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인문학은 사람이다 사람을 향하는 인문학공간, 소피움


광주초이스



인생의 풍랑을 헤쳐 나갈 튼튼한 돛이 있다면, 정신의 거센 폭풍우 앞에서 돛이 되어줄 지혜 한 자락이 있다면 우리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할 것이다. 폭풍우 앞에서 한껏 둥글게 부풀어 떨면서 바다를 건너가는 돛. 그 돛이 ‘인문학’인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니체와 함께 거친 풍랑을 넘고, 때로는 플라톤과 함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빨강머리 앤과 함께 웃고 울고,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 춤추며, 에픽테토스와 더불어 진정한 자유를 사색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인문학은 다름 아닌 삶을 사랑하는 일이며, 나를 키우는 길이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인문학은 말 그대로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뭐지?’ ‘사람답게 사는 방법은 뭐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에요. 질문의 수준만큼 답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인문학 공부를 하다보면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자취와 흔적들을 만나면서 힌트를 얻게 돼요. 좀 더 지혜로운 방법들을 찾을 수 있고.. 매일같이 먹는 밥처럼 내가 행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사는 것 자체가 인문학이죠. 거기에 빠져서 안 되는 사유는 어떻게 살지 방향성을 놓치지 않는 것, 그 물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죠.”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구해가는 과정에 인문학이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는 인문학이다. 인문학공간 소피움. ‘예술에 취해 흥얼거리기도 하고 철학적 두통에 아스피린을 찾기’도 하는 인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의 집. 소피움에서는 오늘도 책 한 줄에 삶 한 발짝씩,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미지 설명
소피움 조미나 대표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어린이 인문학 수업을 이끌고 있는 김시인 대표

가슴으로 만나는 인문학
인문학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의 공간



인문학공간 소피움(sophy-um)은 그 이름처럼 지혜(sophy)를 사랑하는 이들의 공간이다. 광주 일곡동 카페거리에 물리적 공간을 두고 있고, 그 공간 안에서 또 그 너머에서 많은 이들과 인문학의 즐거움을 나눈다. 독서지도 전문가이자 인문학 강사인 조미나 선생님과 김시인 선생님, 두 분의 대표가 소피움을 이끈다. 어느 날에는 사진 강좌가 열리고, 또 어느 날에는 동네 독서모임이 이뤄지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나름 수준 높은 토론을 이어가기도 한다. ‘웃음꽃 작은 도서관’을 겸하고 있어 편하게 찾아가 책을 읽기에도 좋다.

그날그날 틀에 메이지 않는 경계 없는 배움이 춤을 추는 곳. 인문학공간 소피움. 모든 위대한 일들이 그렇듯 출발이 거창하지는 않았다. 어느 여성 센터의 독서논술지도자 수업이 계기가 됐다. 육아에 지친, 흔히들 ‘경력단절여성’이라 불리는 젊은 엄마들이 모였고 그림책부터 역사,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6개월 과정을 2년까지 연장해가며 함께 공부를 했다. 경력단절보다 더 큰 아픔은 나 자신과의 단절이라는 사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 내 삶의 변화를 위한 실마리는 내가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아온 시간이었다. 단순히 취업을 위해 찾아왔던 이들이 2년의 시간 동안 자신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결혼과 육아에 메인 젊은 엄마들이 한 걸음씩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가슴 저릿한 감동으로 지켜봐온 사람이 바로 조미나 대표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수업 시작하고 처음 6개월 정도는 수강생들이 계속 울었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텍스트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고,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들.. 독서라는 게 결국은 자기와의 만남이잖아요. 자기치유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상처받았던 나의 내면이 치유되고 관계를 맺는데서 위축되었던 내가 주체적으로 서게 되는, 그야말로 내면의 힘이 커진 거예요. 독서논술지도자 과정으로 출발했던 여성분들이 공부를 통해서 자기 주체성을 다시 찾고 관계의 회복까지가 이뤄진 거예요. 결국 취업의 목표는 사라지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죠.”

육아에 지친 젊은 엄마들을
숨 쉬게 한 인문학의 힘
그 힘으로 ‘인문학공간 소피움’이 탄생했다.



바로 이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힘, 조금씩 살며시 나를 바꿔가는 힘. 공부와 함께 찾아온 그들의 변화를 오래 오래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공부모임 ‘우생우존’이 지금 소피움의 모태가 됐다.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금은 고루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구성원들의 진심이 담긴 이름이기도 했다. 인문학을 접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를 찾아가게 된, 정직한 경험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처음 4년 동안은 일명 ‘호모 노마드’, 떠도는 유목민의 시간이었다. 마땅한 모임 장소가 없어 온갖 인맥을 동원하여 청소년 문화의 집부터 서구문화센터, 도서관, 동네 책방까지.. 참 많이도 떠돌았다. 떠돌았지만 생에 대한 의지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게 뿌리내렸다. 그때쯤 인문학의 기쁨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바람이 싹텄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4년 정도를 떠돌면서 공부를 하다가 우리 공간이 있으면 훨씬 안정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문학을 공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렵사리 돈을 모아서 일곡동에 공간을 얻었죠. 지혜를 사랑하는 소피움과 인문학을 공부하니까 인문학공간이라고 해서 인문학공간 소피움이 됐죠. 공간을 열어두니까 신기하게도 다양한 공부모임이 찾아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비폭력대화 모임, 발도르프 수채화 모임, 마을생태안내자 모임, 교사 분들의 모임 등 소피움이라는 공간 혼자서 정말 많은 일들을 했더라고요.”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김옥열 사진작가가 이끄는 사진 강좌가 진행 중이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소피움에서 열린 ‘아시아의 미소’ 사진전


처음 자리에서 4년을 보내고 지난 해 3월 소피움은 일곡동 카페거리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이른바 확장이전이다. ‘우생우존’ 공부모임을 시작한지 햇수로 12년만의 일이다. 현재 ‘우생우존’을 비롯해서 경전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경전읽기’ 모임, 인문학을 연구하는 ‘심포지아’, 고전읽기 모임인 ‘필로소필’, 청소년 인문학 모임인 ‘아나키 인문학교’ 등의 모임이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아이 엄마들의 인문학 모임이 씨앗이 되어 소피움이라는 공간이 열렸고 그 공간에 깃들어 기꺼이 인문학을 선택한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소피움의 지향점은 하나다. 사람을 향하는 인문학. 삶을 사랑하는 인문학이다. 조미나 대표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생활밀착형 인문학”이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생활밀착형 인문학.. 제가 자주 쓰는 말인데요, 인문학이 별게 아니고 내가 먹고 있는 밥이 나를 살리고 있구나. 내가 먹는 것이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돕는구나.. 이런 나에 대한 철학이 인문학이라는 걸, 인문학이 어렵지 않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해요. 무엇보다 동네 주민들과 폭넓게 소통하기 위해서 좀 더 재밌는 인문학 강좌를 많이 준비하고 있어요.”

살아가는데 쓸모가 있어야
인문학의 존재 의미가 있다.
삶을 뜨겁게 잘 살도록 도와주는
‘생활밀착형 인문학’



카페거리로 장소를 옮겨온 뒤 첫 번째 목표가 동네주민들과의 관계 맺기였다. 공간이 자리한 그 마을에서부터 인문학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인문학공간 소피움의 과제라 생각했다. 그래서 빼낸 비장의 카드가 ‘생활밀착형 인문학’이다. 삶 너머에 있는 공허한 논리가 아닌 이 몸으로 이번 생을 잘 건너가는데 도움이 되는 쓸모 있는 인문학. 첫 시도로 올해 상반기 ‘손이 똑똑해지는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손바느질부터 정리의 기술, 푸드 테라피, 발효음식 만들기 등 말 그대로 생활로 파고드는 강좌였다. 인문학을 생소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마중물 강좌, 재미난 단편소설을 읽으며 깃털처럼 가볍게 만나는 ‘깃털데이’도 매달 한차례씩 꾸준히 열린다. 마을 주민들을 향해 날리는 소피움의 진심어린 프러포즈다. 우리 여기에서 함께 인문학의 매력에 빠져보자고. 가장 위대한 스승들과 함께 인생의 사막을 건너가자고...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다시금 삶을 일으키는 변화의 힘
노숙인 인문학교실에서
치유와 회복을 발견한다.



삶을 잘 사는 데 쓸모 있는 공부가 인문학이라면 그 공부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길을 잃은 사람들,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럴 때 소피움은 기꺼이 자신의 품을 공간 너머로 확장해간다. 조미나 대표가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하는 노숙인 재활센터의 인문학교실은 또 다른 소피움이다. 그곳에서도 지혜는 피어난다. 2016년 처음 시작해 어느 덧 3년째. 올해도 7월부터 무려 32강을 목표로 일주일에 한차례씩 노숙인을 만난다. 처음에는 아예 엎드려 있거나 눈도 마주치지 않던 사람들이 횟수를 더해갈수록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간다. 더디지만 분명하게 치유와 변화가 찾아온다.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 봤을 그들이 인문학에 기대어 다시금 일어설 힘을 얻는 것이다. 노숙인을 철학자로, 절망을 희망으로, 좌절을 용기로 바꾸는 변화의 길목에 가슴 뭉클한 인문학의 감동이 있다. 인문학의 진정한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실제로 어떤 젊은이는 자기가 지금은 노숙인 신세지만 인문학을 만나면서 삶의 의지가 새로 생겼다고 얘기하신 분이 있어요. 공부 시간을 많이들 기다리세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시간보다 지적으로 생각을 나누는 인문학 시간을 더 기다리고..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불편하지만 자기 자신을 만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긴 것 같아요. 회피하지 않고 내가 서있는 지점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지속적으로 생기면 자활이 가능해요. 그 힘을 어디서 키울 것인가.. 그게 의지인 거죠.”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인문학은 그 시작도 끝도 사람이다. 사람에 이끌려 인문학의 세계를 만나고 그로 인해 사람이 달라진다. 사람에서 출발해 사람으로 향해가는 인문학. ‘우생우존’ 멤버로 소피움의 처음부터 함께 했던 임정량씨에게도 인문학은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흔쾌히 모임을 맡아준 소피움의 두 선생님에 대한 믿음, 꾸준히 함께 해온 벗들을 향한 믿음.. 그 믿음이 있어 중심 잡고 잘 살아왔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소피움 선생님들에 대해서...그 부분은 말로도 안 되는 것이고 두 분 선생님이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모습들이 크죠. 소피움이라는 곳은 어쨌든 두 선생님이거든요. 처음에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어, 하고 싶으면 해야지, 읽고 싶으면 읽어야지’ 하면서 흔쾌히 도와주시는 그런 마인드세요. 뭘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힘들지 않아요? 어렵지 않겠어요?’ 이런 말은 잘 안하세요. 여기에 오면 나도 뭐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이 있죠.”

이미지 설명


서로의 삶을 열렬히 응원하는 소중한 벗들이 있어서 힘이 나는 공간. 인문학공간 소피움. 한 때 노트에 꾹꾹 눌러 적었던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네가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 오늘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을 때,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모를 때, 아니면 그 어느 때라도 인문학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조르바가 화통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올 것이다. ‘아. 당신은 인문학 하는 사람이로군’ 이라고...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정말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조미나 대표 / 인문학공간 소피움

“인문학은 나 자신에 대해서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되는 일종의 계기가 돼요. 함께 공부를 하신 분들이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생겼다고 말해줄 때...소피움이라는 이 공간에서 계속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혼자 행복할 것인가, 함께 행복할 것인가. 혼자 행복하기는 쉽지만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해요. 어떤 책 중에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책이 있는데.. 가끔씩 생각해요.. 함께 잘 살아야지...”


인문학공간 소피움
광주 북구 일곡마을로 41번길 44
062-575-2525


  • . 유연희 heyjeje@naver.com
  •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다시보기

고려인, 유랑은 끝나야 한다.

July, 2020

‘오지고 아즘찬이한 전라도의 보물’

June, 2020

무대에서 살아난 오월 정신

May, 2020

예술이 숨 쉬는 집

April, 2020

미술과 사람을 잇다

March, 2020

아는 만큼 들리는 클래식의 세계

February, 2020

창작자와 향유자를 연결하다

January, 2020

since 1935 광주극장

December, 2019

세상을 향한 신명난 울림!

November, 2019

문명의 뒷마당을 거닐다

October, 2019

구독하기 팝업 타이틀
이메일 주소 입력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

1. 이용목적 :  '웹진 ACC' 발송
2. 수집항목 :  이메일
3. 보유기간 :  '구독 취소' 시 이메일 정보는 삭제됩니다.
4. 동의여부 :  개인 정보 수집 동의 후 '웹진ACC'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웹진ACC' 발송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통해서도 '웹진ACC'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