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ACC_R 다이얼로그 연구자 김순웅 팬데믹 시대의 치유적 공용공간


레지던스

김순웅 연구자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근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10여년 이상을 지냈던 파리는 이방인의 눈에 늘 한결같은 도시풍경이었고 문화, 예술적 시선이 살아 있는 도시였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근대건축사를 공부하며 건축의 원시성과 일상성에 대한 주제로 한 건축가의 일대기를 다루어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한국의 낯선 남도 지역에 와서 전통 건축재료인 흙에 매료되어 흙건축의 문화인류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현재는 국립목포대학교에서 바이오필릭 디자인 건축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설계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 theo713@nate.com



코로나19 이후로 일상이 많이 변했다.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는 것은 필수가 되었고,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 가거나 지인들을 만나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대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비대면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예전처럼 평범한 생활조차 맘 편히 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의 마음에 알게 모르게 우울, 짜증, 분노 같은 감정들이 쌓여 가고 있다. 코로나19의 종식이 아직 미지수인 상태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올해 '바이오필리아(Biophillia 생명사랑)'를 주제로 삼은 ACC레지던스 프로그램에도 이러한 고민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다이얼로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김순웅 연구자도 그중 한 명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코로나19로 발생한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 건축적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치유의 개념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적 상상력은 현시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가 ACC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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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전망과 은신처 이미지 및 이론


Q: 박사님이 ACC에서 연구하시는 주제가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 특성이 반영된 치유적 공용공간」인데요. '바이오필릭 디자인'이란 무엇입니까? 최근에 생긴 디자인 개념인가요?

A: 바이오필릭 디자인이라는 말은 '바이오필리아'와 '디자인'의 합성어입니다. 환경 심리학자 켈러트 (Kellert S.)가 생물학자 윌슨(Wilson E.)의 바이오필리아 사상에 근거하여 제안한 것인데, 현대 인류에게 꼭 필요한 디자인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으로 치유적 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 환경에서 자연과 연계될 필요성을 깨닫고 건축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90% 이상을 도시와 실내공간에서 보내는 현대인들에게는 자연과 연계하려는 타고난 본능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Q: '바이오필릭 디자인'이나 '치유적 공용공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개인적인 계기나 체험이 있었습니까?

A: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박사 과정에서 근대와 현대 건축재료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였고 그러던 중에 전통 건축재료인 흙에 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왜 흙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다가 흙이 가장 흔한 재료이자 많은 나라에서 오래도록 사용된 건축재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주요 특성인 자연과 인간의 진화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후변화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일상적으로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에게 건축환경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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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파사쥬

Q: 「바이오필릭 디자인 특성이 반영된 치유적 공용공간」이란 주제를 정하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배경이 있습니까? 올해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신 것인가요?

A: 우리는 고도로 밀집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고,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두기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나 레저, 문화 활동 또한 집에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는 개인 공간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을 유발합니다. 1인 가구 중심의 주거 형태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고립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가하고 있고 불안감, 우울 등 이른바 코로나 블루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밀한 대도시에서 어떻게 사회적 거리를 두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인가? 직주일치(職住一致) 시대에 적합한 주거환경은 무엇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개인 생활공간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고립감과 우울함을 감소시킬 수 있는 건축적 해결책이 있을까? 저의 연구는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생활공간들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뭔가 좋은 해결책이 있을까요?

A: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 등 많은 시간을 개인적 공간에서 보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주거공간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은신처 기능과 외부와 적절히 소통하는 전망성이 함께 필요합니다. 공용공간으로서 '중정(中庭)'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정은 도시형 집합주택에서 외부와 거리를 두되 이웃 간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Q: 공용공간인 중정은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외국에서 중정이 보편적인 곳이 있을까요?

A: 우리나라도 근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시에 안마당을 끼고 있는 '미음(ㅁ)' 자형 주택들이 많이 있었고, 시골 마을에도 좁은 길 사이에 낮은 울타리로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던 이웃 간의 정겨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주택의 공간구조 특성들이 근대화되면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겠죠. 프랑스 파리에는 블록형 집합 주거 방식이 있는데 19세기 중엽에 파리 지사 오스만(Haussmann B.)의 도시계획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7층 규모의 건물로 1층은 상가, 나머지 층은 주거로 구성되어 있어 주거 밀도가 높으면서도 내부에 상당히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공용공간은 거리에서 시각적으로 노출이 되지 않고 독립된 안전한 곳이자 주민 간의 소통이 활발한 공간입니다. 이러한 공용공간은 시대를 거치며 변화를 겪었지만, 기본 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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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카르티에 재단(Fondation Cartier) - J. Nouvel

Q: 설명을 들어보니 '전망'과 '은신처'가 인간의 삶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한 기존의 연구나 이론이 있을까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A: 인류학자 홀(Hall E.)은 거리에 따른 인간의 행태, 공간에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해 연구한 바 있는데, 주거공간에서 은신처와 조망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곳이 중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정은 물리적 보호와 심리적 보호가 가능한 공간이고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자 오리언스(Orians G.)의 사바나 가설에 따르면, 인류는 선천적으로 선사시대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살아온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을 선호하도록 진화했다고 합니다. 이 사바나 가설에 근거하여 지리학자 애플턴(Appleton J.)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환경을 ‘전망과 은신처’ 개념(사진1)으로 설명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동시에 외부 위험을 감시하고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는 환경을 선호합니다. 우리가 사는 집합주택 또한 은신처성과 전망성의 균형이 적절할 때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박사님이 하시는 연구의 목적은 유럽의 중정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공용공간을 건축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것 같은데요. 참고할 만한 기존의 사례가 있을까요?

A: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는 적절한 사회적 거리 유지와 함께 사회적 고립감을 감소시켜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므로, 집합주택 공용공간의 치유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19세기 파리 건축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파사쥬(passage)와 카르티에 재단, 그리고 일본의 한 아파트 단지에 해답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파리의 파사쥬(사진2)는 몇 개의 건물을 이어 만든 통로로서, 유리와 철골로 된 지붕과 대리석 바닥으로 만들어진 건축입니다. 화려한 상점과 노천카페들이 즐비한 실내와 거리의 경계를 없앤 장소적 특성이 있습니다. 파사쥬는 내·외부를 결정할 수 없는 불확정적인 공간의 상태로 내·외부를 보는 관찰자의 시선을 끊임없이 교차시킵니다. 이러한 시선의 교류가 파사쥬를 하나의 경계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만듭니다. 파사쥬적인 중정은 관습적 내·외부 관계에서 벗어나 거주민들에게 새로운 인식적 경계를 강화하게 함으로써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파리의 카르티에 재단 건물(사진3)은 투명한 유리의 이중 외피 구조가 시간이나 자연 또는 도시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고 내·외부가 고정된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 소통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 내부 깊이 도시와 시각적으로 연속되었으나 단절된 자연 상태의 중정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인 일본의 기푸 아파트 단지(사진4)는 개별공간과 중정 사이에 반투명한 벽을 설치하여 시각적 외피를 경계로 환원합니다. 이렇듯 기존 중정 공간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하고 한편으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요구하는 은신처성과 전망성의 균형을 공용공간에 잘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저의 건축적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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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기푸 아파트(Gifu apartment) - SANAA

Q: 박사님의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집니까?

A: 크게 세 단계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첫 번째 단계로, 사회적 고립감과 관련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하여 코로나 블루, 주거 현황, 인간행태, 커뮤니티, 공공성, 프로세믹스(Proxemics 근접학 이론)를 키워드로 한 문헌을 분석하였으며, 이론적 토대로 공용공간의 의미 및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특성 중 자연과 인간의 진화 관계에 포함된 전망과 은신처 이론을 검토하였습니다. 그다음, 19세기 집합주택과 현대의 집합주택에서 나타나는 폐쇄성과 개방성 관련한 공용공간 특징의 변화를 분석하였습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사례분석을 통한 중정의 특징을 정리하고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치유적 특성과 접목해서 새로운 유형의 집합주택 공용공간을 제안하였습니다.

Q: 세 번째 단계에서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치유적 특성과 접목해서 새로운 유형의 집합주택 공용공간을 제안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신축 외에도 기존의 집합주택 구조를 변형해서 공용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까요?

A: 선행된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대도시의 비중정형 집합주택보다 중정형 집합주택에서 사회적 활동(인사나 간단한 대화 등) 수가 더 빈번하고 그로 인해 커뮤니티 의식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일부 개별주택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습니다. 따라서 전망과 은신처 이론을 기초로 하여 시선과 응시에 대한 균형을 찾는 공용공간을 제안하였습니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개구부의 위치나 크기를 조정하는 방식, 반투명 유리 재료들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신축의 경우, 외부에서의 동선을 차단하되 시선은 열려 있고, 내부에서는 편복도와 계단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웃 간의 만남의 기회가 많아지도록 유도합니다. 외부에서 보이는 개별공간은 칸막이벽이나 반투명 유리 등을 활용하여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도록 계획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방법은 기존의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와 확연히 구별됩니다. 대규모 단지를 좀 더 세분화시켜 중정형 집합주택으로 분리하는 방법입니다. 참고로 파리의 대부분의 집합주택(사진5-1, 5-2)은 건축법으로 규제하여 7층을 넘지 않으나 주거 밀도는 유럽에서 가장 높습니다. 예를 들어, 15층 아파트를 7층으로 줄이고 건폐율을 높이면 일조사선(日照斜線) 규정에 따른 인동간격(鄰棟間隔)을 반으로 줄일 수 있고 중정이 있는 주거 밀도는 유지되는 계획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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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1) 파리 오스만 집합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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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2) 파리 현대 집합주택

Q: 제안하신 공용공간을 우리나라의 더 많은 집합주택에 실제로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도적인 의무화가 필요할까요? 또는 주택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 바뀌어야 할까요?

A: 현재 건물 사이 거리에 대한 법적 규제는 일조권에 의한 것인데, 향(向)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마주 보는 높이를 기준으로 건물 사이 거리가 정해집니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시각적 프라이버시의 확보인데, 이것 또한 마주 보는 건축물에 대한 기준으로, 높은 건물과 낮은 건물의 조합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획일적인 판상형 고층 아파트에만 유리한 방식으로 법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렇듯 중정이 있는 블록형 집합주택의 다양한 적용성을 반영한 법적 개선 방안이 필요합니다.
흔히 중정형 집합주택은 프라이버시가 확보가 안 된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이 획일화된 형태의 아파트 문화에서는 녹지공간이나 커뮤니티 센터 등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기보다는 일부 주민의 전유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주거 형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럽의 중정형 집합주택의 경우, 외부로부터 차단된 동선으로 인해 안전성이 확보되고 중정으로 열린 발코니에서 이웃 간의 소통이 흔합니다. 기본적으로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 등이 교류되는 휴먼스케일의 공간이 형성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우리의 의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이 문제가 되는 시점에 도시형 주거 형태는 대규모 단지계획보다는 소규모 단지, 중정형 단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웃과의 커뮤니티 형성이 원활하고, 자연요소가 충분히 반영된 테라스나 중정 등 외부공간에 대한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Q: 제안하신 내용처럼 앞으로 모델이 될 만한 공용공간을 품은 건축물을 지어보실 계획이 있습니까?

A: 기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오가는 동선과 함께 자연요소 즉, 자연의 빛과 녹음이 우거진 중정이 담긴 집합주택 계획에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 인터뷰 정리: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김순웅 theo713@nate.com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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