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캄보디아 영화사(史) 이야기 영화를 사랑한 나라, 영화를 사랑한 국왕


아시아문화연구소


최근 영화를 보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영화관에 가지 않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소비한다. 더군다나 ‘코로나19’의 확산까지 맞물려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전 세계에서 만든 다양한 영화와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잘 접하지 못했던 국가들의 콘텐츠도 비교적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국가도 있다. 캄보디아도 그 중 하나이다. 독자들은 반문할 것이다. “캄보디아에 제대로 만든 영화가 있기는 한가?” 우리에겐 앙코르왓, 똔레삽 호수와 같은 관광지 정도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캄보디아 영화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고 깊다.

1909년 10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시내 강변에 ‘브리뇽’이라는 이름의 상영관이 문을 열었다. 브리뇽은 식민 통치를 위해 캄보디아에 주재하던 프랑스인과 유럽인을 대상으로 당시 신문물의 결정체였던 ‘영화’를 상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뇽의 문은 캄보디아인에게도 개방됐다. 점점 더 많은 상영관이 생겨났고, 영화 관람은 곧 프놈펜 시민들의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자체 영화제작 역량이 없었던 캄보디아는 외화를 수입해 상영했다. 처음에는 프랑스나 미국 영화가 주를 이뤘지만, 이후 중국, 인도 등지의 다양한 영화가 소개됐다. 당시에는 더빙이나 자막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영화를 상영할 때 극장에 소속된 변사가 현장에서 변역된 대본을 읽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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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카뮈가 연출한 <천국의 새(L’oiseau du paradis)>의 캄보디아 촬영 장면
- 출처: 캄보디아 국립기록보관소 소장자료. 프놈펜왕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자료집 발췌

캄보디아인이 만든 최초의 ‘상업영화’가 극장에 상영된 것은 브리뇽이 개관하고 무려 반세기가 지난 1958년의 일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인이 처음 ‘영화’를 만든 시기는 이보다 앞선 194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최초로 영화를 만든 캄보디아인은 누구일까?

놀라지 마시라. 정답은 노로돔 씨하눅 국왕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씨하눅은 열아홉 살 때 16㎜ 카메라를 구입하여 <꾸이족의 타잔(Tarzan among the Kuoy)>, <마지노선의 이중범죄(Double Crime on the Maginot Line)>와 같은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했다고 한다.

씨하눅 국왕이 새로운 문물에 대한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1953년 캄보디아의 독립을 이끌고 국가의 수반이 된 그는 개인적 취미 활동을 넘어 캄보디아 영화산업 전반을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 고위관료나 군 장성들이 영화제작 기술을 배워 활동하도록 했다. 이들은 미국 공보원의 영화제작 교육 프로그램을 듣거나, 외국 방문 시 카메라를 비롯해 영화 제작과 상영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해 들여왔다. 때로는 직접 영화사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 공보원은 캄보디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거나 계몽 및 반공선전을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이동식 영사기를 동원해 캄보디아 전역을 다녔는데, 이를 위해 캄보디아인을 고용해 장비 운영과 수리는 물론 촬영, 편집, 음향기사 등으로 교육, 훈련시켜 전문인력을 길러냈다. 이들은 향후 캄보디아 영화산업의 한 토대를 구축하는 중요한 그룹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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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에게 상을 수여하는 노로돔 씨하눅 국왕
- 출처 : 프놈펜왕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자료집 발췌

1960년대가 되면 캄보디아 영화산업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사실 캄보디아의 1960년대는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만화 등 대중문화와 예술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캄보디아인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앙코르 사원을 만든 후예답게 예술을 사랑했다. 특히 오랜 세월 그림자극을 즐겨온 캄보디아인이기에 흰 장막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인 영화는 어쩌면 더 친숙했을지도 모른다. 캄보디아 영화산업은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전국에 30개가 넘는 영화관이 운영됐고, 이 시기 동안 총 35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됐다. 당시 캄보디아의 인구 규모와 경제력 등을 감안하면 꽤나 높은 수치이다.

캄보디아 영화는 민담이나 전설을 각색해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캄보디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가 주 소재였기 때문에 연령과 계층에 상관없이 폭넓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설화 속 상상계를 소재로 삼다 보니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기도 했고, 관객들은 이러한 상상을 간접 체험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며 영화를 즐겼다. 영화 시장이 커지자 기존의 이야기나 당대 소설을 영화 시나리오에 맞게 각색하는 영화작가도 새로운 직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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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전통 그림자극
- 출처: 쏘완나품 예술협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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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작 <백련의 천사>
- 출처: 제62회 베를린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1968년에는 ‘프놈펜 국제영화제’가 최초로 개최됐다. 이 역시 씨하눅 국왕의 의지 덕분이었다. 다만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너무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 압사라 상’을 2회 연속 본인이 직접 제작, 연출, 연기한 작품에 시상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영화제는 1969년 제2회를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못했다. 이듬해인 1970년 론 놀 장군의 쿠데타로 인해 씨하눅 국왕이 축출되어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내전은 격화되고 정세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이것이 캄보디아인의 영화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극장 내에서 수류탄이 폭발하여 사상자가 발생하고, 프놈펜 시내에 로켓포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갔다. 국방부가 클럽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여흥 시설을 폐쇄하기 시작했지만 끝내 극장만은 문을 닫게 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975년 급진적 공산혁명 집단인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장악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도시민들은 농촌으로 강제이주 당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집단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감독, 배우 등 영화인들은 운 좋게 살아남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때도 영화는 만들어졌지만 모두 정권의 선전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4년 뒤 크메르루주는 물러갔지만, 극장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동남아시아에서 손꼽힐 정도로 발전하던 캄보디아 영화계가 한순간에 절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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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작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First They Killed My Father)>
크메르루주 시대의 경험을 담은 동명의 베스트셀러 자서전을 영화로 만든 작품.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았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됐다.
- 출처: 넷플릭스 웹사이트 갈무리

‘킬링필드’의 광풍이 휩쓸고 간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캄보디아 영화계는 화려했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대식 영화관도 여럿 운영되고 있고, ‘캄보디아 국제영화제’는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학살과 내전의 화를 피해 망명을 떠났던 이들,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가 새로운 캄보디아 영화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인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것처럼 언젠가 한국 관객들이 캄보디아 영화를 찾을 날도 올 것이다. 고인이 된 씨하눅 국왕도 자신이 못 다한 꿈을 이뤄줄 후배들을 하늘에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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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작 <쩜빠 밧탐방: 영혼의 노래(In the Life of Music)>
사랑과 우정, 음악으로 크메르루주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작품. ‘2019 아세안 영화주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 출처: 영화 페이스북 페이지




  • 글. 부경환 suasdei@gmail.com

    ※ <전남일보> 2020년 6월 26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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