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미술문화매개자,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창작자와 향유자를 연결하다


광주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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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사는 걸까. 숱한 일들이 생겨나고 사라져가지만 우리의 기억은 너무나도 쉽게 잊히고 왜곡되고 재편집된다. 잊힐 것은 잊혀야 하지만 기억되어야 할 것은 꼭 기억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억’ 대신 ‘기록’을 선택한 이가 있다. 기록으로 지난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를 연결하고 그 시간의 길 위에 또 다른 발자국을 새겨가는 사람. 그 기록 속에서 남도의 미술세계가 새롭게 발견되고 더 다채로운 빛깔로 재창조된다. 우리 지역 남도 미술의 기록자이자 매개자, 광주미술문화연구소를 만난다.

조인호 대표 /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누군가 관심 갖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잖아요. 광주전남 미술판의 과거와 현재를 미술 관련된 매체에서 꾸준히 남겨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어요. 창작자와 향유자를 링크 시키고 연결하고 함께 공유하는 ‘미술문화매개자’가 되는 거죠. 광주미술문화연구소와 제가 그런 역할을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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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문화연구소 연구진 (2018.11) / 사진 제공: 광주미술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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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문화연구소 조인호 대표

광주전남 미술 현장의 기록자 또는 매개자
1999년 문을 연 광주미술문화연구소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조인호 대표를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만났다. 2018년 말 광주비엔날레에서 퇴직한 뒤 한가해질 줄 알았는데 자연인이 된 요즘이 더 바쁘다고 한다. 긴 강의를 맡게 되고 원고 청탁도 많고 미술 관련 심사, 평가, 컨설팅 등 휴식을 가져볼 틈 없이 바쁘게 달려왔다. 아무리 바빠도 후배 미술가들의 전시회는 절대 빼먹지 않고 들르고, 리뷰를 남겨 작으나마 홍보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그가 일상 속에서 수집하는 지역 미술의 이야기들, 시시때때로 만나는 미술인들, 틈틈이 둘러보는 전시회와 작업실들, 미술에 대한 글들은 모두 ‘광주미술문화연구소’에 기록된다. 그가 걷는 걸음만큼 광주미술문화연구소의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는 말 그대로 광주, 남도의 미술문화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조인호 대표까지 여덟 명의 연구원이 각자 자기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남도미술문화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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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문화연구소 개설 당시 연구진 (1999.03)
-왼쪽부터 조인호, 김정삼, 윤정현, 김새아, 이세길 /사진 제공: 광주미술문화연구소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발행 광주미연 2호(1999.07) / 사진 제공: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무려 20년이다. 어느새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가만히 돌아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조인호 대표가 광주비엔날레에 몸담고 있던 1999년. 아니, 비엔날레에서 막 해고가 됐던 1999년에 광주미술문화연구소를 열었다. 사연을 말하자면 ‘광주비엔날레 민영화 파동’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제3회 비엔날레를 준비하던 중 문화예술 기획의 자율성과 행정 관리 사이에 벌어진 갈등으로 전시기획위원이 전원 사퇴하고 해고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조인호 대표도 해고당한 직원 중 하나였다. 이후 부당해고로 판결이 나 복직되었지만 해고와 복직 사이의 틈새에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광주미술문화연구소’였다. 우리 지역 남도미술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국제 실험미술의 무대인 광주비엔날레가 열리지만 정작 우리의 뿌리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현실이 늘 마음의 부채감으로 남아있었다.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무엇보다도 스스로 나고 자라온 남도의 미술을 집대성하고 싶은 꿈도 있었다.

조인호 대표 /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광주 미술에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어요. 원래 제가 촌놈이라 광주가 편하고 서울에 학교 다니면서도 낯선 이방인의 느낌이 떠나지 않았거든요. 대학원 과정 끝나자마자 내려와서 광주전남 관련된 자료조사도 하고 현장 리서치를 했는데 남의 미술사를 공부했지만 우리 남도 쪽은 너무나도 몰랐다, 제 스스로 취약했던 점을 알게 됐어요. 뭔가 뿌리가 없는 느낌... 그때 시작한 것이 ‘한뫼들 문화답사모임’인데 한 8년 정도 이어갔어요.”

남도의 미술현장을 찾는 한뫼들 문화답사모임
고향의 뿌리를 찾고 자긍심을 키워온 시간

남도의 예술적 자취를 찾아가는 ‘한뫼들 문화답사모임’이 광주미술문화연구소를 있게 한 최초의 동력이었다. 큰 차가 들어가지 않거나 유명하지 않은 곳을 찾아 한 달에 한 지역을 둘러보았다. 광주전남을 다 도는데 만 8년 세월이 걸렸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스쳐지나갔던 오래된 풍경 속에 남도만의 진한 예술성과 삶의 지혜를 발견해온 시간이었다. 한뫼들 문화답사모임과 함께 늘 가슴 속에 남았던 고향에 대한 숙제를 풀어가고 고향의 뿌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조인호 대표 / 광주미술문화연구소

“현대미술, 동서양미술사에 대한 글을 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근데 한뫼들 모임을 하면서 적어도 나는 내 고향에 무엇이 있는지는 안다, 내 고향의 뿌리를 내가 찾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죠. 그걸 하다보니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 미술사적 관점의 맥락을 모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함께 공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개설서로 책도 내고 온라인에서는 미술문화연구소를 만들어서 공유를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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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문화연구소 호남 근현대 미술 세미나(2019.07)
/ 사진제공-광주미술문화연구소

현재 광주미술문화연구소의 물리적 공간은 없다. 설립 초기 주변의 도움으로 황금동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던 기간을 빼고는 쭉 인터넷 홈페이지가 사무실 역할을 대신해왔다. 비영리단체라 사무실을 유지할만한 여유도 없었고 간판만 번드르르한 연구실보다는 한명 한명의 연구원이 살아 움직이는 연구소가 되는 길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 신경 쓸 시간에 전시회 한 번 더 보고 글 한편 더 쓰는 것이 광주미술문화연구소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광주미술문화연구소를 검색해 들어가면 어느 사무실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관리된 인터넷 집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광주전남 미술의 오래전 역사부터 현재의 움직임까지 광주미술문화연구소가 수집하고 기록하고 다시보기 해온 우리 지역 미술문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초창기에는 월간지를 발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적으로 웹사이트에 글을 싣는다.

조인호 대표 /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웹사이트를 하나의 매개체로 해서 아주 부지런하게는 못했지만 꾸준히 데이터를 올렸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료가 축적이 되고 정보가 쌓이니까 지역의 미술 관련 정보는 저희 사이트에서 찾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 작가에 대한 정보부터 전시회, 미술 현장 소식, 비평.. 등 세월이 20년 정도 되니까 그만큼 가치 있는 정보들도 쌓이는 거죠. 이렇게 모아지니까 가치가 커지는 것 같아요.”

광주미술문화연구소를 이끌어가면서 가장 뿌듯할 때는 책이 나오는 순간이다. 조인호 대표를 비롯해 연구원들이 한 편 두 편 써왔던 글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때 어느 때보다도 감동이 크다. 지난해만 해도 두 명의 연구원이 각자 책을 냈다. 오병희 연구원이 「예술가 열전-남도미술사」라는 제목으로 광주전남지역 근·현대 미술에 대한 글을 묶어 냈고 김허경 연구원도 190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호남의 근․현대미술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호남 근현대 미술사」를 펴냈다. 조인호 대표 역시 「남도미술의 숨결」「광주 현대 미술의 현장」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의 활동들이 발판이 되었다. 특히 초기부터 함께 활동하다 2006년 지병으로 세상을 뜬 이세길 미술평론가의 유고집 ‘이 풍진 세상에 길을 내다’를 펴내었을 때, 그때만큼 기쁘고 눈물겨운 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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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광주 현대미술의 현장 출판기념회(2012.12)
/ 사진제공-광주미술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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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문화연구소 이세길 유고집 출판기념회(2013.11)
/사진제공-광주미술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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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문화연구소 호남 근현대 미술세미나(2018.10) / 사진제공-광주미술문화연구소

앞서가는 이의 발자국은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더디더라도 제대로 가야 한다. 지금 광주미술문화연구소가 걸어가는 발자취가 그렇다. 한발 한발 성실하게 내딛는 걸음에서 남도 미술의 새로운 이정표가 쓰여진다. 그동안 걸어왔던 것처럼 티 나지 않게 지역 작가들의 전시회를 들여다보고 조용히 소식을 전하고, 사라져가는 미술작품의 흔적을 찾아가고 그 이야기를 나누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조용히 흔들어 깨우고, 지역 미술판의 현장을 전달하고 기록하고 다시 보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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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문화매개자,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조인호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미술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만나본다.

Q. ‘미술문화매개자’라는 말이 생소한데요. 어떤 뜻인지요?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미술평론가라고 이름을 많이 붙여요. 기본적으로 저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평을 하겠는가 해서 그 표현은 좋아하지 않고. 근래 들어서 저의 일들을 뭐라고 이름 붙여볼까 고민하다가 미술문화매개자라는 이름을 생각해봤어요. 창작자와 향유자를 링크 시켜내고 매개, 공유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지역미술의 현장과 연결하는 일을 지속성을 갖고 꾸준히 하다보면 이것도 광주 미술판의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Q. 광주의 미술사에서 5·18은 특별한 의미를 지닐 것 같은데 어떤가요?

“80년대 5.18이후에 민족민중미술의 시대가 열렸어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굉장히 크게 대두가 됐고 타성에 젖어있던 서정적인 풍경 위주의 미술과 확 달라진 계기가 됐어요. 그러던 차에 80년대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몰려 들어와요. 사회적으로는 민주화열풍으로 들끓고 있고 조선대학교 학내 민주화운동이 굉장히 치열했고...참여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양대 산맥과 함께 광주의 미술판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들이 치고 나오는 거죠. 거기다 95년에 비엔날레까지... 광주 지역 청년미술가들한테는 폭발적인 자극이었어요. 2000년대 들어서 현장을 다니면서 보면 정말 광주미술이 다양해졌다, 광주는 어쨌든 살아있다, 뭔가 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Q. 청년작가가 활발하게 활동해야 광주 미술의 미래도 밝을 텐데요. 광주 청년작가의 현재를 어떻게 보시나요?

“젊은 친구들이 정말 참신하고, 독자적인 형식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도 정말 강해요. 그런데 재정적 기반이 약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작가들은 실험적인 작품들을 의욕적으로 작업을 하니까 비용은 많이 들어가는데 재원은 조달이 안 되고 그렇다고 광주시가 보조금을 많이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광주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산업 활동성도 약하고요. 창작 활동에서는 스스로 새로운 출구를 찾아서 너무 열심히들 뛰고 있어서 정말 훌륭해요. 현실적인 여건이 많이 좋아져서 광주 청년작가들이 많이 격려 받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Q. 후배들의 전시회를 무척 많이 방문하신다고요?

“비엔날레 근무하면서도 점심시간에 밥 먹는 대신 전시회를 보러가요. 좋은 전시 보면 배부르니까요. 다녀오면 어쨌든 스냅사진이라도 찍어오잖아요. 뭐라도 코멘트를 붙여서 가보고 싶게끔 충동을 일으키는 소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해요. 너무 잘 소개하려다가 전시회 기간을 놓칠 때가 있어서 문제지만요. 자기 전시를 누군가 관심 있게 보고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것이 젊은 작가들에게는 힘이 되는 거지요. 기록을 남겨주는 역할, 공유시켜주는 그런 역할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Q. 최근에 보신 전시회 중 인상적인 전시회가 있었다면요?

“다들 인상적이고 아까운 전시도 정말 많은데 가장 최근에 은암미술관에서 열린 김진화 작가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차분하고 성실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찾아가고 변화를 주는 젊은 작가예요. 회화 문학적인 스토리, 시각적인 효과 소재가 다양해서 굉장히 문학적인 가치가 강한 작품들.. 대견하기도 하고 그냥 박수를 쳐주는 거죠. 신호윤 작가의 경우도 친구들과 뚱딴지같은 작업들을 참 많이 발표하는 작가예요. 미디어아트에서 내놓으라하는 작가가 된 이이남 작가도 성장과정을 봐왔기 때문에 애정이 가는 친구고요. 그런 분들이 청년미술에서 많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Q. 미술 향유자가 미술을 제대로 향유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작품도 낯선 것과의 대화거든요. 그냥 지나쳐버리면 통할 수가 없어요. 외국인을 만났을 때 낯선 언어지만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하나라도 통하게 되듯이 자꾸 들여다보면 서로 통하는 게 생기거든요. 예술작품은 나한테는 낯설기 때문에 최소한 기본적인 시간을 할애해서 그 작가나 작품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려고 하면 뭔가 통해요. 그러다보면 유사한 것들이 쌓이면서 나의 안목이 되고 지혜가 되고요. 그러면서 자기도 성장하고 창작자와 향유자의 균형이 잡히게 되고. 어느 순간 애정이 생겨서 작품 한 점을 사기도 하고요. 그렇게 미술 향유자들의 관점이나 수용태도, 이해도가 좋아지면 전체적으로 문화예술 활동 토대가 성숙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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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연희 heyjeje@naver.com
  •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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