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그래픽 디자이너 용세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적 디자인


레지던스

그래픽 디자이너 용세라

용세라는 서울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를 졸업하고 2012년부터 베를린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호르트(Hort)에서 일했고, 콜렉티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호르트에서 만난 체코 출신 디자이너 파블라 자브란스카(Pavla Zabranska)와 프라울(Praoul)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 나이키(Nike), 데스크톱 메거진(Desktop Magazine), 디 차이트(Die Zeit), 파리 그래픽 디자인 페스티벌(Graphic Design Festival Paris), 에이랜드,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을 위해 작업했고, 한국, 유럽, 미국에서 열린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다. 6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인 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18에서는 전시자로, 2019에서는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베를린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베를린 디자인 소셜 클럽>(201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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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Festival 2019: FoodHack」 Visual Identity Design for Asia Culture Center, Gwangju, Korea 2019

지구상엔 수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시각 이미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각 이미지들 중에서도 개성이 강하거나 신선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뇌리에 남기 마련이다. 지난 2019년 ACT(Art & Creative Technology) 페스티벌의 강연 행사장에서 마주친 그래픽 디자인도 그랬다. ACT페스티벌은 ACC 레지던스 프로그램 중 하나인 크리에이터스인랩(Creators in Lab)의 활동 결과물을 선보이는 행사인데, 작년에는 '해킹푸드'를 주제로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행사인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SEA)과 함께 개최되었다. 그 해킹푸드와 관련된 강연이 열리는 장소에서 필자는 행사용으로 설치된 커다란 배경막 이미지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추상적인 형태와 강한 색상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그래픽 디자인이었는데, 전체 이미지는 행사 주제인 해킹푸드와 어울리게 인류가 앞으로 먹고 살아갈 생명체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 생명체들의 모습은 원시적이면서도 미래에 등장할 법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그 그래픽 디자인은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알고 보니 그것을 제작한 사람이 올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용세라'였다.

용세라 디자이너는 화려하고 다양한 색과 자유분방한 형태 그리고 밀도 높은 구성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개성 넘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런 디자인 성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2009년 대학 4학년 때 친한 친구와 함께 '사랑과 평화시장'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명은 ‘락 음악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들으며 좋아하게 된 밴드 ‘사랑과 평화’와 홍대 앞 레게 클럽에 가기 위해 히피스러운 옷을 사러 다녔던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비롯되었다. 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그들은 컴퓨터보다는 손으로 그리기에 무게를 두고 스튜디오 이름과 어울리는 이른바 B급 감성으로 치부되던 작업을 해나갔다. 그 시기의 작업 경험은 용세라 디자이너가 대학 졸업 후 베를린으로 가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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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 Contemporary for Mousonturm」 Frankfurt, Germany 2012

대학 졸업 후 그는 한국에서 잠시 패션 광고 회사를 다니며 디자인 일을 했다. 하지만 정형화된 디자인 작업이 반복되는 직장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베를린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베를린에는 그가 대학 4학년 때부터 동경하던 유명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호르트(HORT)'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한국의 직장 생활을 접고 꿈을 찾아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호르트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한 결과 디자이너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호르트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호르트는 그의 장점과 개성이 드러나도록 이끌어주는 학교 같았다. 「Arab Contemporary for Mousonturm」은 그가 호르트에서 일하던 첫해에 디자인한 포스터로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모우존투름 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아랍컨템포러리 행사의 성격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하면서 아랍에 대해 직관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를 잡아냈다. 그래서 평소 자주 사용하는 곡선 대신 직선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속도감 있게 뻗어 나간 직선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형성된 원색적인 다양한 삼각형들과 그 속에서 돋보이는 하얀색 반원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 세로 방향으로 배치된 글자들이 어우러져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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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ant Soul」 Visual Grammar Exhibition for Modern Theory, Brussels, Belgium 2012

호르트에서 용세라 디자이너는 여러 나라에서 온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며 작업했다. 그중에서도 자신보다 3개월 정도 일찍 인턴으로 들어온 파블라 자브란스카(Pavla Zabranska)와 가까워졌다. 파블라는 체코 프라하 출신이었는데, 용세라 디자이너와 성격은 많이 달랐지만 취향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들은 협업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팀명을 '프라울(Praoul)'이라고 지었다. 두 디자이너의 출신 도시인 프라하(Praha)와 서울(Seoul)을 합친 단어였다. 그들이 인턴 시절에 프라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작업한 것은 「We Want Soul」이었다. 이 작품은 201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Visual Grammar Exhibition for Modern Theory'라는 디자인 교류 행사에 참여하며 만든 포스터로 유럽 전역에서 초대된 여러 디자인 스튜디오와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포스터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행사 주최 측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디자이너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프라울은 강렬한 표현주의 회화를 연상케 하는 「We Want Soul」로 대답하였다. 이 작품엔 영어 단어 S0UL의 각 글자가 특이하게 디자인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여러 디자인 작품들 중에서도 프라울의 작품엔 '영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형상화한 것이다. 프라울은 이러한 경험을 함께 한 후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협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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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 for Graphic Design Festival Paris」 France, New York, London 2017. Photo ⓒ Graphic Design Festival Paris

용세라 디자이너는 2017년엔 '파리 그래픽 디자인 페스티벌(Graphic Design Festival Paris)'에도 참여하였다. 호르트에서 함께 일했던 파리 출신의 디자이너가 파리로 돌아간 뒤 페스티벌의 관계자가 되어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호르트도 페스티벌에 초청된 상태였다. 즉 그는 호르트 소속의 디자이너 자격이 아니라 디자이너 용세라의 이름으로 초청된 것이었다. 파리 그래픽 디자인 페스티벌은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을 초청해 그들의 작업을 파리, 런던, 뉴욕에 동시다발적으로 소개하는 행사인데, 2017년의 주제는 '스포츠'였다. 그는 스포츠의 운동감에 주목하여 출렁이며 뒤섞이는 물의 흐름 같은 곡선들과 그 곡선의 흐름 위로 떠다니는 듯한 크고 작은 원들을 배치한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었다. 위의 사진은 뉴욕의 한 버스 정류장에 전시된 그래픽 이미지인데, 추상적이면서도 강한 색상 때문에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그는 재미있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행사가 진행되던 시기에 파리, 런던, 뉴욕에 체류 중이던 그의 친구들이 버스 정류장에 전시되고 있던 그의 작품 이미지를 촬영하여 보내준 것이다. 자신의 작품 이미지가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전시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 일은 그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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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Fire」 Set and Pattern Design for Nike at Bread and Butter Fashion Fair, Berlin, Germany 2018

2018년에 용세라 디자이너는 프라울의 이름으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독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패션 페어인 'Bread and Butter Fashion Fair'는 세계 여러 나라의 바이어와 패션 관계자 들이 찾아오는 국제적인 행사인데, 이 행사에 참여하는 나이키(Nike)의 매장을 장식할 패턴 디자인 작업을 프라울이 맡게 되었다. 나이키는 당시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던 '우먼 파워'를 컨셉으로 잡고, 이를 시각적으로 제시해 줄 만한 베를린의 여성 디자이너들을 수소문한 끝에 프라울을 찾아냈던 것이다. 나이키의 매장에 전시될 상품은 원래 농구화였던 에어포스1이었기 때문에 농구 관련 이미지와 우먼 파워 이미지를 잘 연결해 보여주는 것이 과제였다. 그런데 당시 그는 서울에 머무르고 있어서 유럽에 있던 파블라를 직접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디자이너는 온라인으로 협업을 진행했다. 유럽과 한국의 시차를 이용해 그가 낮에 작업을 해서 이미지를 온라인으로 보내 놓으면, 파블라가 아침에 그 이미지를 받아서 작업을 한 후 다시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두 디자이너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성공적인 팀 작업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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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copy」 Graphic Towel Design for Aland, Korea 2018

의뢰인들의 요청에 따라 진행하는 일 외에도 용세라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매진하는 작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Microscopy」이다. '현미경 관찰'을 의미하는 이 작업은 그가 3년째 진행하고 있다. 현미경 속에서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미시의 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살아 있는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쉼 없는 생명체의 활동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 것처럼 「Microscopy」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의 움직임과 생명성을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작업이다. 그는 이 작업에서 주로 자연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곡선과 화려한 색감을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2018년에 그는 이러한 작업을 쇼핑몰 에이랜드(Aland)에서 그래픽 타월 이미지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올해 '바이오필리아(Biophillia 생명사랑)'를 주제로 삼은 ACC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이번엔 평면보다는 입체적인 소재에 그래픽 디자인을 적용해보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리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결과물은 문화 상품으로 선보이기 때문에 작업 과정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어떻게 상품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연구하려고 한다.

용세라 디자이너는 의뢰인들이 원하는 작업을 맡기면 그 작업에 대한 느낌을 형용사로 표현해달라고 요청한다. 의뢰인이 제시하는 형용사의 느낌을 직관적이고 추상적인 스케치로 표현하면서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작 방식을 통해 그는 의뢰인들을 위한 작업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이미 개인 작업이든 의뢰인을 위한 작업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것들을 그만의 디자인 세계로 물들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의 디자인 세계에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접한 영화나 소설부터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에서 발견한 동물이나 식물까지 모두 상상력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의 손을 거치며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이미지로 자라난다.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용세라 goodsera@gmail.com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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