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미디어아티스트 닥드정 형이상한 예술, 실험실에서 태어나다


레지던스

미디어아티스트 닥드정

하드웨어의 기계적, 물리적 변화와 움직임에 집중하는 닥드정(Dakd Jung)은 일반적인 미술 소재가 아니라 일상에서 쓸모 없는 소재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의 물질적 특성을 연구해 작업으로 발전시킨다. 특히 관객이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경험할 때 보이는 상호작용을 다양한 맥락으로 확장해내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자성유체를 이용한 작품 「형이상한 연못」이 대표적이다. 전기, 전자,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이후에는 게임기획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으며, 최근에는 뉴미디어 작가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채 시험관을 흔들어서 관찰하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더니 여러 물질들을 섞어서 실험을 해본다. 그리고 전선이 많은 부품들을 여기저기 조립하고 컴퓨터로 기계들을 제어하더니 무엇인가 설치한다. 실험실이나 연구실처럼 보이는 곳에서 작업 중인 저 사람은 누구일까? 과학자일까? 기술자일까? 아니다. 이곳은 미술작가의 작업실이고 그의 이름은 닥드정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림, 조각, 미술 재료 들로 꽉 찬 고전적인 작업실 이미지만 떠올리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미디어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면 고개를 조금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수많은 미술작가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해 나가고 그에 따라 미술의 모습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아티스트들은 과학과 첨단 기술을 이용해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한다. 작품 제작을 위해 과학자나 기술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그들과 협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직접 작업에 필요한 과학적 연구와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닥드정도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것부터 작품 제작까지 스스로 하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이다. 그가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바탕에는 많은 체험이 깔려 있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와 정보통신을 공부한 후 게임기획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보았는데, 그런 자양분 같은 기초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시각미술과 여러 디지털 매체를 다루는 일에 능숙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에 잠시 그림 작가로 활동한 다음부터 보다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미디어아트에서 흥미를 느끼고 그만의 작업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는 평소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평범하거나 하찮은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실수나 실패한 것, 잘못 보거나 들은 것 등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발견한 시각적인 흥미로움과 아름다움을 자기만의 기술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의 작품 소개 영상들을 보면 작업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한 단계씩 발전해 왔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이미지 설명
「드로잉 시퀀서」 실시간 색상 분석 시스템, 미디 가상악기, 종이, 물감 / 140x140x12cm / 2015 /
남송미디어페스티벌(전시 및 사운드 퍼포먼스) / 성남아트센터




초기에 그는 그림을 열심히 그려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성씨 앞에 '닥드(닥치고 드로잉의 줄임말)'라는 예명을 붙여 쓰면서 그림 작가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음악가들을 동경했는데, 그 때문에 직접 악기를 배워보려고 했다가 이내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지점에서 그는 독특한 상상을 하였다. 자신만이 다룰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는 특이한 악기를 떠올린 것이다. 그런 상상을 현실화시킨 작품이 바로 「드로잉 시퀀서」(2015)이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 동시에 음악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시각적인 표현을 청각적인 소리로 치환해주는 작업이다. 캔버스에 무엇인가 그려지면 실시간으로 웹캠이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동시에 컴퓨터에서 이미지의 위치, 형태, 색상에 따라 악기와 음계가 구성되면서 일정한 패턴의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캔버스를 스캔하는 방식으로 내보낸다. 이러한 감각의 전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했고, 어느 때보다도 작업의 재미와 만족감을 느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미디어아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설명
「블랙 아메바」 전자석 매트릭스 장치, 자성유체, 샬레 / 12x12x2cm / 2016 /
다빈치아이디어마켓 /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코엑스




2016년에 그가 선보인 「블랙 아메바」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유사한 작품들의 출발점이다. 샬레에는 원시 생명체인 아메바 같은 검은 물질이 이리저리 꿈틀거리고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불길한 느낌도 든다. 아무리 살펴봐도 검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비밀은 검은 물질과 테이블 밑에 숨겨진 장치에 있다. 샬레에 담긴 검은 물질은 '자성유체(磁性流體, Ferrofluid)'이다. 1960년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선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자성유체는 자철석 미립자가 들어 있는 액체로 강한 자성을 띤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고자 그는 샬레가 놓인 테이블 아래에 144개의 전자석 매트릭스 장치를 설치하였다. 이 장치를 통해 자력을 발생시키면, 샬레 안의 자성유체가 자력에 끌려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성유체의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사전에 뎁스 카메라(Depth Camera 깊이감지카메라)로 손의 움직임을 녹화하여 접목시켰다. 이 작품은 작은 놀이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그는 우연히 자성유체를 가지고 노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고, 신기한 마음에 아마존에서 그것을 구입해서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살아 있는 것처럼 크게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딱히 쓸모는 없지만 진지하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유용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진지한 농담 같은 것을 슬쩍 던지고 있다.



이미지 설명
「형이상한 연못(Pataphysical Pond)」 전자석 매트릭스 장치, 자성유체, 유리수조 / 140x140x12cm / 2017 /
다빈치크리에이티브 / 금천예술공장




자성유체를 이용한 「블랙 아메바」는 한 단계 진화하여 「형이상한 연못(Pataphysical Pond)」(2017)이 되었다. 이제 검은 자성유체가 노니는 세계가 샬레에서 연못으로 확장된 것이다. 둥근 연못처럼 강한 조명 빛이 비치는 수조 아래에는 536개의 전자석들이 깔려 있는데, 이 전자석들은 작가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사전에 녹화한 움직임에 따라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면 수조 안의 자성유체는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특히 살아 있는 세포가 분열하듯이 쪼개져서 서로 어떤 문자 같은 모양을 주고받는 듯한 행동을 보이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잠시나마 자성유체를 모종의 지각이 있는 생명체로 착각하게 만든다. 또한 자성유체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기묘한 형태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얼룩이나 서체 추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의 제목을 「형이상한 연못(Pataphysical Pond)」이라고 지었다. 여기엔 약간 유희적인 의미가 겹쳐 있다. '형이상한'은 작품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형태가 이상하다'는 뜻도 있지만, '형이상학(Metaphysics)을 풍자하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의 의미도 담고 있다. 파타피직스는 허구를 진지하게 믿는 척하는 사이비 과학이나 철학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파타피지컬(Pataphysical)'이란 단어로 작가와 관객이 함께 가상의 연못이 있다고 믿는 척하는 상황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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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미술」 원천미술 시리즈 1,2 + 연구과정 아카이빙 설치 / 각 6min 영상 / 2018 /
제로원데이 / (구)현대자동차 원효로서비스센터




이렇게 자성유체를 이용한 작업을 하면서 한편으로 그는 새로운 재료를 만드는 일에 도전했다.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려면 표절 시비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 완전히 새로운 재료를 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성유체처럼 자성에 반응하는 물감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검은색 자성유체를 직접 만들어서 특성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었다. 안전한 실험을 위한 글러브 박스(glove box)를 짜고나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실험기구와 물질을 이용해 기존의 유성 자성유체와는 다른 수성 자성유체를 만들어 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쌓은 지식을 발판 삼아 처음에 생각했던 흰색 자성유체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흰색 수성 잉크를 이용한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실험의 성공을 위해서는 계면활성, 나노입자, 분산제 등 더 많은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관련 논문들을 뒤지고, 관련 업체의 기술 자문을 받기도 하면서 실험을 계속했다. 하지만 데이터만 쌓일 뿐 실험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었고 회의감도 들었다. 「원천미술」은 이와 같은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 작품이다. 이 영상 작품은 작가 자신의 힘든 노력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기록물의 성격이 있지만, 맹목적으로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은근히 풍자하는 면도 있다. 특히 영상 중에 작가가 수성과 유성 자성유체의 자리에 각각 들어간 시험관들을 자꾸 뒤바꾸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새로운 것을 찾고자 오락가락하는 현대 예술가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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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OR」 전자석 매트릭스 장치, 뎁스 카메라, 유리수조, 자성유체, 충진액 / 2019 /
제로원데이 / (구)현대자동차 원효로서비스센터 




「형이상한 연못」에 이어 2019년에 선보인 「FERROR」라는 작품은 자성유체 작업의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FERROR」가 이전의 작품들과 크게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다른 점은 수조가 수평으로 놓여 있지 않고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조가 수직으로 설치되면 중력에 의해 자성유체는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가는 수조에 투명한 충진액을 채워 넣었다. 이 충진액은 유리 재질의 수조에 자성유체가 달라붙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가라앉으려는 자성유체를 약한 자력으로도 쉽게 들어올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충진액의 비중을 무겁게 만들었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자성유체가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수조 뒷면에 전자석 매트릭스 장치가 설치되어 자성유체를 움직이는 방식은 이전의 작품과 동일하다. 하지만 수조 위쪽에 뎁스 카메라가 추가되었다. 그래서 관객이 수조 앞에 서서 동작을 취하면, 자성유체는 그에 따라 서서히 움직인다. 관객은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흉내내는 이 낯선 물질을 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 잡히게 된다. 관객의 모습이 투사된 추상적 이미지는 내면의 그림자 같기도 하고, 영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Ferrofluid(자성유체)와 Mirror(거울)을 합성한 작품 제목 「FERROR」에는 '관객의 모습을 거울처럼 흉내내는 자성유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닥드정의 작업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지금 그는 ACC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는 자기력이 아닌 중력을 이용한 움직임을 연구하는 중이다. 넓은 천에 여러 개의 줄을 매달아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여 다양한 형태의 골짜기가 생겨나도록 만든 다음, 거기에 플라스틱 공들이 중력을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니도록 할 계획이다. 이 작품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끝날 때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게 된다. 그 후엔 내부 기체의 흐름을 조작할 수 있는 거대한 에어매트를 제작하여 그 위에 구슬들을 풀어 놓는 작업도 시도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자성유체의 움직임을 응용한 작업은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닥드정의 미디어아트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단지 기술력만 내세우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상상력과 감성을 깊이 건드리는 면이 있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그의 실험실에서 더욱 마법 같은 예술이 탄생하리라고 본다.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닥드정 ttlsksky@gmail.com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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