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나는 아시아 문학 : 아시아의 끝나지 않은 전쟁

2022 제 4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사전행사

오키나와를 떠올리면 아주 오래전 스치듯 보았던 드라마의 화면이 떠오른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 위를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이, 특히 빛나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바다가. 맑은 날에는 멀리 대만이 보이는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눈이 시리게 푸르른 이국적인 바다와 하늘, 태양빛에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눈부신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

언제든 바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은 오키나와 바다에는 해변을 둘러 이어지는 군사기지의 행렬이 우리가 떠올리는 오키나와의 이미지에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평화의 섬, 치유의 섬이라고 불리는 오키나와에는 일본 내 미국 군사시설의 70% 이상이 위치하고, 오키나와 제도의 북부에 위치한 얀바루국립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정글 모의 전투 시설이 있어 수많은 미군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향한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오키나와는 미국의 공격으로 오키나와전쟁을 겪으며 미군정 시대를 맞이했고, 미군의 수탈과 베트남전쟁의 군사요충지로 이용된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됐을 때는 1972년이었다. 전쟁과 미군의 지배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자위대기지 및 미군기지의 이동과 함께 오키나와의 군사기지 비율은 더욱 증가했다.

오키나와에는 류큐라는 이름의 왕국이 존재했다. 류큐왕국(1429~1879)은 17세기 초 명과 청, 그리고 일본 본토에서 넘어온 사츠마번(에도막부 1603~1867)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고유의 역사를 지켜왔으나 1879년 류큐왕국이 멸망하며 일본제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다. 이는 강의자(곽형덕, 명지대 교수)가 언급한 우치난츄(오키나와인)의 이중의식(‘흑인의 영혼’에 관한 논의에서 처음 등장-W.E.V. 뒤보이스)을 넘은 삼중의식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태평양전쟁, 오키나와전쟁을 거치기 전까지 자랑스러운 일본 신민으로서 대만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키나와전쟁 중 오키나와 민간인 희생자는 9만 명을 넘어섰고(징병으로 참여한 오키나와인 3만 명은 군인으로 민간인 희생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중 일본군에 의한 희생자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일본 신민으로 생각하고, 일본 신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오키나와인들의 몸부림에도 일본에 오키나와는 식민지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이 전쟁을 통해 오키나와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자신들의 이중적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자기비판과 반성의 시작이었다.

# 메도루마슌과 마타요시 에이키로 만나는 오키나와의 두 모습

제4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사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미리 만나는 아시아 문학’의 네 번째 강연에서 곽형덕 명지대 교수는 ‘아시아, 국가폭력을 기억하고 기록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간략한 오키나와 역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오키나와문학이 가지는 독자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연중인 곽형덕 명지대 교수

오키나와문학의 전환점이라고 평가되는 1995년의 사건과 이를 바라보는 두 작가의 각기 다른 시선을 알 수 있었던 이날 강연에서 곽형덕 교수는 일본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상(賞)을 수상한 오키나와 출생의 메도루마 슌(目取真俊)의 『무지개 새(2006)』, 마타요시 에이키(又吉榮喜)의 『돼지의 보복(1996)』을 소개했다.

1972년 일본으로 반환된 오키나와는 ‘군사기지의 섬’으로 거듭나며 국가(제국)가 휘두르는 폭력의 최전선에 섰다. 본토와의 차별과 1995년 미군에 의해 12세 소녀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이는 외부(국가)에 의해 ‘평화의 섬’으로 덧씌워진 오키나와 내부의 모순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며 반전, 반기지 운동의 전개와 함께 오키나와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메도루마와 마타요시는 같은 오키나와인이지만 오키나와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각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마타요시 에이키는 『돼지의 보복』에서 오키나와의 전통과 모성에 집중한다. 돼지는 오키나와에서 신(神)으로 여겨지는데, 오키나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음으로써 스스로를 정화하고 치유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돼지를 보고 혼(魂)을 떨군 사람들이 다시 혼을 몸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섬으로 향하고 오키나와 풍장(風葬)의 모습과 함께 전통을 통한 ‘치유’를 이야기한다.

메도루마의 『무지개 새』는 ‘치유’보다 ‘보복’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두 명은 폭력의 기억을 갖고 있다. 둘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던 절대적 폭력에 순응하며 폭력 속에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작가는 소설에서 1995년의 소녀 폭행사건과 그에 대응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모습, 그리고 폭력의 절대성에 무릎 꿇은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오키나와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순응보다 ‘폭력’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방식을 통해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어두운 통쾌함을 선사한다.

마타요시가 오키나와의 전통을 통한 ‘치유’에 집중했다면, 메도루마는 작품을 통해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를 ‘보복’하고자 했다. 실제로 메도루마는 작가 활동보다도 적극적인 반기지 활동가로서 외부인들이 오키나와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미군의 철수, 기지 추가 건설 반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제4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을 앞두고

오늘날 아시아가 어디에 있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문학 행사인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2017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18년부터 격년 가을에 진행되며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한 3회를 거쳐 2022년 10월 제4회를 맞이한다.

‘미리 만나는 아시아 문학’은 6월 9일부터 9월 29일까지 ACC와 전남대, 조선대 등에서 개최되는 사전행사로 강좌·대담·작가와의 만남 등 7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를 겪고 재해석되는 아시아의 근대, 질병, 재난과 이산, 국가폭력, 차별과 혐오 등의 문제를 아시아적 시각으로 접근해 다양한 문학적 주제로 풀어낸다.

지난 6월 9일 소설가 김남일이 ACC 문화 정보원에서 ‘동아시아의 작가들이 처음 만난 근대의 얼굴’을 주제로 강좌의 문을 열었으며, 일본의 소설가 나쓰매 소세키가 바라본 런던 풍경을 비롯해 루쉰의 센다이, 이광수의 도쿄, 염상섭의 서울 등 동아시아 작가가 마주했던 근대 도시의 모습을 집중 소개했다.

6월 23일 조선대에서는 소설가 심윤경‘인류가 마주친 폭력과 갈등의 맨얼굴: 동유럽 작가들의 목소리’를 주제로, 안드레이 쿠르코프(우크라이나) 『펭귄의 우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시)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헤르타 뮐러(루마니아, 독일)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등 동유럽 작가들의 고뇌에 찬 내면세계를 풀어냈다.

2회차 강연 진행 중인 심윤경 소설가

7월 7일에는 ‘질병을 제압하는 중국의 방식’을 주제로 목포대 신정호 교수가 루쉰의 『약』, 옌렌커 『딩씨 마을의 꿈』, 진런순 『물가의 아드린느』 등의 소설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질병을 대하는 독특한 방식에 대한 강좌를 진행해, 코로나19를 대하는 현시대 중국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회차 강연 진행하는 신정호 교수

7월 21일 진행된 네 번째 강좌를 지나, 오는 8월 25일에는 동아대 손석주 교수의 ‘마술적 사실주의로 풀어내는 인도네시아의 현대사 그리고 알빈 팡의 시’가 ACC 문화정보원 B4F 강의실1에서 진행된다. 인도네시아 에카 쿠르니아완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호랑이 남자』와 싱가포르의 알빈 팡의 시로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의 현대사를 구성지게 풀어낼 예정이다.

여섯 번째 프로그램은 조국을 떠나 이주민의 삶을 살아온 재일 시인 김시종의 시세계를, 고재종 시인과 고명철 문학평론가가 ‘경계를 넘는 언어와 의식’이라는 주제로 대담 형식으로 엮어 나간다. 김시종 시인의 『잃어버린 계절을 찾아서』, 『광주 시편』을 길잡이로 한 대담은 오는 9월 15일 오후 4시 전남대학교 인문대1호관 김남주홀에서 진행된다.

6월부터 시작된 사전행사는 9월 29일 ACC 문화교육동 강의실1에서 채희윤 소설가가 진행하는 작가와 만남으로 3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독자들과 함께 하는 아시아 문학’은 지난 강좌를 통해 만나 본 아시아 작가들과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아시아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남은 세 번의 제4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사전행사에 참여해 보길 권하며, 자세한 내용은 ACC 누리집(www.acc.go.kr)을 참고하기 바란다.





by 임우정
larnian_@naver.com
사진
ACC제공
문화 전쟁 교육 아시아 역사
2022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10여 년 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비싼 관람료와 엄청난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즈를 즐기는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또 절대 일어나서 춤추지 않을 것 같은 사람마저 일어나게 만드는 현장의 뜨거운 열기 또한 더욱 그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했다. 이제 광주에서도 돗자리 깔고 앉아서 월드뮤직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이 매년 열리고 있다. 극장2 실내무대(월드 스테이지)에서 열리는 2개의 실내공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신기술기반 콘텐츠 랩 창제작 워크숍
21세기 우리는 새로운 매체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확산되기 시작한 이후 나타난 변화는 기존의 역사 속에 기재되어 있는 기술적 발명과는 새로운 차원이다. 우리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 그리고 확산과 함께 그것이 기술 이상의 무엇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그것은 새로운 문화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간의 삶도 변화시켰다.
<지구의 시간> × 요가 워크숍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은 필자에게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초현실주의 작품 속과 같은 곳이다. 이번에 참여한 <지구의 시간> ✕ 요가 워크숍이 그러했다. ACC는 종종 방문하는 곳이지만 <지구의 시간> ✕ 요가 워크숍을 통해 필자는 또 다른 ACC를 만났다.
ACC 입주작가, 연구·창작활동 본격 시작
2019년 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인류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가 이길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행동했다. 그리고 2020년 9월 현재,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펜데믹 상황을 겪으며 인류가 패배했음을 느꼈다. 처음 등장한 바이러스에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함락당하기 시작했고 처음엔 도시가, 다음에는 나라가, 그리고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처음 마주친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대처했다.
‘반디산책’ 도심에서 청정세상을 꿈꾸다
‘반디산책’. 이름이 좋다. 네온과 전광판, 자동차 불빛 현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반디를 벗 삼아 산책을 즐긴다는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이 맑아진다. 이 도시의 심장부인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원에서 반디를 만난다는 상상이다.
마디와 매듭
한 달에 두 번 일 년에 스물네 번 태양이 지나는 시간 간격에 따라 구분된 절기(節氣). 농경사회 동아시아인에게 꼭 필요했던 농사력(農事曆)으로 불리는 24절기는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인간의 삶과 지혜가 공존하는 시간의 매듭이다.
《반디산책: 지구와 화해하는 발걸음》 프리뷰
늦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시작될 때, 풀벌레 소리와 함께 산책하며 미디어 작품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산책하면서 즐길 수 있는 2022 ACC 미디어파사드 <반디산책 : 지구와 화해하는 발걸음> 전시가 ACC 일대에서 열린다.
<키자니아 Go! 광주>
아이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날려 줄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Kidzania)가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28일까지 한 달 동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에서 펼쳐졌다. 직업 탐색 놀이공간이자 환상의 세계인 키자니아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된 도시공간으로 체험의 몰입감과 생생함을 더했다.
ACC 융복합 문화예술의 관찰과 협업:
예술의 창의성과 주도성
고유 콘텐츠를 활용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인증받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최근 광주지역 초·중등 교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제2차 특수분야 직무연수 ‘ACC 융복합 문화예술의 관찰과 협업: 예술의 창의성과 주도성’을 소개한다.
함께 만나는 아시아의 시
지난 8월 11일,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ACC 예술극장을 찾았다. 8월 4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는 여름방학을 맞이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시아의 다섯 나라, 여섯 명의 시인을, 각 시인이 살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 문화, 그들의 시세계 등을 낭송, 음악, 연극, 영상 등으로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내가 ACC에서 만난 시인은 ‘몽골 대표 시인’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Damdinsuren Uriankjai)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