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생명과 어머니의 상징 신화와 역사를 품은 사막의 호양나무


아시아문화연구소


1980년에 일본 NHK가 중국 CCTV와 공동으로 만든 전설적인 다큐멘터리가 있다. 〈실크로드〉라는 제목의 그 프로그램은 기타로(喜多郞)의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실크로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에는 중국의 CCTV와 한국의 KBS, 그리고 일본의 NHK가 합작으로 다시 〈신실크로드〉라는 작품을 만들어 새로운 것을 많이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중국에 대한 정보가 막혀 있던 시절에 방영된 〈실크로드〉 신드롬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1980년대에 방영된 〈실크로드〉에 나오는 많은 장면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고비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카라호토, 즉 흑수성(黑水城, Kara Khoto)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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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자치구 어지나기의 흑수성 유적지. 성벽이 모래에 묻혀 있다.

카라호토는 현재 중국의 내몽골자치구 어지나기(額濟納旗)를 가리킨다. 내몽골자치구의 서부, 고비사막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 간쑤성의 주취안(酒泉)에서 출발하든,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인촨(銀川)에서 출발하든, 적어도 1,000킬로미터 정도의 사막 길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800여 년 전 그곳은 탕구트족의 땅이었고, 서하(西夏) 왕국의 영역이었다. 많은 대상이 오가면서 은성(殷盛)을 누리던 그 오아시스에는 불탑도 세워졌고 모스크도 세워졌다. 흑수성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고, 그곳을 서하의 흑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말을 탄 용맹스런 흑장군(黑將軍)은 그곳에서 하나의 전설이었다.

그런데 흑수성의 종말이 왔다. 칭기즈 칸이 길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흑장군이 거부하자 둘은 일합을 겨루게 되었다. 그때 칭기즈 칸이 흑장군에게 치명적 일격을 당했고, 훗날 그 상처가 덧나 세상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전설이지만,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칭기즈 칸이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나이가 많든 적든 탕구트족은 모조리 죽여 없애라고 한 것이다. 원정에서 돌아오던 칭기즈 칸의 군대는 흑수성의 물줄기를 끊어버렸고,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흑수성 사람들은 결국 전멸당할 수밖에 없었다. 칭기즈 칸이 그렇게 원한에 사무친 유언을 남긴 것은 흑장군에 대한 복수라고 사람들은 전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칭기즈 칸과 흑장군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는 모래더미에 묻힌 흑수성의 고색창연한 모습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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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왕국의 흑수성은 은성한 오아시스였다.

그리고 흑수성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덧붙여진다. 가는 길이 멀고 힘든데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흑수성 옆에 ‘호양림’(胡楊林)이 있어서다. ‘호양’(Populus diversifolia)은 포플러 종류의 나무인데, 사막 한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중국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에서만 자란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굴된 2,000년 전의 오아시스 왕국 유적지에 서 있는 기둥들이 바로 호양이다. 살아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 천 년을 쓰러지지 않고 서 있으며, 쓰러져서도 천 년을 썩지 않는다는 나무가 호양이니, 유적지에 남아 있는 구조물이 이 나무인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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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양은 살아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천 년을 버티며, 쓰러져서도 천 년 동안 썩지 않는다는 나무이다.

흑수성에도 호양이 있어 이 유적지 옆에 ‘괴수림’(怪樹林)이라 불리는 호양나무 숲이 있다. 이곳엔 천 년 전에 물길이 끊기면서 말라죽은 호양들이 쓰러지지 않은 채 지금도 서 있다. 휘몰아치는 거센 모래바람 속에 기기묘묘한 형체로 서 있는 호양나무들을 현지인들은 칭기즈 칸 군대에 의해 몰살당한 탕쿠트족 병사들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기이한 모습으로 석양빛에 물든 채 서 있는 메마른 나무들을 보면 당시 죽어간 병사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런가 하면 카라호토를 관통하는 작은 물줄기 옆에 지금도 무성한 호양나무 숲이 있다. 10월 초가 되면 나무들이 은행잎보다 더 노란색으로 물들어 눈부시게 찬란한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온다. 메말라 갈라터진 줄기에 버드나무와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 세 가지 형태의 잎이 매달린 신비로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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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호양은 눈부신 노란색 잎을 보여준다.

사막에서 나무는 생명의 상징이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고, 나무는 물이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이니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실크로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 커다란 호양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으면 말에서 내려 모자를 벗고 절을 했다고 한다. 몽골이나 위구르의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무는 신성이 깃든 곳이다. 눈을 뜨면 어디서나 나무를 볼 수 있는 우리와 달리, 사막의 그들에게 초록색 나무 한 그루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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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어지나기의 호양나무 숲.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의 국기에 초록색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두고 이슬람권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빛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들어오기 이전, 그곳은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살던 땅이었고, 그들에게 초록색 나무는 생명을 상징하는 어머니를 의미했다. 초록색은 이슬람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사막의 거친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빛깔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위구르족은 나무에서 그들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신화를 지금도 전승하는 것이고, 무시무시한 요괴에게 쫓겨 도망치던 소녀를 나무가 가슴을 열어 품어주었다는 신화가 이어져오는 것이다. 말라버린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채로 그러한 그들의 역사와 신화를 바람결에 들려주는 호양나무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사막 사람들의 영혼의 상징이다.


  • 글 / 사진. 김선자 heehwa12@hanmail.net

    현,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소속
    전공, 동아시아 신화 전문가
    저서,《나시족 창세신화와 돔바문화》(2019), 《제주 신화, 신화의 섬을 넘어서다》(2018) 역서,《절반의 중국》(2017),《중국 소수민족의 눈물》(201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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