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동아시아 정신문명을 담은 그릇, 예기 제기에서 권력의 상징으로


아시아문화연구소


예기(禮器)는 ‘예를 담는 그릇’ 혹은 ‘예를 드러내는 그릇’ 정도로 해석이 될 것이다. 그릇은 구상적인 물체다. 무언가를 담거나, 몸에 다는 장신구 등의 용구(用具) 등을 모두 지칭한다. 그런데 ‘그릇’과 달리 ‘예’(禮)란 추상적이어서 그 내용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예’(禮)는 ‘시’(示)와 ‘풍’(豊)을 결합한 회의(會意)문자다.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示’는 ‘하늘이나 땅 등 신(神)의 뜻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초기 한자인 갑골문에서 ‘示’는 ‘丅’로 쓰여, 제사를 지내는 대(臺)를 의미했으며, ‘豊’의 원 글자는 ‘豐’으로 ‘두’(豆)라는 그릇에 올린 풍성한 음식을 지칭했다. 다시 말해 ‘예’는 신에게 제물을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기란 신에게 제사 드릴 때 제물을 담거나 제례 때 손을 씻는 등의 의식에서 사용하는 그릇으로, ‘제기’(祭器)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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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도읍인 인쉬(殷墟)에 있는 ‘왕릉구역’ 내 무덤 내부. 무덤의 지하 입구에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커다란 솥이 당당하게 놓여 있다


고대 중국에서 ‘나라의 가장 큰 일은 제사와 전쟁’(國之大事, 在祀與戎)이었다. 그중에서도 왕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이 아니라, 조상을 비롯한 신들에게 지내는 제사였다. 중국 은나라(‘상’商이라고도 부른다) 유적지인 인쉬(殷墟., 기원전 14~11세기)에서 제사 지낼 때의 점복(占卜)을 기록한 갑골문이 무더기로 나온 것은 고대 중국에서 제사가 가진 중요성과 정치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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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성 안양 인쉬 유적지 안에 위치한 상왕 무정의 부인 부호(婦好)의 무덤. 무덤 위 지면에는 종묘가 있어 여기에 번쩍이는 청동기를 늘어놓고 지하에 묻힌 부호에게 제사를 지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종묘를 복원하고 복원 청동기를 안치해놓았다.


제사가 이렇게 중시된 이유는 공적 권력에 의존하는 통치 시스템을 가진 국가권력이 ‘하늘’(天)이나 조상 등의 초자연적 역량으로부터 그와 같은 권력의 원천을 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점점 예의제도(禮制)가 만들어졌고, 이것은 모든 사회 성원이 지켜야 하는 ‘행위의 규범’이 되었다. 다시 말해 ‘예’는 ‘합의된 사회적 질서’를 의미했다. 이때의 사회적 질서는 “예는 서인까지 내려가지 않으며, 형벌은 대부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는 《예기》(禮記)의 말에서 보듯 ‘상하(上下)의 질서’였다. ‘천자는 제사 지낼 때 9개의 솥(鼎)을 쓸 수 있지만, 제후는 7개를 써야 한다’는 규정은 바로 이런 질서의 반영이었다. 다시 말해 예기는 고대 사회의 ‘질서’를 담아낸 물질문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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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전국시대 중국 남방에 위치한 증나라의 제후(曾侯)인 을(乙)의 무덤에서 나온 9개의 솥과 8개의 궤(簋).정과 궤는 세트로 사용하는 제기로, 정에는 육류를, 궤에는 곡물을 담았다. ‘9개의 정과 8개의 궤’는 원래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기의 숫자였으나 주나라 왕실의 힘이 미약해지면서 많은 제후가 과거의 예의제도를 참월하였다.


예의제도가 형성되자 ‘예기’의 의미도 확장되었다. 제사뿐 아니라 왕이 벌이는 연회, 그리고 정벌을 앞두고 거행하는 의례나 사람이 죽을 때 행하는 상례(喪禮)와 장례를 행할 때 사용한 식기류의 그릇도 예기라 불렸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의례에서 사용하는 악기(樂器)와 병기(兵器)도 포함되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보석이 박힌 화려한 병기는 실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개인의 신분적 지위에 걸맞게 몸에 다는 장신구도 예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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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良渚)문화의 옥벽으로 현재까지 출토된 옥벽 가운데 가장 크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산천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다.


예기란 이처럼 추상적인 ‘예’를 담아내는 물질이었다. 사회를 유지하는 이념인 예를 담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데 사용하는 무기보다 더 중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보배스런 그릇’(寶器)이었으므로, 흙으로 만든 토기는 예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름에 걸맞게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야 했다.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어 권력자만이 독점할 수 있는 진귀한 물질에 많은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만들어져야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옥기와 청동기다.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게 옥이다. 이처럼 단단한 옥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자르고 갈고 쪼고 다듬는 ‘절·차·탁·마’(切磋琢磨)와 같은 복잡한 공정과 오랜 시간을 거쳐야 했다. 청동기도 마찬가지다. 청동기를 제작하려면 다량의 동광석이 필요하다. 고대 중국의 세 나라인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는 동광석을 구하기 위해 여러 번 도읍을 옮겼다. 청동기는 광석을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제조 과정 역시 아주 복잡했다. 서양에서 밀랍으로 틀을 만드는 방법이 들어오기 전까지 중국에서는 황하의 가는 황토로 청동기의 틀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좋은 청동기를 제작하려면, 진흙의 손질, 청동 액(液)의 정확한 온도와 시간의 계산을 장악해야 했고, 대규모의 분업식 작업과 전문적 조작이 필요했다. 즉 청동기 제조는 엄청난 규모의 자원과 기술, 그리고 인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권력집단에 의해서만 소유가 가능한 부이자 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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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죽어서도 옥을 떼지 않는다.’ 지위가 높은 제후들은 살아생전은 물론 죽어서도 옥을 몸에서 떼지 않았다. 얼굴에는 옥으로 만든 옥 마스크를 쓰고 몸에는 신체 앞으로 길게 옥 패식을 걸고 마지막 잠자리에 들었다.


획득이 어렵고 가공이 어려운 물질적 특징으로 인해 옥기와 청동기는 특정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었으며, 이들을 다른 계층과 구분하는 신분적 상징물이 되었다. 옥기와 청동기가 신분이 높은 지배계급의 무덤에서 무더기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분과 지위의 상징임을 보여주는 옥기는 ‘패’(佩)라 불리는 몸에 거는 물질들이었다. 그리하여 “군자는 이유 없이 몸에서 옥을 떼지 않았고,” 심지어 죽어서도 얼굴에 옥 마스크를 쓰고 옥 패식을 주렁주렁 달고 매장되었다.

우리는 청동기라는 단어 속에서, 그리고 박물관에서 만나는 청동기의 이미지로부터 고대인들이 사용한 청동 제기의 색깔이 검푸를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당시 청동기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황금색이었다. 고대인들은 빛나는 황금색 제기들을 잔뜩 늘어놓고, 황금빛 악기를 두드리며 장중하게 조상을 비롯한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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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 인쉬에서 발견된, 인자하신 어머니 무(戊)를 위해 만든 ‘후모무정’. 전체 높이 133cm, 정면 폭 112cm, 측면 너비 79.2cm, 중량 875kg의 거대한 솥이다. 하나라에서 만들었다는 전설 속의 구정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옥기와 청동기는 그 의미를 더욱 확장해나갔다. 정치적 권력의 상징물로 전화(轉化)했다.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구멍이 뚫린 옥기인 벽(璧)은 권력을 상징하는 특별한 물건으로 중시되었고, 육류를 담고 조리하던 청동제기인 솥(鼎)은 중국 고대 권력을 상징하였을 뿐 아니라, 왕조의 정통성을 담아내는 물건이 되었다. 하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구정(九鼎)이란 솥은 하가 멸망하자 은으로, 그리고 은이 멸망하자 주나라로 옮겨갔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그 솥은 결국 진의 도성으로 옮겨졌고, 이송 도중 사수(泗水)에 빠져버렸다. 훗날 진시황이 그 솥을 건져 올리고자 했으나 용(龍)의 방해로 실패함으로써 영원히 사라졌는데, 이 고사는 진시황이 덕이 없는 황제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후대인들의 입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이처럼 예기는 자연과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제기에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사회질서인 ‘예’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발전했으며, 나아가 정치권력과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변화해왔다.



  • 글 / 사진. 소현숙 suxuansu@naver.com

    현,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북경사회과학원 박사
    전공, 동아시아 불교미술사 및 교류사
    저서, 《지대물박(地大物博): 중국의 문물과 미술문화》(2014),《돌의 문화사: 돌에 새긴 동아시아 고대의 풍경》(2018, 공저) 《돌, 영원을 기록하다: 고대 중국인의 삶과 죽음》(2018, 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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