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에서 여순10·19,
다시 5·18 광주로

제주 4·3 순회전시 <동백이 피엄수다>

이슈&뷰
동백이 피엄수다 전시개막식  (2022.04.12)
동백이 피엄수다 전시개막식 (2022.04.12)

지난 2021년은 70여 년간 묻혀있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인 제주4·3사건과 여순항쟁에 대한 진실을 밝힐 법적 장치가 마련된 기념비적인 해이다.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21.02.26, 12.09.) 되었고,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21.06.29.)되었다. 비로소 제주4·3과 여순항쟁의 슬픈 역사가 긴 겨울을 버텨내고 봄을 맞는 듯하다. 그리고 늦었지만 마침내 찾아온 제주4·3과 여순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우리도 마주할 시간이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은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4·3전시의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4·3은 오랜 세월 진실이 밝혀져서는 안 되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2018년 제주4·3의 잘못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전시를 통해 그들만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를 향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4370+4 동백이 피엄수다>는 우리가 마주해야만 하는 제주4·3과 이의 형제인 여순항쟁의 가려져 있던 역사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 4·3 순회전시 〈동백이 피엄수다〉

<4370+4 동백이 피엄수다>는 지난 2018년 제주4·3 70주년(4370) 당시 광화문에서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를 외친 이래 네 번째 봄임을, 또 겨울을 지나 4·3의 봄이 오고 있음을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4·3 제74주년을 맞아 전국 5개 도시에서 180여 일간 진행되며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20대 작가부터 50대 작가까지 11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제주4·3과 여순항쟁 관련 작품 총 111점을 소개한다. 당시에 희생된 수많은 영령과 남겨진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료하고자 기획되었으며, 해방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 폭력과 이에 저항한 민중의 모습들을 살펴보고 인권 유린의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제주4·3과 여순항쟁에 대한 글, 사진·영상 자료들이 아카이빙 되어있다. 정부의 기록물과 관보, 미군이 당시 작성한 보안 문서들, 외국 언론 기사, 진실을 밝히기 위한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노력 등을 통해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던 진실에 대해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슬픔이란 대체로 눈물로 한숨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4·3의 슬픔은 눈물로도 필설로도 다 할 수 없다. 그 사태를 겪은 사람들은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다.

- 소설가 현기영, 『목마른 신들』 중에서

기록들이 참혹했던 역사의 슬픔과 눈물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4·3과 여순의 국가폭력과 이에 저항한 민중의 짓밟힌 인권에 대한 흔적들을 통해 아주 희미하게나마 당시를 떠올리고 우리가 이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 안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11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제주4·3의 진실과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현아선 작가는 4·3 현장을 다니며 각인된 고통스러운 역사를 한 줄 한 줄 연필화로 표현했다. 작가의 말처럼 과거의 일들을 작품에 꺼내어놓는 것이 어떠하였을지, 작품 속에서 느껴졌다. 대물림 되는 풀리지 않는 분노와 슬픔의 무게, 눈이 없는 가해자들의 표정, 폐허가 된 곳에서 울부짖는 죽은 이들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연필 자국 속에서 꾹꾹 눌린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제주 4·3 순회전시 〈동백이 피엄수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재근 작가는 4·3당시 수많은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대전 골령골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린다. 1950년 6.25전쟁 이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등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끌려와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처형돼 묻힌 비극의 현장이며 확인된 골령골 피해자 명단 500명 중 300여 명이 제주4·3사건의 피해자이다. 쏟아진 듯 쌓여지고 분리된 뼈들을 보고 있자니 과거 그 사건과 분리되지 않는 현재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피난」이찬효 作
「피난」이찬효 作

맞은편에는 여수에서 활동하는 이찬효 작가의 ‘피난’이라는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있는 이 공간이 죽음과 슬픔을 넘어 성스러운 곳이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가까이 가니 군상들의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 들릴 것 같았다. 조각을 보는 우리들이 외면할 수 없는 과거의 진실을 여러 조각 작품으로 표현된 작품은 지나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강하게 붙잡는다.

「동네형 참암이형」박금만 作
「동네형 참암이형」박금만 作

박금만 작가는 여순항쟁의 진실을 파헤치며 알게 된 진실을 역사화로 그려 냈다. 여순항쟁의 유가족이기도 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역사의 윤회를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고, 제대로 알아야만 평화롭고 자유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멀리서 봤을 때는 언뜻 일상적인 모습처럼 보였던 그림들이 가까이 갔을 때는 비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동백」박성태 作
「동백」박성태 作

박성태 작가는 당시 14연대 군인들이 출병을 거부하고 떠났던 여순항쟁의 길을 흑백 사진으로 표현했다. 사진 안에 남겨진 그림자, 지금은 차로 다닐 수 있는 마래터널 안의 암흑, 흐드러지게 떨어진 동백꽃의 사진 등에서 현재의 사진 속에 우리가 알아야만 보이는 것들을 말하는 듯하였다.

「제주는 비에 젖지 않는다」정기엽 作
「제주는 비에 젖지 않는다」정기엽 作

정기엽 작가는 공권력에 의해 한마을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아픔을 안개와 영상, 사운드로 말한다. ‘제주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제목처럼 제주는 여전히 아픔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작가가 방문한 제주공항에서부터 잃어버린 마을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5분 정도의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냉정체제와 한반도」이수진 作
「냉정체제와 한반도」이수진 作
「백비」이수진 作
「백비」이수진 作

이수진 작가는 민중 삶의 주식인 보리줄기로 해방부터 진실을 밝히는 70여 년의 이야기를 제주에서 자란 보리와 흙으로 보여준다. 보릿대의 아름다운 결과 은은하면서도 강렬함이 느껴지는 색감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 역사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시대를 통찰하여 작품에 반영하는 올곧은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수많은 총구들 위의 동백꽃과 삶과 죽음이 새겨진 발자국을 지나 전시 리플릿에 실린 작품인 ‘백비’ 앞에 섰다. 이 비석은 세워져있지도 않고 아무런 글도 새겨져있지 않다. 이 백비에 새겨져야 할 단어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 시대, 시간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작품이었다.

4월의 제주 동백이 5월의 광주 이팝을 찾아왔다.

동백꽃은 제주4·3을 상징하는 꽃이다. 동백꽃은 다른 꽃과 달리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고 꽃 전체가 떨어진다. 이 모습이 희생자들과 유사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에서 제주4·3을 상징한다. 반면 이팝나무는 5월 광주의 상징이다. 5월이면 광주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가로수가 이팝나무다. 흰 꽃이 나무를 덮을 때 마치 흰색 쌀밥처럼 보여 이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1980년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시민들, 또 시민 군을 위해 먹을 것을 아낌없이 주먹밥을 만들어 내놓았던 시민들과 닮아 이팝나무는 광주의 5월을 상징한다. 역사가 기억하지 못해 더욱 차가운 땅에 머물러야 했던 제주4·3이 주먹밥을 나누면서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5월의 광주에 머물며 그들의 이야기를 광주 시민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수잔 손탁, 『타인의 고통』, p.223.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수잔 손탁의 말이다. 이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되는 <4370+4 동백이 피엄수다>는 그녀의 말처럼 제주4·3에서 여순10·19로, 다시 광주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비극이 현재와 무관한 일이 아님을,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또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보여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임을 조용하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 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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