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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 집 예술이 숨 쉬는 집


광주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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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고샅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 담장 너머로 아이들 웃음소리와 달그락달그락 밥 짓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정겹고 포근하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골목길 끝자락. 그 막다른 길에 ‘예술공간 집’이 있다. 회색 빛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 아래 앉아 차 한잔하고 싶어지는,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느낌의 ‘집’이다. 어머니가 생애 처음으로 장만했던 너무나도 소중한 집이 이제 미술가 딸의 갤러리가 되었다. 거창한 목표나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느새 미술관을 열게 되었다. 그 옛날 가족들의 포근한 보금자리였던 이 집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미술을 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과 닮은 예술이 깃든 곳. 삶의 공간이었던 집이 예술의 공간으로...예술공간 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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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절 가운데도 꽃망울은 터지고 어김없이 봄은 온다. 봄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날, 동명동 골목 깊숙이 자리한 ‘예술공간 집’을 찾았다. 한동안 휴관을 한 뒤 문은 열고 있지만, 잠정 휴관 상태나 마찬가지다. 가끔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고 한다.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주인장만이 매일 출퇴근하며 언젠가 평온해질 일상을 준비한다.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미술관 주인으로 다시 돌아온 문희영 관장이다. 중학교 시절 일년 넘게 어머니를 졸라 미술학원에 가고, 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하기 시작했던 것이 이 집에서였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홀로 집을 관리하기가 힘들어 고민하던 무렵, 문득 한옥 미술관이 떠올랐다. 식구들의 지난 삶과 추억이 깃든 집이 예술을 품은 집으로 재탄생한다면... 상상만으로도 근사했다. 얼마 뒤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오래 재고 계산하지 않았기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동기는 사소한 데서 출발했다.

문희영 관장/ 예술공간 집

“친구가 한옥을 개조해서 카페를 하고 있었어요.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수업 끝나면 가서 늘 차를 마셨거든요. 그러면서 한옥 공간이 보이더라고요. 엄마도 제 나이 때쯤 정말 힘들게 힘들게 장만한 집이라 엄마가 이 집을 놓으실 수가 없는 거예요. 소일거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술로 뭔가 해보고자 했던 그런 마음도 생각이 나고.. 그래서 이 집을 자꾸 보게 되는데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 저도 모르게 갑자기 막 진척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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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단장하기까지, 오랜 큐레이터 생활이 힘이 되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화가가 아닌 큐레이터의 길을 택한 문희영 관장. 큐레이터 시절,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는 만큼 창작 활동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 창작에 대한 갈망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작품을 전시할 때의 설렘과 뿌듯함이 더 컸다.

문희영 관장/ 예술공간 집

“그때만 해도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별로 없던 때였어요.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시립미술관에서 우연히 전시 보조 인턴을 하면서 큐레이터의 길에 들어서게 됐죠. 그게 인연이 돼서 스물다섯 살 때부터 신세계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됐고요. 미술관에서 많은 작품을 보다 보니까 창작자로서 저 자신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쯤 화가의 꿈은 접었던 것 같아요. 아쉬움도 있었지만, 큐레이터 생활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2017년 11월 30일, 개관기념 전시회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뻐근하다. 평소 좋아해 왔던 작가 여덟 분을 초대해 작품을 걸었다. 50년 세월을 품은 집처럼 일부러 작가들의 신작보다는 지난 시간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화가들의 작업실마다 빛을 보지 못하고 먼지 쌓인 작품들이 많다는 걸 큐레이터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너무나 아까운 그 작품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보이고 싶었다. 먼지 털고 바람 쏘이고 깨끗하게 단장해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 일. 작품을 다시 숨 쉬게 하는 일. 그게 ‘예술공간 집’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 같았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다시 호흡하는 시간’이었다. 오래된 집을 미술관으로 되살려놓은 것처럼 오래 묵은 작품에 새 호흡을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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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2017. 11. 30) 중 조병철 作 ‘봄손님’(예술공간 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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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2017. 11. 30) 중 공성훈 作 ‘먼지나무-그림’(예술공간 집 제공)

문희영 관장/ 예술공간 집

“이 집 공사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다 쓸어버리고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버려지는 것 중에서 예쁜 것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버리는 게 아니라 다듬어서 잘 가지고 있어야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고, 제가 옛날에 봤던 정말 좋았던 작품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보물 같은 그림들인데 창고에서 묵혀지고 있으니까 정말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옛날 것들을 좀 끄집어냈어요. 개관전 준비하면서 ‘집’이라는 근원적인 개념의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삶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오랜 기억과 시간의 공간이기도 한 집. 그래서인지 ‘예술공간 집’은 개관전 이후로도 시간과 맞닿은 전시를 많이 해왔다. 그중 하나가 짧게는 십 년에서 많게는 삼십 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작가를 하나의 전시로 묶은 이른바 작가 매칭전시회다. 송필용&김성결 전, 전현숙&성혜림 전, 김제민&이호동 전 등 해마다 한두 차례의 기획전을 열었다. 한 세대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는 작품들, 시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풍경들에서 지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만난다. 시간은 직선의 흐름이 아닌 어쩌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개념은 아닌지...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함께 빚어내는 조합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똑같은 전시가 아닌 조금은 남다른 전시를 하고픈 열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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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용&김성결 전(2018.2) (예술공간 집 제공)

「한 세대를 가늠하는 이삼십 년의 시간차를 가진 두 작가의 그림이 함께 보여진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려지는 대상은 다르지만 결국 본질은 그림으로 시대와 삶을 증명한다는 것이다...그림이라는 궤도 안에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과거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끊임없이 조우하는 것이다. 두 작가의 그림도 서로 다른 시간에 그려졌지만 결국 그림이라는 궤도 안에 공존하며 우리네 삶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 문희영 글 中

개관 3년째였던 2019년 봄의 기획전도 무척 특별했다. “그곳, 그리고 지금 여기”라는 제목처럼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오래된 흔적, 오래된 기억들을 함께 모았다. 비슷한 연령대의 동시대 작가들이 광주의 변화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회화와 사진과 문장으로 함께 어우러진 광주의 지난날과 지금 여기의 모습들. 새롭고 빛나는 것들이 아닌 오래되고 낡은 모습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삶의 의미, 공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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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그리고 지금 여기’ 전 (2019. 3) (예술공간 집 제공)

「<그곳, 그리고 지금 여기> 展은 광주라는 ‘곳’을 이야기한다. 변화된 모습과 사라진 풍경, 그리고 기억에만 존재하는 모습,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 풍경들,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곳들까지. ‘그곳’들은 작가들 마음 안의 특별한 장소들이자 여기 광주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가로지르는 곳이 아닐까.」 - 문희영 글 中

삶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인 ‘집’에서 예술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들춰내고 다시 보여주는 ‘예술공간 집’. 올해로 개관 4년째.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려고 한다. 문을 열 때 거창한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언제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정해둔 것은 없다. 다만, 늘 이 자리에 있으려 한다. 언제든 돌아오면 쉴 수 있는 집처럼. 예술이라는 쉼으로 찾는 이들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란다. 평범한 일상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교훈을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를 통해 깨닫게 되는 요즘. 그 평범한 일상이 깃든 집의 의미도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모두의 나날이 평온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예술공간 집’은 언제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문희영 관장/ 예술공간 집

“요즘은 이런 작은 공간들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특정한 작품만 하겠다는 것보다는 원로부터 어린 친구들까지 누구든 전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남아있고 싶어요. 커피 한잔 마시러 왔다가 그림도 함께 보는 자연스러운 공간이면 좋겠어요. 천천히, 성급하게 하지 않고.. 문 닫지 않고 오래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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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아트클래스 (예술공간 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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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 아트클래스 (예술공간 집 제공)

예술공간 집
광주 동구 제봉로 158번길 11-5
062-233-3342

  • 글.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예술공간 집 제공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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