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부터 양림동까지…
도보로 하는 ‘문화나들이’

중국 현대미술 거장展 ‘유에민쥔-한 시대를 웃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이남스튜디오

광주초이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한동안 하기 힘들었던 ‘문화나들이’에 나섰다.

#1 중국 현대미술 거장展 ‘유에민쥔-한 시대를 웃다’

첫 코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전 ‘유에민쥔:한 시대를 웃다’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출범한 뒤 첫 선을 보이는 전시여서 기대가 컸다. 국내에서 유에민쥔의 개인전이 열린 것은 서울과 부산에 이어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 규모여서다.

청동상과의 조우
청동상과의 조우

이번 전시에서는 ‘차이나 아방가르드’ 선두 주자인 유에민쥔의 작품을 총망라했다. 웃음 속 부자유와 허무로 동시대 현대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던져온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유에민쥔’의 회화부터 설치, 영상 등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전국 순회전 형태로 광주에서는 8m 크기의 청동상이 최초로 공개돼 실제로 보고 싶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찾은 문화창조원은 거장의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긴 통로를 지나 전시장에 들어서니 유에민쥔의 작품들로 채워진 전시 공간이 나왔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됐다. 먼저 제1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제2부 ‘한 시대를 웃다’에서는 냉소적 사실주의가 깔린,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웃음’ 연작을 만날 수 있었다. 3부 ‘사의 찬미-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는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의미로 화면에 해골이 등장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4부 ‘조각 광대’에서는 설치 신작이, 유에민쥔의 작업실을 형상화한 5부 ‘일소개춘’이 각각 선보였다.

「이미지와 흙의 만남, 도자기로 육화(肉化)되다.」 유에민쥔x최지만 作
「이미지와 흙의 만남, 도자기로 육화(肉化)되다.」 유에민쥔x최지만 作

두 눈은 꼭 감고 입을 활짝 벌린 채 과장되게 웃고 있는 얼굴들,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작위적 웃음. 진실보다는 거짓에 가까운 이 얼굴들이 때때로 억지웃음을 짓는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특히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처형’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사회 체제의 혼란함 속 획일적이고 무기력한 군중을 떠올리게 했다. 작품 옆에는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의 ‘1080년 5월 3일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을 함께 전시해 유에민쥔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기억2(Memory 2). 2000. 140x108(cm)
기억2(Memory 2). 2000. 140x108(cm)
유에민쥔을 오마주한 자신의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현석'군
유에민쥔을 오마주한 자신의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현석'군

이와 함께 어린 시절 꿈을 꾸던 모습을 잘린 머리에서 흩날리고 있는 풍선으로 표현한 ‘기억’, 물속에서 머리만 내놓은 러시아 공산당 창시자 레닌, 현대미술가 피카소,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 슈퍼히어로 캐릭터 배트맨, 웃는 남자를 담은 ‘푸른바다’ 등이 걸렸다.

이처럼 작가가 스스로를 모델 삼아 화면을 구성한 얼굴들은 작품을 보는 내내 문화혁명 시기 초상화를 떠올리게 했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 시대를 살아낸 작가가 절망의 시기를 버텨내면서 느낀 불안과 냉소가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는 듯했다. 이외에도 서양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작품의 오마주, 서구 상업문화의 패러디한 작품도 선보였다.

바니타스 회화를 연상케 하는 ‘정물시리즈’, 작은 이빨을 한껏 드러내며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웃음, 해골로 변한 눈동자를 표현한 ‘눈 속의 표현’과 그리다 만 듯한 스타일의 해골남녀 ‘연인’ 등 그의 작품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짐승 같은 인간(Human Beast). 2016. 71x70x201(cm)
짐승 같은 인간(Human Beast). 2016. 71x70x201(cm)

전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레드 카펫이 깔리고 그 양옆으로 양복을 입고 웃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 줄줄이 설치됐다. ‘짐승 같은 인간들’은 유명인의 동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멀쩡해 보이는 앞 모습과 달리 이들의 뒤통수는 코뿔소, 사자 등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몸을 웅크려 괴로워하고 있는 초대형 청동 작품도 인상 깊었다.

이외에 유에민쥔과 최지만 숙명여대 도예과 교수와의 컬래버레이션, 서울 경희초 3학년 최석현 군이 유에민쥔을 오마주한 작품 등도 만날 수 있었다.

#2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전시를 보고 나온 뒤 그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아 남구 양림동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근대문화자원이 풍부한 양림동에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미술관과 갤러리, 작업실 등이 다수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이중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과 이이남스튜디오를 가기로 하고 걸어가는 길, 연녹빛을 띤 나무들의 싱그러움이 봄을 느끼게 했다.
두 번째 코스로 방문한 푸른 하늘을 따라 다다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는 김선희 작가의 개인전 ‘Beyound blue2020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가 열리고 있었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김선희 개인전

작가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좌절의 시기, 이를 견딘 시간을 회화와 도자에 담았다. ‘어디 갈 곳 없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내일은 좀 나아지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앗아간 감염병으로 인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물론, 힘들었던 시간을 딛고 희망으로 나아간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광주시립미술관 중국 베이징창작레지던시를 그리워하면서 제작한 그림을 그려 넣은 자기들, 투명한 술병, 또 이를 그린 채색화 등도 볼 수 있었다. 전시는 특유의 경쾌함과 전시장의 붉은 벽돌, 풍광을 담는 글라스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냈다. 벽돌을 덮은 담쟁이와 전시장 내부에 자리한 나무 등 자연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이남스튜디오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3 이이남스튜디오

세 번째 코스인 이이남스튜디오를 가기 위해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과 그 옆에 호랑가시나무창작소를 지났다. 호랑가시나무창작소는 양림동에 터를 잡고 있는 문화예술콘텐츠기획사 아트주가 매년 국내외 예술인을 대상으로 레지던시를 진행하는 곳이다. 116년 전 1904년 서양 선교사들이 조성한 사택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 겸 창작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벽돌로 이뤄져 바로 옆 현대건축이자 화이트톤인 이이남스튜디오와 대비되는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이남스튜디오에서는 ‘good night’전이 진행 중이었다. 1층에 마련된 식음료 코너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이를 기다리면서 전시를 감상했다. 전시에서는 그동안 동서양 고전 작품을 움직이는 모습으로 디지털화해 보여준 이이남 작가가 고전 작품을 소재로 이것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되돌아봤다. 고흐의 방을 실제로 만들어 보여주고, 이어 작가가 시골 밤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 작품을 통해 역사와 생명의 맥 속 본질, 나아가 인류가 살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이이남스튜디오
이이남스튜디오

옛 신광약품 건물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는 갤러리 카페로 꾸며진 만큼, 전시 외에도 스튜디오 곳곳에 상시적으로 이이남 작가의 영상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건물 1층에는 대형 유리창이 마련돼 야외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공간이 구성돼있다. 2층에는 이 작가가 그동안 모은 도록 등 예술 관련 서적이 꽂힌 도서관 형태의 공간과 사무실 등으로 구성됐다.

이이남스튜디오

사람들이 교류, 소통할 수 있는 코워킹스페이스 등이 군데군데 마련돼 있고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천장이 유리로 돼 있어 자연 채광이 잘 들어오게 설계된 것도 특징이다. 각 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이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와 이이남 작가의 조각 ‘예수’를 감싸는 형태로 돼 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든 뒤 정원이 있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시를 통해 받은 감동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갖는 시간이기도 했고, 예술작품을 실제로 감상하면서 받는 감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맑은 날씨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부터 양림동까지 걸으며 자연과 예술을 한껏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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