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미디어아티스트 박상화 무등판타지아, 시적인 영상의 숲


레지던스

미디어아티스트 박상화

박상화 작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며, 조선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조각 전공으로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영국, 중국, 일본, 대만,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고, 2018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었다. 2013년 하정웅 청년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ACC 창제작센터 크리에이터스인랩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ACC 미디어아트월 상영작 공모작가로도 선정되었다. 광주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한전KDN,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미디어아트를 통해 일상과 자연의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결합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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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면 예술가들은 그것을 활용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새로운 매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그 매체의 특성을 살리거나 자신의 감성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19세기 중반 사진술이 발달하자 처음에 그것은 단순히 풍경이나 인물의 모습을 기록하는 도구에 불과했지만, 차츰 인간의 섬세한 감성을 드러내거나 독특한 환상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이미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은 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그것을 증명한다. 사진에 이어 등장한 영화와 TV 등도 마찬가지다. 사물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상기술은 20세기 내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시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로 자리잡았다. 최근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며 진화 중인 미디어아트에서도 갈수록 첨단 기술의 과시를 넘어 특별한 정서를 지닌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7년 ACC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박상화 역시 그러한 미디어아트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는 작가이다.

박상화 작가는 초기에 잠시 문명 비판적인 작업을 했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일상과 자연의 이미지를 혼합하여 개성 있는 환상을 보여주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 바탕엔 작가가 유년기에 체험했던 섬의 자연 환경과 청년기에 만난 생활 환경에서 축적된 깊은 감성이 깔려 있다. 그런 감성들은 작품 속에서 환상적이면서도 다분히 서정적인 분위기로 드러난다. 디지털 첨단 기술도 박상화 작가의 손길을 거치면 결국 섬세하고 따뜻한 정서를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특성들을 토대로 그는 수년 전부터 광주 무등산을 소재로 삼아 자연과 일상에 대한 시각을 보다 새롭고 다양한 형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ACC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영상설치 작품들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와 작업의 변화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설명
<이너드림 아파트> LED모니터와 혼합재료, 2010

비디오 조각작품인 <이너드림 아파트>(2010)에서는 2004년부터 시작된 일상과 자연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흥미로운 소재들로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아파트 건물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파트의 베란다 창문에 구름이 흘러가거나,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꽃들이 사방으로 날리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가 거주하는 동네 근처의 아파트를 보고 제작한 건물 모형은 평범하고 단조로운 도시인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형 안에 설치된 LED 모니터에서는 자연의 세계가 초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풍경은 작가가 자기집에서 건너편 아파트 베란다를 바라보았을 때 언뜻 스쳐간 꿈같은 이미지일 수도 있고, 자연을 동경하는 도시인들의 내면에 보편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파고 들면서도 일상을 벗어난 따스한 느낌의 환상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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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드림-서산동> 필름스크린에 단채널 비디오 설치, 2013





일상과 자연을 결합시키는 작업은 2013년작 <이너드림-서산동>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는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이 남다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공중에 매단 26장의 필름스크린 위에 영상을 쏘는 방식이다. 그리고 공중에 매달린 스크린들 사이를 관람객이 지나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필름스크린을 여러 장 설치한 이유는 각 스크린마다 집의 이미지가 하나씩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집들이 다 모이면 달동네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골목길을 서성이는 사람, 낡은 집 위로 울며 날아가는 새, 창문 속에서 깜박이는 커다란 눈, 물을 쏟아내는 집, 사방으로 흩어지는 꽃,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날아오르는 반딧불이 등 사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미지들은 관객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달동네의 모습은 작가가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작업실 생활을 했던 목포 서산동의 풍경에서 비롯되었다.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에 대한 짙은 서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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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 수제스크린에 인터랙션 영상설치, 2017





2016년부터 박상화 작가는 평소 광주 무등산을 오르내리며 얻은 영감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2017년작 <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에는 무등산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사계절의 모습과 역사적인 장소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대자연인 무등산은 인간의 이상향이자 성찰의 공간으로 그려지는데, 부드러운 산수화처럼 흘러가는 영상은 시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은 2017년 4월부터 11월까지 그가 ACC레지던스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터스인랩에 참여하는 동안 제작된 것으로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천장의 높이가 6미터에 이르는 ACC복합스튜디오의 공간에 어울리게 가로 8m, 세로 4m, 높이 4.3미터 크기의 트러스(truss)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구조물 안에 80여 장의 메쉬(mesh)스크린을 일곱 겹으로 매달았다. 이렇게 겹겹이 설치된 스크린들에 무등산의 풍광이 투영되면 마치 울창한 숲처럼 깊은 공간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작품의 앞쪽에는 센서를 설치해서 관객들의 행동에 따라 영상 이미지가 다양하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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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version2> 수제스크린에 인터랙션 영상설치, 2019 (사진-김영태)





<무등판타지아> 시리즈는 앞에 소개한 작품처럼 긴 메쉬스크린을 설치하는 방식 외에 <이너드림-서산동>에서 선보였던 작은 스크린을 매다는 방식으로도 계속 실험되었다. 특히 2019년 소아르 미술관의 박상화 개인전에서 발표된 <2019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version2>에서는 보다 발전된 형식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배경을 가득 채운 무등산 이미지와 공중에 매달린 작은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 스크린 12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스크린들에 서석대, 입석대, 소쇄원, 환벽당 등 무등산의 경치와 주변의 정자들 그리고 여성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들은 유기적인 풍경을 이루며 사계절의 흐름 속에 변해간다. 반짝이는 별빛과 풀벌레 소리, 노란 단풍과 풍경소리 등은 관객들에게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보라고 가만히 말을 건네는 듯하다. 관객이 작품 앞에 다가서면 풍경은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데, 계절의 흐름이 뒤섞이기도 하고 영상 속의 여성이 관객에게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작품과 교감하며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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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무등의 판타지> 융•복합 공연, 2019





2019년 가을, 박상화 작가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했다. 미디어아트와 현대무용을 결합시킨 공연예술 작품 <5월, 무등의 판타지>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1일 광주광역시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박상화 작가와 함께 조선대학교 임지형 교수가 이끄는 광주현대무용단원 20명, 그리고 조명, 음향, 영상, 무용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조정한 조주현 연출가가 협업한 결과물이다. 40주기를 앞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융•복합적 현대예술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를 겪어보지 못한 청년이 당시 광주 시민들이 만들고자 했던 대동세상을 체험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희망찬 미래를 꿈꾼다는 내용이다. 보통 5•18이라면 연상되는 리얼리즘 형식의 공연과 다르게 이 작품은 환상과 서정이 넘치는 영상과 현대무용의 특이한 몸짓이 함께 어우러져 슬픈 기억보다 함께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전체 스토리를 기획하고 현대무용의 특성과 어울리는 미디어아트를 제작하는 역할을 맡았다. 1시간짜리 공연에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인터랙션(interaction), 크로마 키(Chroma key) 등 다양한 영상 기술을 적용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박상화 작가는 앞으로도 자신이 살고 있는 광주의 역사, 지리, 환경 등 지역적 특성을 인문학적인 시선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탐구하고, 공연예술 및 공학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을 확장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등판타지아>처럼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형식인 '영상의 숲'을 꾸준히 심화하려고 한다. 그는 오늘도 사람들이 거닐며 깊은 사색에 잠기는 시적인 영상의 숲을 꿈꾼다.

  • *참고 문헌
    <일상과 자연, 명멸하는 서정적 환상>, 백종옥, 2018 박상화 개인전 평문
    <서정적 환상이 피어나는 영상의 숲>, 백종옥, 퍼블릭아트 2019년 3월호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박상화 wls1204@daum.net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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