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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동네 미술관 이강하 미술관


광주초이스




계절은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고, 바야흐로 시월이다. 차가운 가을바람과 함께 한 번쯤 미술관 문턱을 사뿐히 넘어줘야 할 것 같은 계절. 올 한 해 코로나에 갇혀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공간, 미술관으로 향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문 닫힌 미술관 안은 조용히 분주하다. 모든 미술관이 그렇겠지만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유난히 많은 미술관이 하나 있다. 전시작품으로, 프로그램으로, 사람으로, 이름으로... 양림동의 화가, 이강하를 추억하며 양림동의 새로운 이름이 되어가는 곳. 이강하 미술관으로 가을 나들이를 간다. 활짝 열려있길 바라며...


‘무등산의 화가’ ‘양림동의 화가’ 이강하의 작품 세계를 만나다
가족들의 소장품 기증으로 탄생한 이강하 미술관



양림교회 아래, 옛 양림동사무소 자리에 멋스러운 미술관이 들어섰다. 이제 개관 3년 차지만 그 속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강하 미술관. 고(故) 이강하 화백의 삶과 작품 세계를 오롯이 담고 있는 곳이다. 젊은 시절부터 삶의 끝자락까지 양림동을 터전으로 작품활동을 펼쳐온 이강하 화백에게 양림동은 두 번째 고향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양림동에 이강하 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2018년 2월 남구 구립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이강하 화백의 가족들이 그의 작품 수백여 점을 온전히 기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단 한 점의 작품도 돈과 바꾸길 원치 않았다. 한 사람을 위한 소장품이 아닌 모두가 만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 이 화백의 정신을 기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강하 화백의 장녀이기도 한 이선 학예연구사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강하 미술관 이선 학예연구사

이선 학예연구사/ 이강하 미술관

“아버지 이강하 화백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아버지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않으셨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잘 이해가 안 됐죠. 그런데 ‘아버지 작품은 돈이 아니다. 이건 미술관에 남겨야 할 문화자원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이강하 화백의 작품 700여점을 기증을 하게 됐고 그게 지금 이강하 미술관이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기반이 된 것 같아요.”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작품들
이강하 미술관에서 되살아나다



미술관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편에 자그마한 공간이 눈에 띈다. 생전에 이강하 화백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화가의 방’이다. ‘무등산의 화가’ ‘양림동의 화가’ 이강하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스물여덟 만학도의 나이에 조선대 미대에 입학한 이강하 화백은 입학 첫해에 80년 오월을 만난다. 항쟁에 쓰일 걸개그림을 그리고 오월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때부터 그의 작품 세계는 평화와 통일, 우리 남도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무등산으로 향하는 비단길에 여성의 누드를 표현한 「무등산 연작」은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담고 있다. 우리네 평범한 어머니 아버지의 굴곡진 삶을 그려낸 ‘영산강’ 작품도 그의 대표작으로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이강하 미술관 ‘화가의 방’

「영산강 사람들」 이강하 作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이강하 미술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한창이다. 코로나로 휴관 중일 때에도 꼼지락꼼지락 쉬지 않고 준비해온 전시회다. [‘40년의 염원, 평화의 길’ -남맥회 리마인드] 展. 남맥회는 1980년 남도 예술의 맥을 잇고자 했던 광주전남 청년작가들의 그룹이다. 이강하 화백을 비롯해 양경모, 문명호, 박동신, 변재현, 박진, 안태영, 박소빈 등이 남맥회의 주요 멤버였다. 이강하 화백은 작고했지만, 이제는 중견작가가 된 남맥회 회원들이 여전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전시회는 남맥회 작가들의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세월의 기록이다. 젊은 시절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을 나란히 설치해 작가들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전시회.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등불이 되고자 했던 이들이 이제는 지역 미술계를 이끄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던져온다.

이선 학예연구사/ 이강하 미술관

“남맥회는 남도 예술의 맥을 잇고 싶은 화가들의 모임이거든요. 1980년도 그렇게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에 왜 이런 모임을 창립했을까. 광주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자기 목숨도 위태로울 때잖아요. 이번 전시는 남맥회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작업과 그사이 중단되었던 소통을 다시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기획했어요. 전시를 계기로 관람객과 시민, 작가가 함께 지역 미술의 힘을 재조명해보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40년의 염원, 평화의 길’ -남맥회 리마인드] 展
과거와 현재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

이강하 미술관 [남맥회 리마인드]展 (2020년 10월 31일까지~)

2018년 2월 개관전시 이후 이강하 미술관은 쉼 없이 기획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해왔다. 개관 첫해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Hothouse] 展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네트워크과 협업하여 다양한 국적의 현대미술작가 5명과 이강하 화백의 대표작을 함께 선보이는 국제 전시회였다. 광주와 양림동을 사랑하는 이강하의 작품이 국제무대에 선다는 의미가 컸다. 지난해 있었던 [5월, 평화의 꽃길] 프로젝트는 이강하 미술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강하 화백이 5・18 시민군이었을 때 그린 「아! 천지(무등에서 백두까지)」 작품을 재해석하는 공공프로젝트로, 500명의 광주시민과 18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지역 미술계에서도 기획력 좋기로 유명한 이선 학예사의 열정의 결과물들이다.


이선 학예연구사/ 이강하 미술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의 부대행사로 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들 500명과 청년작가 18명이 함께 참여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5·18 민주화운동기념과 3.1운동의 의미를 아카이브 기록 방식으로 준비했던 전시회였죠. 준비하는 기간도 오래 걸렸고, 오월어머니회, 광주 지역아동센터, 장애인 단체 등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새로운 협업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예요.”



3.1운동 100주년기념 공공미술프로젝트
[100년의 염원, 평화의 꽃길]

2018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Hothouse] 전시

양림어린이예술학교, 굿모닝 양림 어린이 사생대회...
아이들의 웃음꽃이 피어나는 친구 같은 동네 미술관



이강하 미술관이 전시 못지않게 힘을 쏟는 부분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문화예술교육 분야다. 미술관이 정형화된 전시만 보는 공간이 아닌 삶의 한 공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살아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해마다 방학 때마다 열고 있는 ‘양림어린이예술학교’는 이강하 미술관의 이런 바람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역의 청년예술가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어린이 대상 순수예술캠프로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미술관을 가득 채운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명화 이야기부터 수채화, 전통 부채 만들기, 나무 모빌 만들기, 상상 색 파레트 등 그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제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프로그램이 오픈되자마자 금방 마감될 정도로 지역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굿모닝 양림’ 축제 일환으로 진행하는 “굿모닝 양림 어린이 사생대회”, 올가을 첫선을 보일 예정인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 [이강하 미술관의 Teens Art Lab]” 등 모두가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미술관이 되고 싶은 이강하 미술관의 노력들이다.

이선 학예연구사/ 이강하 미술관

“결과물에 의존하는 공교육의 미술수업이 아닌 창작의 즐거움과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특히 양림어린이예술학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획자와 예술가가 함께 만나 고민하여 시대 및 사회적 이슈나 지역성, 계절의 매력을 바탕으로 예술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올해는 1월 겨울방학 때 일주일간 진행하였고 8월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쉬었는데 곧 또 시작할 수 있겠죠.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거든요.(웃음)”



양림어린이예술학교 ‘키즈미디어아트’ 수업

문화가 있는 날 1930양림살롱 ‘예술가의 시간’ 행사

2019년 Out Of Museum 아트워크숍 행사

이강하 미술관은 분명 화가 이강하의 예술세계를 디딤돌로 탄생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강하 미술관이지만 ‘이강하’에 매몰되지 않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려 한다. 화가 이강하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 다 펼치지 못한 꿈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강하 미술관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가고자 한다. 이선 학예사가 야심차게 기획한 올해 마지막 전시회 [불가능을 통해 약속된 가능성] 展도 이강하 미술관의 새로운 도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작가 발굴 지원 공모에 최종 선정된 프로젝트로서 더 의미가 깊다. 광주 지역 40대 미만 청년작가 6명과 기획자가 함께 준비할 예정이다.

이선 학예연구사/ 이강하 미술관

“이강하 화백님이 돌아가시면서 ‘내 작품, 내 그림 덜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남은 가족에 대한 얘기보다 자신의 작업을 완성 짓지 못하고 가는 것에 대해 더 안타까워하셔서 그때는 그림이 밉더라고요. 대학에서 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주제로 연구논문을 쓰면서 자기 삶보다 작품을 더 사랑했던, 그림을 더 사랑했던 화가로서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던 것 같아요. 과거의 미술작품이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지금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미술관으로 꾸려가고 싶습니다.”





이강하 미술관
광주광역시 남구 3.1만세운동길 6
Tel. 062-674-8515
www.lkh-artmuseum.com





  • 글.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이강하미술관 제공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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