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정율성.
양림의 거리에서 만나다

양림동 정율성 거리전시관

광주초이스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살았던 걸출한 인물들 중에는 선교사, 독립운동가는 물론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가 같은 문화예술인들도 많다. 깊어가는 가을에 젖은 낙엽 향기에 끌려 푸른 길을 걷다 보면 양림 휴먼시아 2차 아파트 입구에서 초록색 흉상과 만나게 된다. 흉상의 주인은 양림이 낳은 음악가 정율성이다. 본명은 ‘정부은’으로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항일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3대 음악가 중 한 사람이 된다. 그가 작곡한 「연안송」은 중국의 ‘아리랑’으로 비견되고 「팔로군 행진곡」은 중국 군대와 공식 행사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동요는 중국 초등학교 음악책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정율성을 알리기 위해 거리전시관 설치 사업을 진행하셨던 남구청 정운영 문화관광과장님을 양림동에서 만났다.

양림의 거리에서 만난 정율성



‘정율성로’ 입구의 흉상은 한 손에 깃펜을 쥐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흉상 옆으로 여러 사람의 서명과 손바닥이 찍힌 기념비가 있다. 아래 설명을 보면 중국 광저우시 하이저우구 청년연합회대표단이 정율성 생가를 참관하고 그의 흉상을 3년에 거쳐 완성하여 2008년 남광주청년회의소에 기증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율성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 청년들이 문화 교류가 이뤄진 것이다. 이 흉상에서부터 정율성 거리전시관이 시작된다. 몇 발자국 옮기면 양림휴먼시아 2차 아파트 담벼락에 한자 이름 ‘정율성(鄭律成)’이 크고 힘찬 금빛 글씨체로 설치되어 있다.

정율성 흉상
정율성 흉상
정율성
정율성
이미지 설명
정송월 여사의 친필


정율성 거리전시관/ 정운영 남구청 문화관광과장

“중국에 계신 정송월 여사(정율성의 부인)께 고향 광주에 거리전시관을 만들려고 한다고 한자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직접 받아온 친필로 제작된 것입니다. 또 그 옆의 석판에 새겨진 글씨는 정율성 선생이 공산당에 입당할 때 본인이 직접 ‘나의 이력’이라고 쓴 글입니다. ‘나는 조선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정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라고 시작하는 글이죠. 그 옆의 정율성 선생의 약력 역시 가족분들과 중국에서 함께 정리한 것이고 설치된 사진들 역시 모두 가족분들에게 직접 받아온 것들입니다. 1930년대 중반의 젊은 정율성 선생님 사진과 해방된 후의 사진도 있죠.”

정율성 연보 옆으로 오선지 악보가 펼쳐진다. 벽에 붙은 악보는 그의 대표곡인 「연안송」이다. 중간쯤에 버튼이 몇 개 있는데 누르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연안송」, 「연수요」, 「평화의 비둘기」, 「3·1행진곡」, 「우리는 행복해요」,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거리전시관은 길지 않은 아파트 담벼락을 알차게 사용하고 있다. 스텐으로 만들어진 오선지 구조물에 걸린 사진들은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음악교과서]에는 교과서에 실린 정율성의 음악들, [일대기 영화]에는 그의 삶을 다룬 「태양을 위하여」에 나온 장면들, [그리운 가족, 고마운 친구들]에는 그의 어머니와 딸, 부인의 사진들이 있고, [해외 공연활동]에는 공연 관련 사진들, [세월은 강물처럼]에는 젊은 정율성의 모습부터 나이 든 모습까지 시간순으로 되어 있고, [생가와 기념사업]에는 정율성 관련 기념사업들에 대한 사진들이 있다.


연안송 악보
연안송 악보
정율성 음악 재생버튼
정율성 음악 재생버튼
이미지 설명
정율성 거리 사진첩


또한 사진들 옆으로는 중국 내 정율성의 위상에 대해 설명해 놓은 안내판도 있다. 그가 중국의 위대한 음악가인 것을 중국 인구의 20%(3억 명 이상)가 알고 있고 그가 작곡한 노래를 최소 1곡 이상 아는 사람이 인구의 80%(10억 명 이상)라고 한다. 그리고 정율성 기념사업 소개 안내판도 있는데, 전 중국문화부 장관 ‘하경지’, 중국 문화부 장관 ‘손가정’ 등이 정율성의 생가와 거리전시관을 방문한 기록을 보면 중국에서 정율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내용을 품은 전시관을 거리에 노출시키겠다는 생각은 너무 참신하지 않은가. 건물로 된 전시관은 일부러 찾아가야 하지만 여기는 거리를 지날 때마다 눈에 담을 수 있다.



정율성 거리전시관/ 정운영 남구청 문화관광과장

“정율성을 사랑하는 많은 중국 관광객이 그의 생가를 찾아 양림동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정율성 기념 전시관을 만들고 싶었죠. 하지만 건물을 지을 땅도 없고 예산도 없어서 전시관을 노출시키는 거리전시관을 제안했습니다. 마침 그때 양림휴먼시아 2차 아파트를 짓고 있어서 담을 사용하겠다는 양해를 얻어내어 거리전시관을 추진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터치스크린 등 많은 것을 계획했지만 야외 전시관이라 잦은 눈, 비에 고장이 나고 온도 때문에도 말썽이 많이 일어났죠. 현재의 거리전시관은 2019년도 수해복구 자금을 받아 다시 재정비한 모습입니다. 또 정율성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MBC 방송국 주관으로 「정율성 동요제」와 광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정율성 음악축제」가 매해 열리고 있습니다. 「정율성 음악축제」에서는 그의 음악을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재즈, 국악, 클래식, 크로스오버뮤직 등 다양한 장르로 재해석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정율성로
정율성로
정율성 기념사업 소개
정율성 기념사업 소개

정율성, 그는 누구인가?

정율성은 유년시절 외삼촌인 최흥종 목사의 집에서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외가의 영향으로 음악에 친숙해졌고 양림교회, 선교사들과의 만남으로 서양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4남 1녀의 막내인 정율성은 1933년 셋째 형을 따라 전주신흥학교를 중퇴하고 항일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로 향했다. 의열단에 가입한 뒤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비밀 활동을 했으며, 신분 은폐를 위해 상해를 오가며 소련 레닌그라드 음악원 출신 여교수 크리노와에게 성악, 작곡,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웠다. 그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것은 이 시기의 1년이 전부였다. 원래 이름이었던 ‘부은(富恩)’ 대신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의미에서 ‘율성(律成)’으로 개명을 하고, 작곡 활동과 함께 1941년 화북조선청년연합회 등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1944년 4월 옌안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귀국, 황해도 해주에서 음악전문학교를 창설하고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6·25전쟁 중에는 중국에서 전선 위문 활동도 했고, 1956년 북한의 연안파 숙청에 휘말려 중국 국적을 얻어 정착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수색을 당해 많은 악보를 잃기도 했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 베이징 근교의 한 운하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 심장병으로 쓰러져 6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 전승절 60주년에 신중국 건국 100인의 영웅으로 뽑힌 정율성은 ‘중국혁명음악의 대부’로 불린다. 항일투쟁 시기 중국 연안 중앙대례당 음악회에서 정율성의 만돌린 연주에 여가수 당영매가 부른 「연안송」을 들은 마오쩌둥이 그의 음악을 극찬하며 유명해졌다. 「연안송」과 「팔로군 행진곡」은 당시 일본과 싸우던 중국 병사들에게 신앙과도 같았다고 한다. 정율성은 사회주의자라는 이념적인 이유로 한때 우리나라에서 배척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보다 중국에서 더 사랑받고 중국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정율성. 생가가 있는 광주에 그의 이름을 붙인 도로 ‘정율성로’가 생기고, 거리전시관과 그를 기념하는 음악축제가 열리는 등 ‘정율성’은 늦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항일운동을 한 훌륭한 음악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정율성 가족사진
정율성 가족사진
포토존과 방명록
포토존과 방명록

양림동의 정율성 생가

과거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63번지와 남구 양림동 79번지 두 곳에서 서로 정율성의 생가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 지금은 양쪽 모두 그의 생가라고 인정을 받은 상태이다. 거리전시관의 끝자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정율성의 양림동 생가가 있다. 좁은 골목길을 넓혀 예전보다 다니기 좋게 포장되어 있었다. 현재는 사유지로 주변의 오래된 집들과 섞여 있지만 집 앞의 표지판과 스탬프 박스가 있어 정율성 생가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싶다면 미리 연락을 해서 집주인과 방문 약속을 잡아야 한다. 미처 몰랐던 우리는 까치발을 들고 담 너머로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집 오른편으로 보이는 고목이 된 석류나무는 정율성이 어릴 적 올라가서 놀았던 나무라서 유명하다고 한다. 마당 한편에 우물도 있지만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정율성 거리전시관/ 정운영 남구청 문화관광과장

“불로동 생가에 정율성 기념관을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양림동 생가는 매입을 하지 못하고 사유재산으로 있는 탓에 ‘정율성 생가’라고 표시만 해놓은 상태죠. 매입할 수 있다면 예전 모습으로 복원해서 기념관이나 공원으로 조성하면 정율성으로 인해 한중 교류도 활발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중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 지역 경제도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창기 정율성 사업을 시작할 때는 중국과의 교류도 활발했지만 지역에서 정율성과 그의 음악이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걸렸고 이후 코로나19로 교류가 축소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광주문화재단과 남구청, 시청과 의견을 나누고 협력해서 더 발전된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율성 생가
정율성 생가
생가 앞 표지판
생가 앞 표지판

중국 군인들이 「팔로군 행진곡」을 부르며 두려움을 이기고 싸우러 나갔다는 것을 보면 총칼만이 무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율성의 음악 역시 훌륭한 무기가 되어 항일운동을 했다. 그는 소수민족의 음악을 수집하기도 했고, 360여 곡을 작곡했으며, 오페라 대작 「망부운」도 작곡했다. 「망부운」은 2019년 3월 한중 정상급 성악가들의 참여로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의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조국을 위해 항일운동을 한 혁명 음악가 정율성. 그는 해방을 맞은 뒤에도 주변 상황 때문에 북한에 정착할 수도 없었고 끝내 고향인 광주로 돌아올 수도 없었지만 그가 우리 고장에서 태어난 위대한 음악가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정율성로’의 낙엽을 밟으며 ‘정율성’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음악을 들어보고,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정율성거리
  • 글. 김옥수 mono755@daum.net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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