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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아시아문화연구소 방문연구자 김상욱 음식문화에 어린 고려인의 삶과 역사


레지던스

김상욱 방문연구자

알마티국립대학교 조선어과 교수로 파견되어 카자흐스탄과 인연을 맺었다. 현지에서 25년을 살면서 고려인 동포사회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하고 동시에 민족정체성을 고양시키거나 한국 내 고려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알마티고려문화원장, 한인일보의 주필이기도 하다. EBS ‘세계테마기행’, KBS ‘1박2일’ 등 방송출연을 통해 고려인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궁리, 2007/공저), ‘카자흐스탄’(2010/도록), ‘유라시아 골든허브’(평사리, 2010/공저)가 있고, 개인 사진전 ‘카자흐스탄’(2010, 고대100주년 기념관 기획전시실), 광복절 기념 특별 사진전(2012, 2013, 2014 카자흐스탄 고리키 공원), 한-카 친선 작가 초대전(2014, 카자흐스탄예술아카데미)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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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고려인 최초 정착지 '우쉬토베' 초입에 서 있는 도시 상징탑. 우쉬토베의 도시 심볼 한가운데 벼 이삭이 들어가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지구상에서 아홉 번째로 넓고, 대한민국보다 약 27배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카자흐스탄이다.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연안에서부터 동쪽으로는 몽골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게 자리잡은 이 나라는 우리에게 유목민족, 실크로드, 구 소비에트 연방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을 언급할 때 절대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고려인’이다.

고려인은 주로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민족 동포를 의미한다. 그들의 삶은 특별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고려인의 시초는 19세기 후반 가난 때문에 조선을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연해주는 고려인의 개척정신이 배여 있는 곳이자 일제강점기엔 항일독립운동의 무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해주에 자리잡은 고려인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1937년 약 18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려인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황무지를 옥답으로 만들며 생활의 기반을 다져 나갔고, 구소련 국민의 일원으로 적응해왔다. 하지만 1991년 구소련 해체 후 다시 한 번 고려인의 운명은 바뀌고 말았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신생독립국가들 속에서 소수 민족인 고려인은 또 다시 뿌리 뽑힌 존재가 되었다. 여전히 중앙아시아에 남아 있는 고려인도 있지만 러시아나 한국으로 이주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ACC아시아문화연구소의 방문연구자로 광주에 머물고 있는 김상욱 박사는 25년 전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계속 살아온 한국인이다. 그는 대학과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한편으로 고려인 생활사를 연구하였고, ACC에서도 그것과 관련된 내용으로 논문을 쓰고 있다. 그를 만나 고려인 사회와 고려인의 삶 그리고 그의 생활과 연구 주제 등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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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고려인 최초 정착지 '우쉬토베'에 있는 고려인 공동묘지 내 한 묘비. ‘엄학순 묘’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Q : 박사님이 25년 전 카자흐스탄으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90년대 초에 연세대 박물관 학예연구사로 3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당시 관장님이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무속 신앙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그런 영향 하에서 저도 중앙아시아와 구소련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구소련이 해체되었는데, 여러 연구자들이 구소련 땅을 방문하고 나서 쓴 답사보고서를 접하면서 고려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1992년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수교를 맺은 이후 1995년에 우리나라 정부에서 알마티 국립대학교 조선어과에 교수를 파견하기 위한 공모를 내걸었습니다. 그때 제가 선발된 것입니다. 당시 알마티 국립대학교 조선어과엔 북한에서 온 교수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Q : 지금까지 알마티 국립대학교에서 계속 일했나요?

A: 아닙니다. 1998년에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한국학과로 옮겨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편으로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에서 역사학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박사 논문의 주제는 ‘1920~30년대 러시아 사회경제사를 통해 본 고려인 강제이주 원인 연구’였습니다. 고려인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시 보려는 노력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고려일보 기자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기는 카자흐스탄이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에 ‘한인일보’를 창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문사 일에 점점 더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편을 접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한인일보는 점차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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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우쉬토베에 남아 있는 구들의 화구 모습.

Q :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A : 신문사 일을 하면서 2014년에 개관한 알마티고려문화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고려인 동포들이 사용하던 ‘알마티고려문화중앙’이 이주하게 되면서 공간이 협소해졌는데, 이를 보완하고 사랑방 역할을 할 만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고려문화원을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Q : 보통 '고려인'이라고 하면 스탈린 통치 시기의 '강제이주'를 떠올리거나 '도와줘야 할 불쌍한 사람들' 이라는 이미지가 큽니다. 한반도를 떠나 연해주로, 다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스스로 정체성을 어떻게 느끼지는 궁금하군요.

A : 1937년 강제이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다. 고려인 강제이주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엔 전통적인 민족 개념을 해체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강제이주 후 중앙아사아에서 태어난 고려인들은 소수 민족이라는 자각도 있었지만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국민이라는 정체성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이 해체되고 민족주의가 대두되자 다시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구소련 해체 전 한국에서 개최된 88올림픽을 계기로 고려인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려인은 러시아적인 사고 방식과 고려인들만의 독자성 그리고 남북한 사회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남한과 북한을 ‘역사적인 조국’으로 정의하면서, 그들 스스로는 카자흐스탄 국민이자,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소수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00년대 들어 그들은 고려인으로서 독자적인 고려말(고려인 1세대가 쓰던 함경도 6진 사투리)을 사용하자는 논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4) 박 게르만 선생댁의 밥상. 당근채 김치와 양배추 김치, 잘게 썬 파와 양파 그리고 우크롭, 밥, 튀긴 생선이 놓여 있다. 이 밥상은 개장(보신탕의 고려식 이름)이 나오기 직전의 모습이다.

Q : 고려인은 남한과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A : 고려인들은 남한과 북한을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남한과 북한은 하나였던 조국이었으니까요. 고려인들은 구소련 해체 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는 모습을 보며 남북통일을 기대했습니다. 독일 재통일 후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많은 독일인들이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남한이나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고려인들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절감했고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년에는 고려인들이 남북통일의 염원을 안고 자동차로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횡단한 다음 남북 사이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인들은 남북통일을 원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남북통일과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한국 중심으로 통일을 생각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과 고려인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서로 다른 점들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Q :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고려인 사회도 변화가 많았는데,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A : 구소련 해체 후 여러 모로 형편이 어려워진 고려인들이 몇 가지 모색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요. 우선 고향 같은 연해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3만 명 정도가 연해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오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동포비자를 받고 한국에 오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시와 광주광역시 등 국내에 약 8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광산구 월곡동에 고려인마을이 있는데 6천 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흐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력이 강한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에서도 성공한 경우가 많습니다. 카자흐스탄 인구의 0.6%가 고려인인데 모든 사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의 부자 50명을 선정하면 그중에 고려인이 3~4명이나 됩니다. 인구 비율로 보면 높은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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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고려인의 잔치상. 디저트용 과일과 조각 케익, 콩나물, 깍두기, 배추김치, 버섯 볶음, 고등어 구이가 상 위에 올라 있다.

Q : 박사님의 연구 주제는 '고려인 사회에 계승되는 전통 식생활 조사’인데요. 이런 연구 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합니다.

A : 고려인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문화인류학적 시선보다는 고려인의 생활문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5년경부터 고려인의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식과 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식문화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연구 초기엔 고려인 음식에서 한국 식문화의 원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지요. 그런데 그런 원형을 찾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인데 변치 않는 원형을 찾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고려인의 이주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접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고려인의 식문화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 보존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전통문화에 대한 전수의식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식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고려인 최초 정착지 우쉬토베와 알마티 지역에 강제이주 1 세대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들이 죽기 전에 우선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전통적인 식생활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한민족 공동의 역사적 자산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매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 박사님의 연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됩니까?

A : 연구 대상 지역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우쉬토베 그리고 한국에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입니다. 우쉬토베는 고려인 최초 정착지이자 여전히 고려인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고려인 약 4만 명이 거주하는 알마티에는 많은 고려인 식당이 성업 중이고 재래시장에서는 김치와 각종 고려식 반찬류들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의 고려인마을에 사는 청장년들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고려인 특유의 식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지역이 제 연구작업의 최적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로 고려인 가정과 고려인 일반인 가정을 50대 50의 비율로 방문하여 그들이 기억하는 전통 식생활에 대해 조사합니다. 특히 연해주 시절과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초기에 주로 먹었던 고려인 음식들을 집중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그 음식들을 만드는 과정을 재연시켜 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뿐만 아니라 알마티의 고려인사회에서 행해지는 혼례, 환갑, 생일, 돌잔치 등에 참여하여 러시아화된 잔치, 파티 문화 속에 남아있는 전통 식생활에 대해서도 자료를 수집합니다. 광주에서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고려인의 식생활을 조사하여 고려인 음식과 한국 음식이 만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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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고려인의 저장 음식. 밀봉된 유리병 안에는 소금물에 절힌 오이와 토마토 양념이 들어있다.

Q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A : 카자흐스탄에 살면서 거창한 주제보다는 고려인의 일상적인 삶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식문화는 앞으로도 더 연구할 생각입니다. 의식주 중에서 특히 식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 보수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식문화라는 창을 통해 고려인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고, 나아가 고려인에게 영향을 준 러시아 문화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러한 연구 작업이 고려인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심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백종옥 icezug@hanmail.net
  • 사진. 김상욱 almatykim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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