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극단 토박이와 민들레 소극장 무대에서 살아난 오월 정신


광주초이스

그해 오월, 시민군으로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전남대생 이정연, 금남로에서 주먹밥을 나누며 진정한 광주 정신을 꽃피웠던 오월의 어머니들, 항쟁 지도부로 활동하다 간첩으로 몰려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정신질환에 걸려 죽어간 김영철 열사, 5·18을 직접 겪은 후 오월만 되면 온몸이 아파 오는 어느 가정주부... 오월 광주를 지켜냈던 한 명 한 명의 가슴 시린 이야기가 무대에서 다시 살아난다. 무대에 오른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오월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아픔이라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되노라고... 오월을 그린 연극으로 5·18 정신을 지켜가는 극단 토박이의 외침이기도 하다. 1983년 창단 이후, 30년 넘게 오롯이 오월을 이야기하고 기억해온 극단 토박이를 만나러 민들레 소극장으로 간다.

광주를 대표하는 오월 극단, 토박이
오월극으로 오월 정신을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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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토박이의 연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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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효선 극작가

어느덧 40년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을 함께 해온 극단 토박이도 벌써 창단 서른일곱 해를 맞았다. 1983년 11월 창단 이후 해마다 오월 레퍼토리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지역 대표 오월 극단이다. 극단 토박이를 얘기하자면 오월 광대로 알려진 故 박효선 극작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금희의 오월>부터 시작해 <모란꽃>, <청실홍실> 등 극단 토박이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3대 오월극이 모두 박효선 극작가의 작품이다. 그저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5·18 당시 시민군 홍보부장으로 항쟁을 이끌었던 박효선 극작가의 생생한 증언들이다. 항쟁 3년 후인 1983년, 전남대 연극반을 중심으로 극단 토박이를 꾸린 이도 박효선 극작가다.

1998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지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에서 평생토록 벗어나지 못했던 극작가 박효선. 그들의 목숨값을 갚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작품들이 극단 토박이의 오월극이다. 그가 무대에 올린 오월 첫 작품 <금희의 오월>은 1988년 초연된 이후, 미국 해외 공연까지 이어졌을 정도로 세상에 오월의 진실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금 극단 토박이를 이끄는 임해정 대표도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여전히 <금희의 오월>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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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토박이 임해정 대표

임해정 대표/ 극단 토박이

“<금희의 오월>은 극단 토박이의 이름 같은 작품이에요. 극단 토박이의 대표작이자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연극을 계속하게 한 인생작이기도 하고요. 1988년도에 초연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오월이 되면 불심검문도 하고 그런 엄혹한 시기였어요. 오월을 다 아는데 말을 못 하던… 그때 연극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오월 이야기가 <금희의 오월>이에요. 오월 광주의 이야기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연극으로 만난다는 것이 정말 엄청난 울림을 줬던 작품이지요.”

삶 그 자체가 오월이었던 극작가 박효선
엄혹한 시절, 오월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금희의 오월>


「묘지 번호 69번! 역사의 부름에 화살로 날아간 오빠!
온몸이 부풀어 썩어들고 확인 사살까지 당한 총흔이 이마에 뚫려 있던,
아, 너무나 참혹한 모습을 남기고 간 오빠!
망월동에 오빠를 묻고 돌아온 엄마는 몸져누우셨고
찢겨진 가슴의 피멍을 날이면 날마다 눈물로 씻어 내셨지요...」
-<금희의 오월> 대본 중 금희의 대사-



80년 5월, 도청을 사수하다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이정연 열사의 사연을 여동생 금희의 시선으로 풀어낸 <금희의 오월>. 박효선 극작가의 첫 번째 오월극이자 극단 토박이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금희의 생생한 독백을 들은 수많은 관객이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분노했다. 가려지고 숨겨진 5·18의 진실이 <금희의 오월>과 함께 세상에 드러났다. 극단 토박이가 30년 넘게 해마다 오월극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해정 대표/ 극단 토박이

“박효선 선배님이 98년도에 돌아가시고 20년이 넘었는데 처음 십여 년 정도는 박효선 선배님이 갖고 있던 아우라가 너무 커서 그 힘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점차 세월이 가면서 박효선 선배님이 겪었던 오월에서 벗어나 우리가 바라보는 오월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의 이야기, 남아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오월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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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모란꽃> (사진제공-극단 토박이)

1988년 <금희의 오월>, 1993년 <모란꽃>, 1997년 <청실홍실>... 오월의 숨은 진실을 우리 앞에 꺼내 보여준 토박이의 오월극들. 박효선 극작가가 3대 오월극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뒤, 극단 토박이에게도 오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가 가진 무게만큼 새로운 작품에 대한 부담도 크고 고민도 깊었다. 온전히 오월이라는 삶을 살아낸 박효선 극작가와 오월을 직접 겪지 않은 단원들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못내 그리워지는 시간만큼 오월을 새롭게 해석하고 지금 시대에 맞게 전달하려 애썼다. 그렇게 탄생한 오월 레퍼토리 작품들에 <오 금남식당>과 <나와라 오바> 등이 있다.

오월의 현대적 해석
<오 금남식당>, <나와라 오바>
극단 토박이의 오월극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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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토박이 박정운 연출 (사진제공-극단 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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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토박이 상근단원(박정운, 임해정, 송은정, 고영욱)

<오 금남식당>과 <나와라 오바> 작품을 책임 집필한 박정운 연출가를 비롯해 임해정 대표, 송은정 단원, 고영욱 단원까지 총 네 명의 상근단원이 극단 토박이를 꾸려간다. 전용 극장인 민들레 소극장이 이들의 보금자리다. 해마다 오월이면 광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오월극을 무대에 올리느라 분주하지만, 올해 오월은 코로나 19로 어느 해보다 조용하다. 지난해 말 시범공연을 마치고 올해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하려 했던 <나와라 오바>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래를 테마로 오월의 아픔과 상처를 달래는 새로운 오월극으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다.

오월 레퍼토리의 또 다른 작품인 <오 금남식당>은 극단 토박이의 오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존의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의 오월극에서 벗어나 웃음과 해학 속에서 오월의 의미를 전하려 했다. 유쾌하게 웃는 사이 오월의 아픔이 가슴을 관통하는,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을 갖는다. 금남관의 요리 경연대회라는 흥겨움 속에서 80년 오월 광주시민들을 하나 되게 했던 주먹밥의 가슴 절절한 감동을 만나게 된다. 박효선 극작가 이후 극단 토박이의 새로운 오월극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이다.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는 5·18의 의미를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조금 더 친밀하게 전달하기 위한 시도였다.

임해정 대표/ 극단 토박이

“저는 오월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고 그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이거든요. 직접 투쟁하지는 않았지만, 그 영향을 받았던….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오월이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오월은 아직도 밝히고 드러내고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가면서 없어지고 잊히는 것이 정말 마음 아프죠. 5·18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에 호흡하고 있는 우리의 지금 이야기라고 끊임없이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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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 금남식당> (사진제공-극단 토박이)

극단 토박이는 오월에 천착하지만 오월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월 광주가 그러했듯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의 현실, 환경과 기후에 관한 문제의식은 극단 토박이의 또 다른 줄기다. 청소년극 <죽기 살기>와 <글러브와 스틱 그리고 찐찌버거>, 환경극 <토토, 투투 할머니의 이야기 극장> 등 생태와 교육으로 주제의식을 넓혀왔다. 오월 광주가 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처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외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스물일곱 해째, 해마다 여름이면 진행하는 ‘신나는 어린이 연극교실’도 극단 토박이의 소중한 꿈이다. 연극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건강한 어린이를 키워내는 시간이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배움터 ‘아우라지’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삐딱이들의 심쿵 만화그리기’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연극, 뮤지컬 경험하기’ 등 학습에 지친 이 시대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연극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쉼이 될 거라 믿는 극단 토박이의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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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글러브와 스틱 그리고 찐찌버거> (사진제공-극단 토박이)

‘청소년’과 ‘생태 환경’으로 주제의식 넓혀.
광주의 오월처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외침

지역 연극계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펼쳐 보이고 싶은 꿈도 많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 광주에 오면 언제든 오월극을 볼 수 있는 오월 상설공연은 토박이 모든 단원들의 꿈이다. 하지만 극단을 꾸려가기만도 버거운 상황에서 지원사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박효선 선배의 오월, 광주의 오월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가려 한다. 무엇보다 극단 토박이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오래된 동지들이 있기에 힘이 된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덧 오월의 진실도 하늘 아래 더없이 투명하게 드러날 것을 믿는다. 극단 토박이, 그들이 광주의 또 다른 오월이다.

임해정 대표/ 극단 토박이

“어떤 개인이 극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극단 토박이는 공동체, 공공적인 극단이에요. 대표도 그때그때 바뀌고 단원들이 함께 운영해가는 집단 운영체제인 셈이에요. 극단을 어떻게 지탱해가야 할지 그게 가장 큰 고민이죠. 계속해서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작품 창작부터 경제적인 부분, 새로운 단원들을 확충하는 부분… 무엇보다 오월에 대한 공연이 상설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희망이에요. 오월은 못다 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극단 토박이(민들레 소극장)
광주 동구 동계천로 111
062-220-6280


  • 글.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극단 토박이 제공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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