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하다 동남아시아의 전통문화와 가옥


아시아문화연구소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문화를 지닌 소수민족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도서부에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Austronesian)이 지배적이지만, 대륙부에서는 언어적으로 우월한 민족이 없다. 또한, 지역 전체에서 사용하는 동일 계통의 문자도 없고, 종교도 정령숭배,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병존한다. 왕정에서 사회주의까지 정치체제도 다양하다. 이렇듯 동남아시아에는 도저히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와 많은 민족이 혼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에는 이 지역의 특유한 유사성을 가진 기층문화가 존재한다. 동남아시아의 기층문화는 수전경작을 기반으로 하는 농경문화이다. 현재도 동남아시아 사람 대부분은 농민이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문화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열대 몬순의 다우림 지대란 자연환경 때문에 생업, 생활양식, 그와 관련한 친족체계와 마을 구조가 유사하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 대나무와 야자나무로 만든 주거문화, 허리띠 스타일의 전통의상 등 많은 동질성이 이 지역에 존재한다. 그 밖에도 동남아시아 기층문화에는 정령숭배라는 정신문화적 공통성이 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같은 외래 종교가 기존의 토착 신앙과 중층적으로 혼재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통일성이 없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정령숭배가 현저하며, 그것은 벼농사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 가옥 양식의 기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범위는 태평양의 이스터섬, 인도양 서부의 마다카스카르, 뉴질랜드, 대만, 하와이 제도를 포함하며, 이 지역에서 50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고고학적 언어학적 조사에 의하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기원은 중국 남서부 지역으로, 약 6000년 전부터 동남아시아 도서부로 확산했다고 한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은 타로, 얌, 고구마, 빵나무, 바나나, 코코넛, 사고야자 등 영양번식 재배를 위주로 한 근재(根栽)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며. 돼지, 개, 닭 등의 가축을 사육하고, 수렵과 어로 활동으로 생활을 영위했다. 또 석기와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배(아우트리거 카누)를 이용하여 강과 바다로 이동했다.

초기의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주거 형태는 동남아시아 대륙부와 도서부의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에서 발견된 고상(高床)가옥에서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가옥의 기원, 거주 공간의 사회적 상징적 기능은 동남아시아 대륙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이동과 교류 때문에 이들 지역의 주거문화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형태의 주거 양식에는 바닥이 지상과 떨어진 고상식이란 점과 가옥이 배를 상징한다는 두 가지 유사성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공통점은 기원을 같이하는 문화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그 이후로도 동남아시아 건축의 특징으로 오랫동안 이어진다.

이미지 설명
플로레스 섬 모니마을의 관습가옥, 곡식 창고, 사자의 집


주거는 사회적 상징적 공간이자 거주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나타낸다. 따라서 주거는 소우주이며, 그 배치·구조·장식은 이상적인 세계관과 사회 질서를 반영한다. 인도네시아의 집은 단지 주거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단위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가옥은 목조 건축으로,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각 전통 가옥은 신분과 부에 따른 격차가 있고, 의례와 조상숭배를 기반으로 가문의 혈통이 강조된다. 그리고 마을이 형성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는 가옥, 예를 들면 관습 가옥(Rumah Adat), 곡식 창고, 작업용 정자(Bale Sakeen), 제당, 집회소 등 여러 용도의 가옥이 세워진다. 플로레스 섬의 모니 마을에는 다양한 용도의 가옥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초가지붕의 관습가옥을 중심으로 곡식 창고, 사자의 집(Kanga, 시신을 안치하는 가옥)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고대 청동기에 새겨진 가옥



중국 남서부와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발견된 헤거I식 동손 동고(Dong Son Drum) 북베트남 홍강 삼각주 유역에서 발달한 동손문화에서 주조한 청동북으로, 프란츠 헤거(Franz Heger)의 이름을 따서 ‘헤거I식 동고’로도 불린다. 상판에 고상가옥이 새겨져 있다. 동손문화는 중국의 서남부 지역과 북베트남을 발상지로 한,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1~2세기에 걸쳐서 번성한 청동기 문화로 인도네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남아시아 대륙부에서 만들어진 헤거I식 동손 동고는 수마트라 섬, 자바 섬, 숨바와 섬, 슬라야르 섬, 스람 섬과 카이 섬 등에서 발견되었다.

이미지 설명
헤거I식 동선 동고의 상판 복원도 (4개의 고상 가옥의 부조, 쌍간 섬 출토, 자카르타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バリ島-Island of God》
이미지 설명
고상가옥 부조 복원도 부분 (쌍간 섬 출토, 자카르타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バリ島-Island of God》


1937년 숨바와 섬 동북쪽의 쌍간 섬에서 발견된 헤거I식 동손 동고 상판에는 동남아시아 금속기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4개의 고상가옥 부조가 그것이다. 그중 하나에는 큰 고상가옥 옆에서 절구통에 쌀을 찧고 있는 사람, 가옥 출입구에 걸쳐 있는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 마루 밑의 공간에 사육하고 있는 가축(돼지, 닭, 개) 등이 새겨져 있다. 가옥 안에는 6명의 인물이 있는데, 입구 가까이에는 가장(家長)에게 인사하는 손님이, 한복판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성들이, 그 오른쪽에는 관통 의를 입고 제단에 기도하는 여성이 그려져 있다. 동인도네시아의 도서지방에는 지금도 동손 동고에 새겨진 풍경과 유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지 설명
니아스 섬 바워마타르워 마을의 오모 세부아
이미지 설명
고상가옥 복원도 상판 부분, 기원전 3세기, 베트남, 호안하 출토
출처 : 《バリ島-Island of God》


헤거I식 동손 동고에 그려진 가옥은 매우 양식화된 도안이지만, 이와 유사한 형식의 가옥이 인도네시아 각지에 남아 있다. 니아스 섬의 바워마타르워 마을의 오모 세부아(Omo Sebua, 수장의 집)는 동남아시아의 가장 큰 목조 가옥으로, 베트남 호안하에서 출토된 헤거I식 동손 동고의 고상가옥 부조와 매우 유사하다. 마루 밑이 높고, 초석 위에 놓인 수직과 경사진 보강재 기둥이 규칙적으로 교차하여 가옥의 붕괴를 막고 있다. 가옥은 마루 밑, 마루 위, 지붕의 3개 주요 공간으로 분할된다. 내부는 전후로 나뉘어, 광장에 접한 앞쪽이 공적인 공간, 뒤쪽이 가족의 사적인 공간이다. 수장(Raja)의 힘을 과시하는 오모 세부아는 지상 최대의 고상가옥으로, 니아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주제가 집 안팎에 조각되어 있으며, 집 앞에는 왕과 왕비의 지석묘(dolmen)가 세워져 있다.

술라웨시 산악지대의 란테 파오에는 장대한 고상가옥으로 형성된 마을이 눈에 띤다. 한 마을에 수십 채의 가옥이 동서 일렬로 세워져 있고, 그 맞은편에 가옥과 같은 수의 곡식 창고가 배치되어 있다. 토라자족이 사는 고상가옥 통코난의 규모는 마루 밑의 높이가 3~4미터, 건물 높이가 10미터 이상이다. 곡창과 마주 보는 가옥의 정면은 반드시 성스러운 방위인 북쪽을 향하고, 북쪽 방은 거실 또는 손님용의 침실, 남쪽 방은 가족의 침실, 중앙은 부엌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동쪽 벽 옆에는 화덕이, 그 옆 동북 구석에는 출입구가 있다.

이미지 설명
술라웨시 섬 란테 파오 마을의 통코난


통코난 정면 박공(牔栱)에는 기하적인 장식문양, 태양과 닭, 헤거I식 동손 동고의 북면이 부조된 것도 있다. 이러한 문양은 토라자 족이 동손문화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을 말해준다. 마을 수장의 집 정면의 물소 머리 장식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다. 통코난 전방의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을 장식한 물소 뿔은 과거의 제례를 기념하는 동시에 가문의 격이 높은 것을 상징한다.

전후로 휘어 올라간 통코난의 거대한 지붕은 지상에 놓인 거대한 배를 방불케 한다. 토라자 족에는 조상이 바다를 건너 배를 짊어지고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는 전승이 있다. 그들에게 배는 조상의 최초 거주처이며, 동시에 사후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동인도네시아는 주거와 배(카누)를 동일시하는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플로레스 섬의 리오 족은 용마루를 지지하는 2개의 기둥을 돛대로 부르고, 가옥을 돛을 친 배에 비유한다.



  • 글 / 사진. 가종수 ka@shujitsu.ac.jp

    현 슈지츠대학교 교수로 재직
    동지사 대학 문화 문화사학전공 박사후과정 수료
    전공, 동남아시아 민속학, 역사학, 인류학
    저서, 〈Island of Gods〉(2009),
    《한국석상의 원류를 찾아서》(공저, 2010) 등

다시보기

해양 문화 콘텐츠로서의 표해록 전시

September, 2020

바닷길, 아시아를 잇다

August, 2020

영화를 사랑한 나라, 영화를 사랑한 국왕

July, 2020

부엌과 음식을 담은 실감콘텐츠, VR 쿡북

June, 2020

태국 도이캄 사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신(神)

May, 2020

대만인이 신과 대화하는 방법 : 즈쟈오

April, 2020

다시 울려퍼지는 이란 여성의 노래

March, 2020

이슬람의 커피가 유럽사회에 끼친 영향

February, 2020

신화와 역사를 품은 사막의 호양나무

January, 2020

‘아시아의 표류기’

December, 2019

구독하기 팝업 타이틀
이메일 주소 입력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

1. 이용목적 :  '웹진 ACC' 발송
2. 수집항목 :  이메일
3. 보유기간 :  '구독 취소' 시 이메일 정보는 삭제됩니다.
4. 동의여부 :  개인 정보 수집 동의 후 '웹진ACC'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웹진ACC' 발송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통해서도 '웹진ACC'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