언어화, 배우가 표현하는 신체의 언어로 바꾸고, 아시아적 연극 창작에 대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등 서구의 시선과 동양의 시선, 그 시선의 교차와 변환 등을 담아내려는 시도들이 담겨 있는 공연이다.

소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작가 바오 닌의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끼엔과 프엉의 전쟁 속 사랑과 상처, 슬픔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작가가 1991년 탈고했으나 본국의 검열로 [사랑의 숙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서구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판금 조치를 당하기도 했지만 16개국에 번역·출간되어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 받았다. 흔한 전쟁소설들처럼 외부의 적에 맞서 싸워 이기는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라 전쟁의 의미와 상처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고, 현실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특한 리얼리즘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전쟁의 슬픔을 형상화하며, 가해자의 일원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 자체가 전쟁의 슬픔을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깃든 작품이기에 제2회 아시아문학상에 선정되었다고 당시 심사위원회는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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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소설가 바오 닌(Bảo Ninh)

ACC는 소설 [전쟁의 슬픔]을 소재로 지난해 10월 창·제작 워크숍을 통해 덴마크 NTL-북유럽연극실험소가 참여한 가운데 국제 공동 창·제작으로 공연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NTL은 세계 3대 극단이라 평가받고 있고 연극 인류학을 창시한 유제니오 바르바의 오딘 극단이 속해있는 단체이다. 40여 명의 다국적 예술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구조사, 워크숍과 아카데미, 아카이빙과 공동 제작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선정된 한국의 극단 민들레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배우들 역시 열성적으로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 극단 민들레는 민들레연극마을을 운영 중이며 아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아시아 레지던시를 7년째 해오고 있고, 한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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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제작 워크숍 장면

두 예술단체는 한국적 연극, 아시아적 연극을 만들기 위해 한국공연예술의 뿌리이자 원형인 한국의 ‘굿(샤머니즘)’의 구조와 의미를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베트남 전쟁을 다루는 원작 [전쟁의 슬픔]에는 살아남은 자와 망자들,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조화와 부조화 등 대비 혹은 대립의 변증적인 관계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한국 창작자들은 한국의 굿, 망자천도굿의 구조와 각 거리의 의미를 해석하여 원작의 내용과 의미를 담아보자는 의견을 모았고 NTL이 사용하는 피지컬스코어(Physical Score/연기악보) 양식을 사용하여 굿을 재해석한 추상적인 장면으로 공연을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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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장면

아무리 힘들어도 진실을 똑바로 대면하라!

공연 「전쟁의 슬픔」은 전쟁이 배경이므로 전쟁에 대한 고발, 평화를 주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찾은 또 다른 주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진실을 똑바로 대면하라!’라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주인공 끼엔이 16·17세의 청춘, 20대 후반의 군인, 그리고 종전 후의 하노이에서 글을 쓰는 끼엔 등 모두 끼엔의 파편인 환영들이 나타나 그 시대, 그 장소로 작가를 이끌며 내용이 진행된다. 끼엔은 사랑하는 프엉이 자신의 입영기를 함께 하다가 건장한 사내에게 사고를 당한 일을 외면하려 한다. 그녀와 사랑이 이뤄지지 못한 이유가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비겁함과 그 사내를 죽이고 싶었던 자신의 살인에 대한 두려움을 숨겼던 내면의 진실과 결국 대면하게 된다. 그 상처는 끼엔에게 큰 트라우마를 주었다. 이 모든 내용은 공연에서 사실적인 장면이 아니라 NTL이 사용하는 피지컬스코어로 재해석하여 동양의 전통 예술을 보편적 연극 기호로 발전시킨 추상적인 장면들로 작품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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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L 연습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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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민들레 연습 장면

예술감독은 이병훈, 극단민들레 쪽 연출과 대본은 송인현, NTL 쪽 공동연출과 공동각색은 카이(Kai Bredholt)와 이동일이 참여했다. 올해 7월 이틀간의 오디션을 통해 11명의 한국 배우가 선발되었고 8월 중순에 NTL은 5명의 다국적 배우들을 선발했다. 특히 한국에서 진행된 오디션에는 90여 명이 지원해 이번 창·제작 공연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선발된 배우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무대 언어로 이미지화시키기 위한 배우 워크숍이 지속되었고 극단 민들레와 NTL은 줌 미팅을 통해 배우 선발과 창작 초기에 드라마투르기 공유 및 피지컬스코어 등에 대해 의견 교환을 했으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서로 만나서 함께 연습하는 것이 불가능해져서 올해 쇼케이스 방식을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덴마크와 한국에서 각자 공연하고 그 공연영상을 촬영하여 오는 10월 30일, 31일에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내부 및 공연예술 관계자 50인 이내가 참석한 가운데 상영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 쇼케이스 영상은 ACC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내년에는 양국의 예술단체가 함께 창작한 본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우리는 그때 더 완성된 「전쟁의 슬픔」 공연을 영상이 아닌 무대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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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장면

공연 「전쟁의 슬픔」은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을 연구, 동시대의 평화와 인권 가치를 담은 작품으로 올해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ACC에서 열릴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과도 연계가 된다. 이 공연사업은 2019년 창제작 워크숍, 2020년 쇼케이스(시범공연)를 갖고 2021년도에는 본 공연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이며 아시아성과 동시대성을 탐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ACC 예술극장의 야심 찬 도전임이 분명하다.

소설이 영화나 연극,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은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의 슬픔」처럼 각색되어 한국 굿의 무무(巫舞)를 활용한 몸짓과 음악극적 요소 등 연극과 무용, 음악 장르를 아우르는 융합공연 형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설명만으로 무대를 짐작하기 힘들게 한다. 그래서 더 공연이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지도 모른다. 베트남 작가의 자전적 소설 [전쟁의 슬픔], 한국의 전통의례인 ‘굿’을 활용해 만들어지는 몸짓, 덴마크 NTL의 피지컬스코어를 통해 이미지화되는 장면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국제 공동 창·제작으로 개발될 아시아적 연기 메소드가 가져다줄 감동을 고대하며 흥분된 마음으로 공연을 볼 날을 기다릴 것이다.



  • 글. 김옥수 mono755@daum.net
    사진. ACC 제공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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