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어린이책놀이터-너나들이 : 이지현 작가 초청강연 그림책에 풍-덩!


어린이문화

글 없는 그림책의 오롯한 매력 속으로~

오래전 아이들의 그림책을 고르다가 내가 먼저 푹 빠졌던 그림책이 하나 있다. 바로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 「구름 공항」이 그것이다. 「구름 공항」은 ‘저 하늘 너머에 구름을 만들어 세상으로 보내주는 특별한 구름 공항이 있다’라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그림책으로 책을 넘기는 내내 구름과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되어 있는 이 특별한 책을 발견한 뒤 나는 굉장히 설레하며 아이에게 보여줬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그림책을 본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다른 책들과 달리 단 한 번도 책꽂이에서 직접 책을 꺼내오지 않았다. 사실 당시엔 이렇게 멋진 책을 외면하는 아이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번 이지현 작가의 초청 강연을 듣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되어 있기에 더 쉽고 가벼울 것이란 생각은 금물이다. 오히려 말로 규정되지 않기에 그림을 좀 더 꼼꼼히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글 없는 그림책을 아이가 잘 볼 수 있도록 혹은 잘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비법은 이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단, 글 없는 그림책의 오롯한 매력을 새롭게 알게 해준 이지현 작가와의 초청 강연 현장 속으로 모두 함께 풍-덩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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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ACC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어린이책놀이터-너나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너나들이는 ‘너와 나를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작가와 독자가 책과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프로그램은 도서관에서 단순히 ‘책을 읽는다’라는 개념을 떠나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이어가도록 그림책 원화전시에서부터 작가초청 강연 등 다양한 도서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연계하여 ‘그림책에 풍-덩’이란 주제로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는데 그중 글 없는 그림책으로 유명한 「수영장」의 저자, 이지현 작가의 원화전시와 초청 강연이 함께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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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너머 작가와 만나는 뜻깊은 시간

초청 강연의 주인공인 이지현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인 ‘HILLS’를 졸업하였으며 쓰고 그린 첫 그림책 『수영장』으로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의 ‘2015 최고의 그림책 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수영장」은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번역·출판되었으며 미국공영라디오(NPR) ‘2015 최고의 책들’, 뉴욕타임즈 ‘2015 주목할 만한 어린이책’, IBBY 스웨덴 ‘2016 최고의 번역서 리스트’ 등에 선정되었다. 주요 대표작으로 <수영장>(2013), <문>(2017), <이상한 집>(2018) 등이 있으며 현재는 2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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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극장의 문이 열리자 어린이 독자들은 물론 어른 독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중 누구보다도 설레하며 들어오는 어른들이 있어 슬쩍 다가가 물어보니 대전과 논산 등지에서 온 그림책 연구모임 ‘붓터치’의 회원들이라고 했다. 특별히 오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 찾아왔다는 말에 이지현 작가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날의 강연은 「수영장」이란 그림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수영장」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어떻게 그림들을 그려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작가가 직접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도 가졌다. 글이 없는데 어떻게 책을 읽어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지현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글 읽는 것처럼 그림도 읽으면 된다고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책의 표지에서부터 책 사이의 면지와 본문의 그림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살피며 아이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읽어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책 표지의 그림을 보며 ‘수영안경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나올까?’ 이런 식으로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면서 계속 대화하듯이 그림들을 읽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수영장을 읽어주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아 놓쳤던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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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에서는 참석한 어린이들에게 미리 질문지를 작성하게 하고 추첨을 통해 답변을 해주며 책을 선물로 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석한 이들이 모두 책을 받고 싶어 해 책이 동났는데도 계속 질문지를 뽑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어떤 질문들이 나왔는지는 글 뒤쪽에 인터뷰 전문으로 따로 배치하였다.) 질의응답 시간을 마친 뒤엔 수영장에 들고 갈 비치백 꾸미기가 연계활동으로 이어졌다. 투명 비치백에 멋진 그림들을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앞에 나와 설명하며 작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책을 받아가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강연과 연계 활동이 모두 마무리되고 전체 초청 강연은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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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어린이를 위한 이지현 작가의 인터뷰 전문

Q. 선생님이 지은 ‘수영장’이란 책을 보면 글 없이 그림으로만 되어 있는데요. 특별히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처음부터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글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 선생님이 생각한 것들을 그림으로 먼저 그려놓고 보니까 꼭 글이 없어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넣지 않게 되었습니다.

Q. 처음 「수영장」 그림책을 볼 때 글이 없어서 조금 이상했는데요. 글 없는 그림책을 보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A. 많은 부모님들이 글이 없어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하지만 글을 읽듯이, 그림을 같이 읽어 나간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아요. 수영장의 표지를 예로 들면, ‘여기 소년이 있네. 그런데 소년의 안경 속에서 물고기들이 나오고 있구나. 게다가 이 물고기들은 이상하게 생겼네. 어떻게 안경 속에서 물고기들이 나올 수 있지? 왜 안경 속에서 이상한 물고기들이 나오고 있을까?’ 이런 식으로 묘사된 것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질문도 해 보세요. 혹은 직접 이야기를 붙여 보는 것도 좋겠어요. 그러면 그야말로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이 되는 거지요. 어쩌면 글 없는 그림책은 글 있는 그림책보다 독자들에게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천천히 읽다 보면 글이 없기 때문에 더 다양하게 읽고 즐길 수도 있어요.

Q. 선생님의 그림책에는 세상에 없는 특이한 모양의 동물이나 물고기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특이한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그런 특이한 모양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궁금해요.

A. 선생님은 누구나 알고 있는 동물들 말고 선생님만의 동물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그리는 물고기와 동물들이 괴물처럼 느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특이한 모양의 동물들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답니다. 선생님은 실제의 동물들을 보면서 선생님이 그리고 싶은 대로 다시 그려요. 그래서 많은 동물 사진을 보았지요.

Q. 선생님처럼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좋아하는 책들을 많이 보세요, 무엇보다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뛰노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Q. 초청강연을 통해 ACC에 방문해 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우리 ACC 어린이들과 만난 소감을 들려주세요.

A. 지금도 어린이 친구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아른거리네요. 친구들이 선생님을 반갑게 맞아 주어서 기뻤고, 이번 만남은 선생님에게도 무척 좋은 추억이 되었어요. 특히 어린이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질문했던 것들은 선생님의 마음속에 깊이 남았어요. 선생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했거든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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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속 사람들로 북적이는 수면 위에선 내 자리를 찾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고 부딪히며 발버둥을 쳐야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꿔 수면 아래로 들어가면 더 넓은 세상, 아무나 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 존재한다. 작가는 어쩌면 두려움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잠시 두려움 따윈 잊고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그림들 속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글 없는 그림책 ‘수영장’, 이미 진가를 인정받아 큰 상을 받기도 했지만 혹 아직 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한 번 찾아서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한다.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며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언어가 달라도 누구나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 . 문진영 moongaka@naver.com
  •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일부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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