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ACC 참여형 가상현실 공연 <비비런 BBRUN> 비비런, 꿈에서 깨지 말고 뛰어라


#ACC


한반도의 탈춤이 카메라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1936년 8월 31일 백중날 황해도 사리원 경암산 광장에서 봉산탈춤이 공연된다. 한반도 조류 연구를 위해 한국에 왔던 스웨덴의 스텐 베리만(Sten Bergman), 1895 ~ 1975)이 당시 연행되는 봉산탈춤을 16mm카메라로 촬영했다. 현장에는 임석재(任晳宰, 1903 ~ 1998)와 송석하(宋錫夏, 1904 ~ 1948)가 있었고, 조선총독부에서도 촬영을 했다. 조선총독부 촬영본은 당일 밤 경성방송국(JODK)을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현재 조선총독부의 영상은 사라졌고 스텐 베리만의 촬영본은 임석재가 1969년 입수했다.
한국의 민속학과 인류학의 틀을 잡았고 최초 사진 아키비스트로도 불리우는 송석하는 스텐 베리만의 백두산 안내를 맡아 이동하던 중 봉산탈춤 공연 정보를 듣고 스텐 베리만과 사리원으로 발길을 돌려 봉산탈춤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탈춤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봉산탈춤 송석하 채록본과 임석재 채록본은 그 날의 공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학술조사라는 명목으로 한반도의 문화, 자연, 풍습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류하는 인류학 연구에는 카메라가 필수로 동원되었다. 실상 이는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고 경영하기 위해 인류학을 이용한 일본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책략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굴절된 시각을 조정하고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기록해 후대에 남기려는 열망으로 카메라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1895년은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던 때였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제국주의를 위해 인류학은 학문의 외피를 쓰고 봉사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특히나 카메라는 인류학 현지조사를 가감 없이 그대로 담을 수 있다는 점으로 크게 각광받았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에 찍히는 원주민들의 권력관계는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가 발명된 지 30여년이 지난 1922년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 1884 ~1951))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를 영상인류학(Visual Anthropology)의 비조로 보는 이유는 대상과 관찰자의 성찰적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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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자 (고성오광대탈춤 이수자 허창열)

202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비비런BBRUN>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인 고성오광대의 3과장인 비비과장을 모티브로 만든 VR콘텐츠이다. <비비런BBRUN>은 VR콘텐츠가 전부가 아니고 카메라의 단순한 기록에서 진일보한 VR시대 탈춤과 같은 무형문화재들의 디지털 아카이빙 가능성을 실험하고 좌표를 제시하려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이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가 남긴 인류 건축유산에 대해 3D스캐닝을 바탕으로 단순 평면도가 아닌 입체적인 평면도로 기록하고, 축적된 디지털 데이터를 다른 콘텐츠로 재가공하려는 시도들을 꾸준히 해왔다. <인도네시아 전통가옥 통코난 VR(2018년)>, <아시아 스투파(불탑) 로드 : 파키스탄 불탑 탁티바히VR(2019)>이 대표적인 성과이다. <비비런BBRUN>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향하는 아시아 문화유산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빙이자 이를 활용한 새로운 VR창작콘텐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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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런 제작 워크숍 (왼쪽 김일 대표, 오른쪽 손상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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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런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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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화면

VR콘텐츠로써 <비비런BBRUN>은 출연배우의 동작과 재담을 모션캡쳐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전송하며 캐릭터의 현장감을 높이고, 관람하는 참여자들과 대화와 지시를 할 수 있게 구성했다. 관람자들은 우주선으로 꾸며진 객석에서 VR헤드셋을 끼고 이미 완성된 콘텐츠를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닌 탈춤처럼 연희자의 지시에 따라 북을 두드리고 주문을 외울 수 있는 참여형(immersive) 공연물을 즐길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공연에서 주로 활용되는 채팅이 아니라 관객의 음성과 동작이 공연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는 무대와 객석을 분리하지 않고 배우와 관객의 일체감을 가장 중요시한 탈춤의 미학적 특질까지 그대로 재창조한 중요한 성과이다.
고성오광대에서 비비(영노)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가상의 존재로 관객들과 함께 극 내내 특권계급인 양반을 골려먹고 희롱하는 인기가 높은 캐릭터이다. <비비런BBRUN>도 그러한 점에 착안해 비비와 그의 아들인 비비런이 지구온난화로 파괴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바다속부터 얼음나라까지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종의 SF어드벤처 가족환경극이다.
SF이지만 디지털 아카이빙된 데이터와 출연자의 실시간 출연으로 몸짓과 재담은 고성오광대를 크게 훼손하지 않고 활용하고 있다. 고성오광대의 기본인 굿거리 장단을 타고 노는 덧뵈기춤을 응용한 동작들, ‘산좋고 물좋고 어절씨구 좋다’라는 불림소리와 이를 변용한 주문들, 그리고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 살기 위한 희생들은 탈춤의 주제의식까지 포착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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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가상현실 체험 장면

<비비런BBRUN>처럼 VR가상현실이 제공하는 체험은 나와 콘텐츠가 분리된 평면이 아닌 360도 3차원 영상을 제공하면서 몰입감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매일 꾸는 꿈처럼 말이다. 잠을 자듯 헤드셋을 끼면 우리는 그 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비비 부자와 함께 지구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탑승하기도 하고, 바다속을 유영하기도 하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이는 마치 꿈에 나비가 되어 재밌게 놀다 잠에서 깨어보니 내가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꾼 것인지를 묻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을 떠오르게 한다. 장자의 호접몽은 엄격한 이분법에 갇혀 세상을 나와 적으로만 구분하려는 사람들에게 세상 만물의 소중함과 자유의 의지를 설파하였다.
VR를 비롯한 디지털 뉴딜시대 쏟아지는 수천 수백의 콘텐츠들은 순간적 볼거리와 화려함만으로 승부를 거는 눈요기가 되어선 안된다. 디지털 뉴딜은 디지털 시대 이전부터 모든 문명이 추구했던 인류 보편의 자유의지를 실현시키려는 꿈의 요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꿈을 꾸듯이 우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을 위해 꿈이 깨지지 않게 <비비런BBRUN>의 신명나는 꿈에 꿈 속에서도 응원을 보내자.


* 한재섭은 인류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고 지역문화의 보편성과 특이성을 공부하고 있다.





  • 글. 한재섭 badland69@hanmail.net
    사진. ACC 제공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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