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책과 머무는 곳

독립책방 ‘연지책방’

광주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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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은 왠지 더듬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다. 한 달에 책 00권 읽기, 영어 회화 공부하기, 하루 30분 운동하기, 매일 물 2리터 마시기, 새벽 5시 기상... 작심삼일에 묻혀버릴 계획이라도 심사숙고하며 몇 줄 적어보기도 하고, 2020이라고 썼다가 지우며 2021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고,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늘어난 나이를 실감하기까지, 2021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지기까지, 가장 힘차게 출발할 것 같은 1월이 어쩌면 가장 조용히 침잠해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홀로 있으며 밖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그 시간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시간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책 한 권을 골라 오롯이 책과 나 자신과 머무는 때. 그 속에서 우리는 한층 단단해지고 삶을 더 사랑하는 법을 알아갈 것이다. 책과 함께 고요히 머물기 좋은 곳,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기 좋은 장소, ‘연지책방’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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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없이 무인책방으로 운영
손님들이 자유롭게 책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전남대 기숙사 후문 건너편. ‘연지책방’의 빨간색 간판이 눈에 띈다. 연지책방에 들어가려면 절차가 필요하다. 연지책방 앱에 가입한 뒤 책방 비밀번호를 받아야 한다. 잠긴 책방의 문을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기분이 낯설면서도 재미있다. 마치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책방지기 대신 책방을 지키고 있던 한 권 한 권의 책들이 인사를 건네온다. ‘어서 오세요. 편하게 머무세요’라고... 연지책방은 2016년 6월에 문을 열었다. 2018년 즈음, 지금 책방지기 민승원씨가 연지책방을 인수한 뒤 무인책방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책방을 찾아오는 이들이 책과 함께 조금 더 편하게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민승원 /연지책방 책방지기

“기존 연지책방 지기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지책방을 인수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책방지기가 상주하는 형태로 운영하였는데, 공간이 넓지 않은 서점의 특성상 손님과 사장이 마주하는 상황이 책방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는 부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롯이 책방을 누릴 수 있는 느낌을 드리기 위해 무인서점으로 바꾸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더 자유롭게 책방을 체험할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일곱 평 남짓한 작고 아담한 공간. 책방지기와 손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순간이 많았다. 책방지기의 존재가 굳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비밀번호 앱과 무인결제 시스템 등을 갖췄다. 운영 시간도 길어지고 인건비도 줄어드는 장점이 있었다. 간혹 책을 정리하지 않거나, 무단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책방 예절을 지키지 않는 손님들도 있지만, 대개는 차분히 머물고 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무인책방으로 2년 가까이 전남대 후문 길목을 지켜오며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조용한 아지트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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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점에서 만날 수 없는 독립출판물들과 만남
지역 독립출판의 저변을 넓혀가는 연지책방



아무도 없는 연지책방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서가에 꽂힌 책들도 무심한 듯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한 권 한 권 찬찬히 눈 맞춤할 여유가 생긴다. 책 크기부터 제목, 디자인까지 자신만의 개성이 듬뿍 느껴지는 책들.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보통의 기획출판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독립출판물들이기 때문이다. 책방지기 민승원씨는 연지책방과 더불어 ‘연지출판사’라는 독립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는 독립출판사도 흔치 않지만,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도 거의 없기에 연지책방 만큼은 독립출판물을 접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민승원 /연지책방 책방지기

“연지책방에서는 개인이나 소수가 발간한 독립출판물을 취급해요. 아주 가끔 대형 출판사에서 만드는 동네서점 에디션도 다루기도 합니다. 책을 선정할 때는 ‘얼마나 잘 팔릴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서점이나 다른 서점에서 접하기 힘든 책을 주로 선정하죠. 절대다수의 독립출판 작가들은 도서의 유통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다만, 독립출판물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무성의한 책은 다루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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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낼 수 있는 독립출판의 세계
독립출판물과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공간



대부분 우리가 책을 접하는 곳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고, 만나는 책은 일반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다. 출판 역시 ‘수익’이 따라야 하므로 돈이 되지 않는 책, 팔리지 않는 책들은 출판시장에 나오기가 어렵다. 당연히 유명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출판사의 기획단계를 거쳐 책을 내기란 절대 쉽지가 않다. 그런 현실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독립출판이다.

누구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낼 수 있는 독립출판.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어야 할 것이다. 그때의 가치는 ‘수익’ 즉 돈이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읽힐 만한 가치이다. 어떤 책이 읽힐 만한 책인가라는 질문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그 기준이 다를 것이므로 세상의 수많은 사람만큼 책도 다양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책의 다양성과 출판의 가능성의 폭을 한층 넓혀주는 독립출판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책을 만들어낸다고 끝이 아니다. 독자와의 만남, 읽힘이라는 관문이 남아있다. 수익성도 낮고 인지도도 낮은 책을 선뜻 진열해주는 서점은 거의 없기에 독립출판물이 독자를 만나는 길은 무척 좁다.

연지책방은 그런 독립출판물과 독자를 이어주는 흔치 않은 서점이다. 독자로서는 일반 서점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별한 책을 만나볼 수 있고 독립출판 작가에게는 자신의 책을 알릴 수 있는 고마운 곳이다. 독립출판의 수호천사와 같은 공간인 셈이다.


민승원 /연지책방 책방지기

“독립출판 문화가 지방에서는 여전히 접하기 힘든 문화입니다. 광주 지역에는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이 많지 않고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연지책방마저 문을 닫게 되면 독자들이 독립출판물을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거죠. 예를 들면 연지출판사에서 펴낸 심진규 작가님의 「아빠가 캠핑 중」은 고압선 철탑에서 텐트를 치고 파업 중인 해고 노동자를 다룬 동화인데, 이렇게 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책,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 정말 많거든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연지책방 운영은 경제적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다. 책방 운영으로는 임대료도 해결하지 못한다. 함께 꾸려가고 있는 연지출판사에서 적자를 상쇄하고 있는 형편이다. 매출을 생각한다면 연지책방은 문을 닫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도 맞다. 누구나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관심 있는 누군가는 그 책을 집어들 수 있는 순간을 위해. 그렇게 집어 든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운명의 책이 된다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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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다
1년 후 도착하는 편지 ‘느린 우체국’



연지책방 한 귀퉁이에는 특별한 방이 하나 마련돼 있다. 1년 후에 편지를 배달하는 ‘느린 우체국’이다. 작은 책상 앞에 작은 엽서를 두고 오롯이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이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이 또 1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만히 상상해보면 내가 원하는 삶, 나의 길이 그려지는 듯도 하다. 한 글자 한 글자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응원의 글이다. 1년 후의 나의 모습이 내가 그리던 모습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나를 생각하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연지책방 민승원 책방지기가 손님들에게 건네고 싶은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민승원 /연지책방 책방지기

“느린 우체국은 편지를 쓰면 1년 뒤에 발송해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사람의 자아는 연속적이지 않고 단속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나와 만나는 방법이 1년 전의 내가 쓴 편지를 받아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느린 우체국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 여행도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인원을 생각해야 하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되도록 홀로 머무는 것이 미덕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 이 순간 역시 소중한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멀고 화려한 곳, 손에 닿지 않는 곳을 꿈꾸던 눈길을 내 곁의 가까운 곳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먼 곳에 있는 것은 꿈일 뿐 희망은 확실히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열려 있는 동네 책방, 연지책방에서 1년 후의 나를 생각하며 늦은 새해 계획을 세워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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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책방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178
Tel. 070-7760-7982
https://yjbookstore.com/





  • 글.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2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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