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봉, 線(선)을 넘다

월봉서원과 고봉 기대승

광주초이스




올해 광주에 첫 눈발이 흩날리던 날,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월봉서원을 찾게 되었다. 서원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너브실 마을로 들어서자 추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걷고 싶어서 차에서 내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쳤다면 고즈넉한 마을의 돌담길의 정취와 담 너머 까치밥을 달고 있는 감나무의 정겨움, 댓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 잎을 모두 떨구고 맨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옆으로 누운 고목,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 소리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즐기며 걷다가 길 끝자락에서 월봉서원을 만날 수 있었다.

월봉서원
외삼문
외삼문

월봉서원, 들어서다

월봉서원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고봉 기대승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고봉 선생의 사후 1578년 호남 유생들이 지금의 신룡동인 낙암 아래 ‘망천사’라는 사당을 세웠고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어 지금의 산월동인 동천으로 옮겼다가 1654년 효종께 ‘월봉’이라는 서원 명을 받았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문을 닫았다가 1941년 현재 위치에 빙월당을 짓고, 1978년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을 건립했고 1991년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고봉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인 춘·추 사향제가 매년 3월과 9월의 초정일(初丁日)에 사당인 숭덕사에서 행해지고 있다.

주차장에서 멀리 바라본 서원은 무척 아담했고 절묘한 간격을 두고 층층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3개의 기와지붕을 배치한 것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작은 돌다리를 건너 외삼문(망천문)의 동문으로 들어섰다.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고 해서 들어갈 때는 오른쪽 동문, 나올 때는 왼쪽 서문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빙월당이고 양쪽으로 동재(명성재)와 서재(존성재)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유생들의 기숙사로 쓰이던 곳으로 동재는 선배들이, 서재는 후배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빙월당 계단 앞으로 고봉 선생의 연혁과 관련 인물들에 대한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 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동재: 명성재(배움에 있어 밝은 덕을 밝히는데 성의를 다하라)
동재: 명성재(배움에 있어 밝은 덕을 밝히는데 성의를 다하라)
서재: 존성재(자기를 성찰한다)
서재: 존성재(자기를 성찰한다)
묘정비
묘정비


빙월당, 둘러 보다

공부를 하던 주 강당인 빙월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빙월’이라는 이름은 고봉 선생의 학덕과 인품이 빙심설월(氷心雪月:마음이 얼음처럼 맑고 흰 눈에 비친 달)과 같다 하여 정조가 하사한 것이라 한다. 빙월당에는 충신당, 빙월당, 월봉서원까지 총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빙월당(氷月堂)
빙월당(氷月堂)
빙월당 3개의 현판
빙월당 3개의 현판

빙월당 양옆으로 까치밥을 단 큰 감나무가 있는 쪽 작은 건물이 장판각으로 고봉집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고 반대편 오른쪽에는 전사각으로 제기용품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다. 소나무와 철쭉으로 둘러싸인 빙월당 마루에서 보면 왼편 담 너머로 백우정이라는 정자도 보인다. 금약부근명우차(今若不勤明又此)라고 빙월당 기둥에 새겨진 글귀를 해석하면 ‘오늘 힘쓰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조금 느슨하게 살아가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빙월당 마루
빙월당 마루
전사각
전사각

고봉 기대승, 그를 기리다

빙월당 뒤로 돌아가면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센 바람을 뚫고 올라가 내삼문(정안문)을 지나 들어갔더니 가장 나중에 지어졌다는 숭덕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교육과 제사를 위한 곳이 서원이라면 빙월당은 교육을, 숭덕사는 제사를 위한 장소이다. 전에는 고봉 선생과 더불어 눌재 박상, 사암 박순 등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지만 다른 곳으로 모셔가고 현재는 고봉 선생의 위패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내삼문(정안문: 조용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
내삼문(정안문: 조용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
숭덕사
숭덕사

호남 정신문화의 기둥이라 불리는 고봉 기대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행주, 자는 명언, 호는 고봉, 시호는 문헌이다. 1527년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용리 용동에서 출생했고 주자학에 정진했으며 400년 전, 26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퇴계 이황과 13년 동안 12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은 아름다운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그중 8년은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쟁을 펼쳐 조선 성리학의 발전을 이끌었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치와 처세, 집안일까지 이야기하며 나이와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학문에 대한 열정과 우정을 나눈 두 분의 이야기를 사상로맨스 혹은 조선판 브로맨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월봉서원

월봉, 선(線)을 넘다

월봉서원은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 문화브랜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월봉서원의 스토리와 서원문화를 현대의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선(線)을 넘어’ 함께 교류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 중이다.

월봉서원 교육문화프로그램
살롱 드 월봉<br>출처 I 월봉서원
살롱 드 월봉
출처 I 월봉서원
월봉 로맨스<br>출처 I 월봉서원
월봉 로맨스
출처 I 월봉서원

월봉서원을 모두 둘러보고 외삼문의 서문으로 나오니 서원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길로 ‘철학자의 길’도 보였지만 거센 바람과 추위에 나중을 기약하게 되었다. 대신 서원 뒤 백우산에 있는 10분 정도 거리의 고봉 기대승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산 위에서 내려다본 월봉서원은 거센 눈발 속에서도 아늑하고 포근해 보이기만 했다. 12월 중순 이후 동절기에는 문화해설이 종료되어 설명을 들을 수 없을 거라 여겼는데 강수당에서 서원 운영지원팀 이예진 님을 만나 해설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낯선 방문객을 위해 눈바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안내를 해주신 것에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평소보다 늦게 꽃을 피워 눈발과 함께 퍼지는 은목서 향기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에 벚꽃과 철쭉이 피는 봄이 되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명소 중 한 곳으로 여기 월봉서원을 찜해 두었다.

고봉 기대승 묘소 표지판
고봉 선생이 유일하게 언문으로 쓴 한시(묘소 가는 길)
고봉 선생이 유일하게 언문으로 쓴 한시(묘소 가는 길)
  • 글. 김옥수 mono755@daum.net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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