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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고려인, 유랑은 끝나야 한다.


광주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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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에 떠나 쉰둘이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릴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에 떠날 때는 길게 잡아 2,3년 정도 생각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떠났던 카자흐스탄행. 이름도 낯선 그곳에 우리 민족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한글학교 교사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해졌다.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꾸 생각하다 보니 가보고 싶어졌다. 젊은 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무작정 떠났던 카자흐스탄에서 인생의 절반 가까이, 스물네 해를 보냈다. 혈혈단신으로 떠났고 돌아올 때도 혼자였다. 하지만 빈손은 아니었다. 고려인의 삶에 대한 애타는 안타까움과 그들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한 유물들과 함께였다.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을 준비하는 김병학 관장의 이야기다. 고려인과 함께해온 스물네 해 동안 자연스럽게 고려인 역사 전문가가 된 김병학 관장. 그가 더는 혼자 간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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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관장(10월 개관 예정)

신안 임자도에서 카자흐스탄 한글 교사로.
고려인의 삶과 역사에 눈뜨다



몇 해 전만 해도 생경했던 ‘고려인’이라는 말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듯하다. 고려인이 고려시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려인에 대해 잘 모른다. 고려인이 러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우리와 한 뿌리로 연결된 한민족이라는 사실, 지금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세월을 거쳐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왔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굳이 관심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24년 전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던 김병학 관장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뿐 깊은 관심이나 애정은 없었다. 신안 임자도 섬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가도 가도 평원뿐인 카자흐스탄 땅은 유배지나 다름없이 다가왔다.

김병학 관장/ 광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처음 1, 2년은 정말 고향 생각을 많이 했죠. 카자흐스탄 우슈또베라는 곳이었는데 전화를 하려면 400키로 이상 떨어진 수도로 가서 전화국에 신청해야 하는 오지였어요. 유배생활이 이런 생활일까 싶을 정도로…. 산이 없는 평지라서 안개가 끼는 날이면 앞이 뿌연 게 바다처럼 보여서, 고향 바다 생각이 더 간절해지고는 했어요. 딱히 정해진 목표가 없이 단지 호기심으로 갔던 곳이라 초기에는 더 정을 붙이지 못했죠. 고려인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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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우슈또베 광주한글학교 개교식(1992.9.5.)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아픔이 서린 ‘우슈또베’
그곳에 여전히 살아 있던 한민족의 문화



구소련이 해체된 후 카자흐스탄에서는 고려인들의 모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1991년 무렵, 광주에서 민족문제를 연구하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카자흐스탄 광주한글학교 개교를 준비했다. 교사를 지원했던 김병학 관장은 1992년 6월 1일 카자흐스탄 우슈또베 광주한글학교에 정식 교사로 채용됐다. ‘우슈또베’는 1937년 강제이주 당시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부려졌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말, 지주들의 폭압을 피해 연해주로 갔던 고려인들이 다시금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기차 짐칸에 실려 떠밀려왔던 처절한 아픔의 땅.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움막을 짓고 그 황폐한 땅을 개간해 생을 이어갔다. 그들의 후손이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고려인들이다. 김병학 관장은 우슈또베에서 생활하며 차츰차츰 고려인의 역사에 눈을 떠갔다. 러시아어를 사용하지만, 우리와 같은 김치를 먹고 한복을 입는 사람들. 고추장 된장을 담그고 우리 민요를 노래하는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에서 어머니 아버지로, 그 딸과 아들, 손자 손녀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과 수많은 억압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 문화를 지켜내온 고려인들. 그들이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같은 한민족임을 고려인의 삶을 통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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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의 토굴집(1954년 우슈또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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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범대 1학년 학생과 교수들(1938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김병학 관장/ 광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주변의 고려인들에게서 이런저런 부탁을 받고 일을 해가면서 조금씩 고려인에 대해 깊이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아, 이게 내 소명이구나 깨닫게 된 거죠. 제가 좀 더 빨리 관심을 가졌다면 고려인에 대한 자료를 더 많이 수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눈을 떠서 다행이죠. 본격적으로 고려인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일보에서 일하면서부터예요.”

고려일보 기자생활을 통해 고려인의 삶 속으로!
고려인의 역사를 추적해온 세월들



우슈또베에서 1년을 보낸 뒤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 한글학교로 옮겨가 98년까지 일을 했다. 처음 3년 동안은 2주에 한차례 400킬로가 넘는 거리를 달려 우슈또베 한글학교를 관리해왔다. 98년 한글학교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은 뒤 지인의 소개로 알마티에 있는 고려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고려일보는 1923년 창간된 이후 현재까지도 발행되고 있는 고려인의 역사와도 같은 신문이다. 그때부터였다. 고려인이 김병학 관장의 삶 속으로 오롯이 들어온 것이…. 그리고 그가 고려인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준 것이…. 신문사 취재를 다니면서 고려인의 내밀한 삶을 엿보고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경험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고려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지식이었는지를 깨달았고 진심으로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게 됐다. 고려인 출신으로 카자흐스탄 최고의 음악가로 존경받는 ‘한 야꼬브’씨와 함께 고려인 가요집을 편찬했던 경험이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들이 삶의 애환을 달래온 노래들을 담아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라는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카자흐스탄, 연해주, 우즈베키스탄 등 고려인이 사는 모든 곳을 찾아다니며 구전 가요를 하나하나 채록했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노래부터 애국가, 항일가요, 동요 등 600여 곡의 노래가 이 작업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2005년부터 시작해 2007년까지 무려 3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김병학 관장/ 광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한 야꼬브씨는 러시아 재즈책에도 수록됐을 정도로 카자흐스탄 최고의 음악가로 꼽히는 분이에요. 그분과 함께 고려인 어르신들이 부르던 우리말 노래를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간단한 교정작업이나 녹취로 생각했는데 일을 해보니까 상상할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죠.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그분에게는 거의 필생의 작업이었기 때문에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살아계신 고려인 원로들을 다 찾아다니며 증언을 듣고, 노래의 의미를 밝히고... 거기서 고려인의 역사나 문화적 지식에 깊이 들어갔죠. 그 책이 2007년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에 맞춰 발간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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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 기념식장에서(1997. 카자흐스탄 알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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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사진(2003년)

그 후 본격적으로 고려인의 역사를 추적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왔다. 누구라도 관심 두지 않으면 잊히고 말 고려인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고려인 2세대 한진 극작가의 삶을 집대성한 ‘한진의 삶과 문학’도 김병학 관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한진 희곡집을 내면서 고려인들의 극장과 관련된 역사도 다시 정리했다. 연해주부터 사할린까지 고려인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채소를 재배했는지, 채소재배 관련 연구서도 펴냈다. 그가 고려인과 함께해온 시간만큼 고려인에 대한 희귀한 역사적 자료도 쌓여갔다.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과 묘소 사진, 초기 연해주 이주민들의 모습, 고려극장 공연 사진, 고려인 희곡작가의 항일희곡 원고, 고려인들의 항일투쟁을 담은 소설집 등 사진만 해도 무려 5천여 장, 문서, 서적, 육필원고, 물품 등 수만여 점을 헤아린다. 그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낸 것은 바로 그 고려인 유물들이었다.

김병학 관장/ 광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그렇게 많은 유물을 갖고 있으니까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카자흐스탄이 다민족 국가라서 고려인만의 전시관을 세워줄 수도 없고 관리 방법이 없었어요. 한국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2016년 10월에 귀국했는데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정말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광산구에서도 협력해주셔서 광주로 온 것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 고향이기도 하고요. 아시아문화전당에서 2017년에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 전시회도 했고, 작년에는 시청에서 고려인 항일 문화유물 특별전을 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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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와 새 아내 이인복, 손녀 예까쩨리나(1929년 한까호수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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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극장 연극 춘향전 공연(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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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주민들 사진(1902년 무렵 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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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장군 묘소를 참배하는 고려일보 사원들(1951년)

23점의 고려인 유물, 국가지정기록물 등재
김병학 관장 ‘기록의 날’ 대통령 표창
고려인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되살려내다



고려인 유물과 함께 돌아온 김병학 관장이 선택한 곳은 광주 월곡동 고려인 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고려인 마을공동체다. 현재 7천 명이 넘는 고려인이 거주하며 고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다. 김병학 관장은 2016년 귀국한 뒤 고려인 마을과 협력해 두 차례의 전시회를 갖고 고려인의 역사를 국내에 알려왔다. 올해 1월에는 김병학 관장이 수집한 23점의 유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등재되기도 했다. 고려극장 무대에서 공연된 김해운의 희곡작품 8권, 창가집 2권, 산문작가 김기철의 소설 원고 2권, 극작가 한진의 희곡과 소설원고 9권, 고려극장 80년사를 보여주는 사진첩 2권 등이다. 지난 6월 9일, 김병학 관장은 올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기록의 날'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국가기록물 등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세계기록의 날인 6월 9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뒤 첫 번째 표창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 깊은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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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고려인 항일・문화유물 특별전
(2019년 4월. 광주광역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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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관리 유공 포상 전수식(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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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이 들어설 건물

고려인마을은 올해부터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국토부가 주관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지로 확정돼 주민들과 고려인, 외국인들이 함께 공존하는 마을로 되살아날 예정이다. 이 사업과 함께 김병학 관장이 이끌어갈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도 개관을 준비 중이다. 김병학 관장이 고려인의 삶과 역사에 눈을 떠간 것처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을 통해 고려인의 역사가 우리 곁에 한층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한반도에서 연해주 땅으로 다시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졌던 고려인들. 이들이 고향에 정착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말을 사용하는 고려인은 국내에서도 또 다른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김병학 관장은 우리나라가 고려인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할 때라고 얘기한다. 모국어를 잃은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살기 위해 빼앗길 수밖에 없었음을, 항일독립운동의 주체였던 그들이 존재했기에 지금 우리의 역사가 있다고 말한다. 유랑의 삶을 거듭하던 고려인들이 이 땅에서만큼은 더 이상 유랑하지 않게 우리가 조금 더 품을 넓혀 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10월 개관 예정)
광주시 광산구 산정공원로 50번길 29





  • 글.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김병학 관장 제공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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