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미디어아티스트 정 승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끈


레지던스

미디어아티스트 정 승

정 승은 2006 년 프랑스 파리 세르지국립미술학교(ENSAPC)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 후 현재까지 설치, 미디어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기념 야외조각 프로젝트와 Korea-NRW Transfer(Kunstmuseum Bonn, 독일), Plastic Garden(East gallery, 베이징) 등의 전시회에서 공개하였다. 그리고 2017 년 8 월 대만 타이페이 소재 AKI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ACC Creators in lab, Davinci creative2019(금천예술공장), 현실이상(백남준아트센터, 2020 년 9 월 예정) 등의 전시회를 통해 ‘우주 공간에서 생명의 물질적 본질이란 정보 전달의 연속성이 아닐까’라는 가정을 작품으로 구현한 「프로메테우스의 끈」 시리즈를 비롯하여 생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선 속에서 미술, 과학, 테크놀로지 간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현대미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 왔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저마다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펼치다 보니 이제 더이상 새로운 미술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화하면 어디선가 앞선 세대와 다른 감성을 소유한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기성세대가 예상치 못한 신선한 미술을 선보이곤 한다. 그렇게 미술은 죽지 않고 생명을 이어간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시들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감수성 예민하고 호기심 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일상의 작은 일부터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그들은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학문이나 기술이라도 활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갈수록 오늘날의 미술을 전통적인 예술의 범주로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정 승도 이러한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이다.

미디어아티스트 정 승은 최근 수년 동안 여러 차례 선보인 미디어 조각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의 끈 Prometheus’s String」에서 기기묘묘한 표현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작품엔 설치, 조각,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키네틱 아트 등이 창조적으로 뒤섞여 있다. 그런 특이한 작품을 보면 저절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도대체 작가가 어떤 상상력을 가졌길래 저런 작품을 하게 된 것일까?' 그는 현대 과학, 기술, 공학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숙성시킨 상상력을 다양한 첨단 매체로 표현하는데, 이런 성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형성되었다. 「매트릭스」, 「공각 기동대」, 「아키라」 같은 SF영화들은 그를 매료시켰고, 열역학 제2법칙, 암흑물질, 초끈이론, 힉스 입자 등 현대물리학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의 상상력을 고무하곤 했다. 물론 이러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처음부터 작업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그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그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현재의 방향으로 진화해왔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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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ing Complex」 200 cycler toys, power supporting rails, mixed media/ 3.2x3.2x0.3m/ 2009





2007~2015년 시기에 그는 주로 현대산업사회의 대량생산 체제가 지닌 부조리함에 대해 냉소와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 「Circling Complex」(2009)는 이 시기의 작품들 중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자전거를 탄 인형 200개가 등장한다. 원형의 레일에 전력이 공급되면 자전거를 탄 인형들이 일제히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간다. 자전거들은 저마다 소음을 내며 원형의 레일을 따라 계속 돈다. 그러다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자전거들은 즉시 그 자리에 멈춘다. 자전거를 탄 인형들은 한결 같이 머리와 팔이 없다. 모두 익명의 존재들이다. 그들 모두는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미친듯이 출근길을 달리다가 함께 숨이 멎어버린 샐러리맨들처럼 보인다. 거대한 산업사회의 틀에 갇힌 채 한낱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린 인간 군상인 셈이다. 작가는 바쁘게 움직이던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한 할머니가 자전거를 탄 인형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1년 후 그 자전거를 탄 인형들을 수백 개 마련하여 전력 공급 방식에 맞게 직접 개조하고 원형의 레일을 제작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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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acleless Complex(essaiII)」 mixed media/ 6(dia.)x 4m/ 2013 (Installation view at Kunstmuseum Bonn/ Germany)





「Circling Complex」처럼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은 「Spectacleless Complex(essaiII)」(2013) 에서도 이어진다. 전시장 중앙에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arena)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 원형 구조물의 안쪽에는 평평한 선반 24칸이 빙 둘러 있는데, 이 선반들 위에는 마치 원형경기장의 관중들처럼 약 2000개의 노호혼(のほほん) 인형이 가득 앉아 있다. 노호혼은 태양광이나 형광등 빛에서 에너지를 얻어 머리를 좌우로 계속 흔드는 캐릭터 인형을 말한다. 보통 노호혼은 사무실 책상 위나 자동차 안에 장식용으로 놓아두는 인형이다. 노호혼은 일본어의 의미대로 '한가롭게 빈둥거리는' 모습이지만 반복적인 움직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인형의 움직임이 재미있어서 작업실에 몇 개 놓아두었는데, 어느 날 작품 구상 중에 노호혼 인형들이 머리를 흔들 때마다 몸 전체가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곧바로 그 움직임을 작품 구상에 활용하였다. 이 작품에서 선반 위의 노호혼 인형들은 천장에 설치된 형광등 빛을 받으며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면서 소음을 일으킨다. 각각의 인형들은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다가 끝내 선반 아래로 추락하게 되고, 바닥에는 망가진 인형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이 원형 구조물 안에 앉아 있는 수많은 노호혼 인형들은 전혀 한가롭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일터에서 기계처럼 쉼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상기시킨다. 현대산업사회에서 역할을 다한 뒤에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인간들의 운명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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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 Complex IV」 extension cord, Morse code transmitter, 3D printed(PLA), movement sensor/ variable size/ 2017 (Installation view at Pier-2 Art Center in Kaohsiung/ Taiwan)




미디어아티스트 정 승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생활에 쓰이는 기성품들이 작품에 활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기성품은 평소의 쓰임새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앞에 소개한 작품들에서 자전거를 탄 인형들은 작품의 상황에 맞게 개조되었고, 노호혼 인형들은 특별히 제작된 원형 구조물에 설치되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였다. 「Multi Complex IV」(2017)에서는 전기를 여러 방향에서 연결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T형 3구 멀티탭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이 작품에는 수백 개의 멀티탭들이 앞뒤로 연결되어 커다란 고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전시 공간에 매달린 멀티탭 고리의 일부는 전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등의 깜박거림이 단순치 않다는 것이다. 유심히 보면 전등은 모스 부호 방식으로 깜박거린다. 여기엔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메시지는 무엇일까? 작가는 수백 개의 멀티탭으로 이루어진 고리를 통해 갈수록 복잡해지고 비대해져 가는 현대산업사회의 시스템을 암시하며 비판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대만 피어 투 아트센터(Pier-2 Art Center)에 설치되었는데,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모스 부호의 의미를 풀어볼 수 있도록 코드 해독지도 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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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D-Rainbow」 inter-active video animation/ animation, Morse code transmitter, 3d printed sculpture/ 2018 (Installation view at ACC/ Gwangju/ Korea/ Photo courtesy by ACC)




2016~2017년 사이 그의 작업엔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기성품을 이용해 현대산업사회를 비판하는 작업과 더불어 식물의 생육과 관련된 정보를 작업에 활용하면서 그는 보다 다양하게 작업의 의미와 표현방식을 확장하였다. 2018년 ACC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제작한 「Over The D-Rainbow」는 그런 변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전시장 바닥엔 수많은 시체들로 뒤덮인 참혹한 풍경이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펼쳐져 있다. 그 시체들은 간혹 팔이나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듯하고 혼불 같은 분홍빛이 영상 위를 거니는 관객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영상의 한쪽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이는 조각품이 불빛을 깜박이며 서 있다. 이것은 식물의 생육 정보를 활용하여 제작된 조각품인데, 작가가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스 부호로 송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으며, 관객들은 바닥에 비치된 해독지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Over The D-Rainbow」는 단순히 5.18희생자들에 관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시체 들판의 이미지를 빌어 현대산업사회의 대량생산 체제로 인한 각종 폐해를 넌지시 암시한다. 작가에게 대량생산 체제는 인간 문명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공장식 축산처럼 폭력성을 수반하면서 인간과 동물들의 대량 살육과 환경 파괴 등을 야기시킨 주원인이다. 암울한 시체 들판의 한쪽에서 불빛을 깜박거리며 서 있는 작은 나무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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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etheus String VI」 plant, 3Dprint(PLA), shape generation program, monitor, motor/ variable size/ 2019 (Photo courtesy by Geumcheon Art factory)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미디어아티스트 정 승은 최근 「프로메테우스의 끈」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끈」은 201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전시회로 처음 선보인 시기는 2017년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끈」의 첫 번째 버전은 대만 타이페이의 'AKI갤러리'에서 개최된 개인전에서 쇼케이스 형식으로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77일 동안 강낭콩의 일대기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 정보를 입체적인 조형 작품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작업 과정은 이렇게 진행된다. 우선 프로젝트 장소의 위도와 경도 및 해당 지역의 인문, 역사, 사회적 이슈 등을 고려해 하나의 식물을 지정한다. 그리고 그 식물의 생육 과정에 관련된 각종 정보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다. 여기엔 식물의 크기 외에도 조도, 온도, 습도, 자외선, 주변의 소리와 움직임 등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는데, 이런 정보들은 매일 6시간 동안 센서에 의해 수집되어 컴퓨터에 전송 및 축적된다. 그리고 수집된 정보들을 토대로 컴퓨터에서 3D 형상이 자동으로 생성되면 3D 프린터를 통해 여러 모양의 조각품으로 출력된다. 즉 수집된 정보가 조각품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이 식물의 생육 기간 동안 매일 되풀이되면서 3D 프린터로 제작된 조각품도 점점 증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첫 번째 버전의 작업 방식을 토대로 두 번째 버전에서는 증식하는 조각품 위에 식물이 자라도록 하였다. 이 작품은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Taipei Artist Village)'의 레지던스 참여작가전에서 발표되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버전은 '2017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과 '한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발표되었는데, 조각품의 규모를 키우고 프로젝트 장소의 특수성이 담긴 식물을 작품에 도입하는 등 몇 가지 실험을 추가하였다. 2018년 'Space XX'에서 선보인 다섯 번째 버전에서는 조각품의 일부가 로봇처럼 움직이도록 하였고 퍼포먼스와 시청각적 실험도 병행했다. 그리고 2019년 금천예술공장의 '다빈치크리에이티브2019'에서는 로봇의 움직임을 더욱 다양하게 하고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3D 프린터를 활용한 여섯 번째 버전을 선보였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와 표현방식을 이용해 복합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끈」 시리즈는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본질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우주 공간이 무수한 정보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접한 후 ‘우주 공간에서 생명의 물질적 본질이란 정보 전달의 연속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명 현상과 정보 전달을 토대로 한 미디어 조각 프로젝트인 「프로메테우스의 끈」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작품 제목에 쓰인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전달해주어 문명 발달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제우스가 인간 세상에 질병, 증오, 전쟁 등이 든 판도라의 상자를 보내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프로메테우스는 작품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초끈이론에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진동하는 1차원의 끈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진동하는 끈의 이미지를 조각품의 형상에 접목시켜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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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etheus’s String II」 3D printed(PLA), kidney bean, art sensor program/ variable size/ 2017 (Installation view at Taipei Artist Village in Taipei)


그는 오는 9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끈 7」을 선보이려고 열심히 작업 중이다. 일곱 번째 버전에서는 식물의 생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되 예측 가능한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임의로 변형된 데이터를 작품화하는 실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방식이 기존의 버전들보다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이 다양한 매체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것처럼 그의 관심사도 일상 생활과 사회적인 이슈 그리고 예술과 첨단 과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열려 있다. 미지의 영역을 답파하려는 예술가에게 모종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끈」을 쥐고 미지의 영역으로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정 승 cepasjuste@naver.com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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