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남긴 메시지-억압 속에 눌린 셔터’

5·18민주화운동 42주년 및 6월항쟁 35주년 기념 공동 기획전시

그들이 남긴 메시지, 1980년을 되짚다.

오월, 이맘때가 되면 광주 곳곳에서는 미술과 공연, 문학 할 것 없이 오월영령을 기리는 행사가 펼쳐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지난 5월 3일 개막해 오는 7월 26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 6관에서 기획전 ‘그들이 남긴 메시지-억압 속에 눌린 셔터’가 열리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5·18민주화운동 42주년과 6월항쟁 35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피해 찾은 이곳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한 과정인 5·18부터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1990년대 한국 현대사를 사진과 육필 성명서, 취재수첩, 구술 등의 아카이브를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기획전 ‘그들이 남긴 메시지-억압 속에 눌린 셔터’
기획전 ‘그들이 남긴 메시지-억압 속에 눌린 셔터’
타임라인별로 정리된 사진들

특히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온 독특한 전시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필름을 연상하게 하는 입간판이 맞아주고, 필름을 따라 거닐다 보면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인 전남대학교 정문에 들어서게 된다. 이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된, 국가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했던 가톨릭센터, 마지막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의 분수대에까지 다다른다. 오월영령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밟았을 뜻 깊은 곳들을 시간여행 하듯 감상할 수 있다.

민족·민주화성회 동참을 위해 행진하는 50여 명의 전남대 교수들과 학생들, 1980.05.14. / 주인을 잃은 거리의 신발들, 1980.05.15. /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민족·민주화성회 횃불시위의 모습, 1980.05.16.
민족·민주화성회 동참을 위해 행진하는 50여 명의 전남대 교수들과 학생들, 1980.05.14. 나경택 作
주인을 잃은 거리의 신발들, 1980.05.15. 나경택 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민족·민주화성회 횃불시위의 모습, 1980.05.16., 나경택 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 사진기자였던 나경택씨가 찍은 사진들이었다. 머리에 띠를 두른 엄청난 인파로 가득한 전남대, ‘비상계엄 즉각 해제하라’라는 글귀가 쓰인 현수막을 양쪽에서 잡아들고 전남대 밖으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과 이를 막고 대치중인 군인들의 뒷모습, 무고한 희생을 두고만 볼 수 없어 양복을 입은 채 거리로 나선 교수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찬 금남로 일대,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 등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를 향한 사람들의 꺾을 수 없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금남로에서 공수부대로부터 진압봉으로 폭행을 당하는 학생, 장갑차를 앞세우고 진압에 투입되고 있는 계엄군 행렬, 착검한 M16자동소총을 메고 시민의 손을 결박한 상태로 연행하는 계엄군, 금남로 상공을 비행하면서 시민들에게 시위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을 하고 있는 헬기, 옛 무등극장 골목에서 시민군들을 위해 길에서 밥을 짓는 여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계엄군의 탱크와 헬기, 시민들의 시신 사이에서 계엄군에게 포박당한 생존자, 전남도청 진압작전으로 인해 희생된 시민군들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진 상황, 병원에 안치됐던 시신들이 전남도청으로 운반된 모습,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도청으로 모인 시민들, 이같은 상황을 촬영하는 외신 기자들 등의 모습도 담겼다. 이후 구 묘역에서 간속하게 치러진 장례식에서 울부짖는 사람들 등 1980년 5월 당시 민주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준 사람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또 전남대 방송국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했던 조규백씨가 촬영한 영상도 볼 수 있었다. 헤드셋을 쓰면 1980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5·18민주광장에서 펼쳐졌던 민족민주화성회의 함성, 박관현 열사의 육성도 나왔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발굴한 미공개 영상도 선보인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보기 힘들었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복원된 것이다. 여기에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광주지역 길을 막은 계엄군의 모습과 화물트럭을 타고 이동하려는 기자들, 불에 탄 차들이 찍혔다.

「이한열 열사 노제 당시 금남로까지의 행진」 1987.07.09. 김양배 作
「이한열 열사 노제 당시 금남로까지의 행진」 1987.07.09. 김양배 作

1980년 당시 광주기독병원 내과 의사였던 조상기씨가 병원에 숨어 직접 찍은 사진과 1987년 6월 항쟁 당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었던 김양배 전남일보 사진부장의 사진, 정태원 전 로이터기자 등이 남긴 사진, 당시 학생이었던 조규백 전남대 학생 기자의 취재수첩과 조성호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가 열흘간의 광주 상황과 시민공동체의 모습을 쓴 메모,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 들어간 한편, 23일부터 27일까지 광주 뿐만 아니라 목포에서의 민주화 움직임을 포착한 외국기자 노먼소프의 사진 등 시민들의 투쟁 현장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기록으로 남긴 사진 등도 선보였다.

「전경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어르신」 1988.06.10. 김양배 作
「전경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어르신」 1988.06.10. 김양배 作
「노태우 퇴진본부 선포식 당시 전남대 후문에서 최루탄을 피해 도망가는 시위대」 1989.04.27. 김양배 作
「노태우 퇴진본부 선포식 당시 전남대 후문에서 최루탄을 피해 도망가는 시위대」 1989.04.27. 김양배 作

아울러 1980년 이후 5·18민주화운동을 은폐하려는 전두환 정권의 만행과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 진실을 향한 시민들의 움직임, 매해 5월을 기록한 모습 등도 걸렸다. 그러면서 1987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움직임, 6월항쟁까지 다뤄졌다. 영화 ‘1987’에서 나온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현장과 사건 은폐로 반민주적 정부에 대한 전 국민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는 실제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제가 살아있는 한, 말을 할 수 있는 한 5·18의 진실을 위해
전국, 외국을 다니면서 알릴 계획입니다. 진실을 밝힐 겁니다."

- 나경택 -

"누군가 이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금남로를 잘 나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민주투사다’ 했던 분들은 별로 없었죠."

- 조상기 -

"돌멩이와 화염병, 구호를 외치는 대신 한 컷 사진으로 대신한다는 신념으로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 김양배 -

"피투성이 현장, 가족들의 울부짖음, 통곡이 엉켜가지고 그날 그 충격적인 장면이 영 잊히지를 않아요."

- 조성호 -

이외에도 전시장 한 켠에 5·18민주화운동 자료 검색대가 마련돼 있었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이 작성한 5·18민주화운동 자료와 군사법기관의 재판자료 및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자료, 시민들의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흑백필름과 사진, 증언 자료,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 기록, 국회 5·18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피해자 보상자료,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어 유익했다.

전시장 끝에는 당시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그날의 기억과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은 영상도 상영돼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날을 기억하며 미래의 유산인 민주 평화를 위해 시민들이 메시지를 적어보는 공간도 있었다. 거기에는 ‘5·18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당연시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기억하겠습니다’, ‘갈등이 폭력으로 표현되지 않는 우리가 세상을 이끌기를…’ 등 사람들이 꾹꾹 눌러쓴 글귀가 빼곡했다.

기획전 ‘그들이 남긴 메시지-억압 속에 눌린 셔터’
기획전 ‘그들이 남긴 메시지-억압 속에 눌린 셔터’

전시를 통해 시민과 기자, 학생 신분으로 민주화 열망을 생생하게 기록한 이들의 흔적을 감상하니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새롭게 느껴졌다.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에 두 다리를 디디고 서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매일 마주하던 옛 전남도청 건물과 전일빌딩245,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전시를 통해 제각각으로 인식했던 이 장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무차별적 폭력을 맞닥뜨린 시민들의 당혹감과 고통이 당시를 담은 자료들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같은 참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함을 절감했다.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들처럼 현재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가 그날을 잊지 않아야 할 이유일 터다.





by 김태영
kty_001@daum.net
사진
ACC,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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