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전시기획, 세계와 예술 가로지르기 큐레이터 조주리


레지던스

큐레이터 조주리

2013 년 이후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전시기획, 시각문화연구, 글쓰기 영역을 오가며 일하고 있다. 공공기금을 지원받아 <리서치, 리:리서치>, <동백꽃 밀푀유>, <베틀, 배틀> 등 다섯 차례의 주제 기획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시와 전시 사이, 외부로부터의 시각과 사고를 필요로 하는 기관들의 일시적 파트너로 일하며 다양한 쓰임새의 전시와, 이를 통해 생산되는 예술적 지식과 이미지를 유통해 왔다. 전시 만들기에 부여된 조건과 한계들을 수용, 변경, 위반하는 속에서 기획을 직능이 아닌 작업으로 쌓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전시회 하나가 열리려면 어떤 일이 선행되어야 할까? 우선 전시장에 놓일 작품과 작품을 제작할 작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시회를 알리기 위한 포스터, 초청장, 엽서, 도록 등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홍보물은 편집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홍보물 안에는 작품사진 외에도 미술평론이나 전시소개문이 실려 있다. 홍보물을 제작하기 전에 누군가 작품을 촬영하고 글을 써주었다는 말이다. 또한 작품을 운송하는 업체가 있어야 하고, 전시규모가 클 경우에는 작품설치를 해주는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이밖에 여러 잡다한 일이 있지만 생략하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다. 넓은 의미에서 큐레이터는 미술작품이나 관련 자료를 조사, 수집, 연구, 전시, 보존, 관리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란 보통 전시회의 주제를 정하고, 작가를 조사, 섭외하여, 전시회를 연출하는 사람이다. 같은 작가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전시회를 하더라도 큐레이터의 전시 개념과, 작품을 보는 안목, 작품을 연출하는 방식에 따라 전시회 분위기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술계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 ACC레지던스 프로그램에는 주로 창작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해왔는데, 올해는 ‘매개자(mediator)’로서 전시기획자, 큐레이터도 선발되었다. 그들은 레지던스 기간 동안에 포트폴리오로 제안했던 전시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이번 웹진 8월호에서는 매개자로 선발된 조주리 큐레이터를 소개한다. 그의 활동을 통해 큐레이터의 일과 고민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주리 큐레이터는 현재 미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일꾼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큐레이터가 되기 전까지 다양한 공부와 경험을 쌓았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는데, 당시엔 ‘큐레이터가 되겠다’는 포부는 없었다. 졸업 후에도 저널리즘이나 정책 리서치 등의 업무를 먼저 경험하였고, 이후 다양한 성격의 페스티벌과 커뮤니티형 기획 실무를 익혔다. 그리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서 문화정책 및 경영을 전공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그는 정책전문가가 아닌 큐레이터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2012년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현대미술과 더욱 밀착된 학예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큐레이터 업무의 특수성과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협업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미술의 동시대성에도 눈 뜨게 되었다. 다음 해인 2013년 큐레이토리얼 서비스(curatorial service)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기획사를 설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플랫폼과 관계망 안에서 그는 독립 큐레이터로서 전시기획, 컨설팅, 연구와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기획한 전시회 4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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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2의 공화국, Republic of the Two> (2013.7.18-9.01 아르코 미술관), 전시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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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Betabüro_, 혼합 재료, 가변 크기, 2013

<2의 공화국, Republic of the Two>

이 전시회는 2013 년 아르코미술관이 주최한 기획공모전에서 최종 선정되었다(사진 1). 두 큐레이터(조주리, 박경린)가 공동으로 기획하였는데, 전시회의 주요 개념은 2인 1팀으로 일하는 국내외 창작자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작업방식과 관계지향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라고 하면 작업실에서 창작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천재를 떠올리기 쉬운데, 신화화되고 통념화된 예술가 이미지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협업하며 예술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을 기획자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축, 패션, 뉴 미디어아트 등 여러 장르에서 공동 창작을 하는 13 팀이 발산하는 역동적인 창작 과정과 유기적인 협업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 전시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베타뷰로(Betabüro)의 을 들 수 있다. 왼쪽 벽에는 런던과 뉴욕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 두 개가 걸렸고, 오른쪽 벽엔 함부르크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하나 걸렸다. 그리고 그 시계 아래엔 책상과 컴퓨터 등 사무기기를 갖춘 유사한 사무실이 각각 설치되었다. 이런 전시물의 상태는 함부르크에서 일하는 호주 출신의 기획자와 뉴욕에서 일하는 인도 출신의 컨설턴트가 런던을 중간지점으로 삼아 함께 협력해 나가는 독특한 협업의 양태를 의미한다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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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리서치,리:리서치 research,re:researched> (2016.9.3-9.24) 서울: 탈영역 우정국.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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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김준 , 2016

<리서치, 리:리서치 (research,re:researched)>

조주리 큐레이터는 전시기획을 이어가면서, 디자인역사와 문화연구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미술이라는 영역 외에 시각 문화를 전반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사과정을 밟으며 그는 아카데미 내에서 숱하게 행해지는 리서치 활동과 예술계 안에서 일정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리서치 기반의 예술 작업들에 대한 의문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리서치란 무엇인가?’, ‘학자의 연구와 예술가의 연구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의문은 그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대체로 전통적인 작품 제작방식을 취하는 작가보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깊이 연구하는 작가의 작업방식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조사연구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리서치, 리:리서치>가 바로 그것이다(사진3). 이 기획전은 2016 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창작산실사업 첫 해에 선정되어 구체화되었다. <리서치, 리:리서치>는 5~10 년 이상 철저한 조사와 연구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여덟 팀의 예술가들을 초청하였다. 각 작가의 고유한 연구와 창작의 궤적들을 그룹전 속의 개인전처럼 준비하여 각각의 방법론과 연구 단계들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예술가들의 작업 구상부터 연구 과정과 태도 그리고 작품의 완결 혹은 미완의 과정까지도 함께 배치하는 방식으로 예술활동에서 리서치의 중요성과 고유한 방법론, 예술계에서 전용되는 리서치의 개념과 가능성들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자 했던 것이다. <리서치, 리:리서치>전의 풍경을 집약해서 보여준 것은 작가 김준의 작품전시 방식이었다. 그는 전시회 기간 동안 호주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고, 당시 도시공간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전시기간 동안 낯선 환경에서 기록하고 분석한 자료들을 매일 팩스로 전송하거나, 채집한 식물들을 항공우편으로 보내거나, 소리와 지형정보를 인터넷으로 공유하기도 하였다(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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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동백꽃 밀푀유 Mille-feuille de Camelia> (2016.12.9- 2017.2.12)
한국-대만 큐레이터 협력기획전 서울 : 아르코 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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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저우위정, <직업의 이력>. 2017. 동백꽃 밀푀유 전시회 전경.

<동백꽃 밀푀유 (Mille-feuille de Camélia)>

<동백꽃 밀푀유>는 조주리 큐레이터가 김현주 큐레이터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회다(사진 5). 2015 년부터 준비과정을 가졌던 이 전시회는 한국과 대만 정부가 추진한 양국 기획자 간의 교류 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다. 두 나라에서 선정된 여러 큐레이터들은 교류의 결과로서 전시회를 염두해 두고 여러 차례 서로를 방문하였고, 양국의 역사와 사회 문제를 공유하면서 작가 조사를 해나갔다. 교류전이라는 익숙한 관행 속에서도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 나가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조주리, 김현주 큐레이터가 전시회를 공동기획하게 되었다. 전시명인 ‘동백꽃 밀푀유’는 역사를 관통하며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한국과 대만을 은유한다. 16 세기에 등장한 밀푀유(mille-feuille)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과자인데, 나폴레옹(Napoleon)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폴레옹 군대가 침략한 지역에서는 밀푀유를 나폴레옹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밀푀유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자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달콤함이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밀푀유의 이런 양면성은 아름답게 핀 동백꽃이 처연하게 지는 모습과도 상통한다. 특히 전시가 개최되는 2016 년 12 월에 아시아 전역에서 동백꽃이 개화하기 때문에 ‘동백꽃 밀푀유’는 한국과 대만을 아우르는 제목이 될 수 있었다. 조주리, 김현주 큐레이터는 다양한 세대를 대변하는 작가 열 명을 초청하였다.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작업을 하는 양국의 작가들은 원자력발전소 건설로 공동화된 휴양섬, 세종시 조성 과정에서 사라진 마을,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대만 나환자 수용소의 생성과 소멸 등 여러 사회문제를 통찰력 있는 예술 언어로 보여주었다(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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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베틀, 배틀> 포스터. 토탈 미술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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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베틀, 배틀> 전시회 전경. 토탈 미술관. 2018

<베틀, 배틀>

기획자의 활동 반경 안에는 공공기관에서 의뢰한 전시 큐레이팅도 다수 포함된다. 초청된 큐레이터 신분으로 전시회를 추진하다 보면 아쉬운 점이 남기도 한다.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쟁점들은 사라지고 밋밋하고 매끄럽게 포장된 전시회만 남는다는 느낌일 것이다. 직물과 옷의 역사에 관한 전시기획을 의뢰 받아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기관의 성격과 목표에는 적합한 전시회였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다른 관점과 과감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베틀, 배틀>은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전시회다(사진7). 2018 년에 개최된 이 전시회를 통해 조주리 큐레이터는 옷과 직물 그리고 패션과 관련된 복합적인 문제를 펼쳐 보였다. 전시회는 각자의 이슈를 가진 미술 작가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준비되었고, 아홉 개의 신규 브랜드가 미술관 안에서 편집 숍처럼 연출되어 관람객에게 소개되었다. 똑같이 발음되는 두 단어로 조합된 전시회 제목은 이러한 전시 내용을 유희적으로 보여주는데, ‘베틀’은 천을 짜는 틀을 의미하고, ‘배틀(battle)는 승부를 가리는 경쟁, 투쟁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다. 철저한 사전 연구와 콜로키움을 거치면서 전시회는 준비되었다. 미술관에는 산업사회에서 의류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고, 버려지는 방식과 달리 특별한 개념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제작된 맞춤복들이 전시되었다. 조은지 작가가 미래의 대통령을 위해 제작한 사계절용 만능정장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밖에도 작가들은 옷과 관련된 방직 역사, 의류 노동, 젠더 문제 등을 작품의 배경으로 다루었다(사진8). 한편 작가와 패션디자이너 외에도 전시회에 결합한 연구자 일곱 명은 전시 주제를 연구한 글과 이미지를 묶어 아홉 권의 출판물로 내놓았다. 그 중 조주리 큐레이터가 쓴 <백색광시곡>은 내년에 새로운 전시회로 꾸려질 예정이다.

이처럼 그의 전시기획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연결된다. 하나의 전시회 속에 작은 개념의 씨앗이 뿌려지고, 그 작은 개념의 씨앗이 성장하여 또 다른 전시회로 열매를 맺는 식이다. 그는 현재 ACC레지던스에 참여하며 이제까지 자신이 해온 기획방식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있다. 조사, 자료, 연구에 기반한 전시회를 넘어서 자신만의 독특한 전시방법론을 고민하는 중이다. 기존의 개념에 포섭되지 않는 예술에 주목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들이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와 예술을 분주히 가로지르며 전시회를 기획해온 조주리 큐레이터, 그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임무를 부여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 백종옥 icezug@hanmail.net
  • 사진. 조주리 jurimiller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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