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산책’ 도심에서 청정세상을 꿈꾸다

2022 ACC 미디어 파사드

‘반디산책’. 이름이 좋다. 네온과 전광판, 자동차 불빛 현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반디를 벗 삼아 산책을 즐긴다는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이 맑아진다. 이 도시의 심장부인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원에서 반디를 만난다는 상상이다.

‘반디산책, 지구와 화해하는 발걸음’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올해 콘텐츠의 테마로 삼은 ‘자연 그대로’를 전당의 크고 작은 공간들에 미디어아트로 펼쳐놓는 기획이다. “인류세의 어제, 오늘, 내일을 조망하며 지구의 풍요로웠던 생태계를 기억하고, 현재의 지구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탄소중립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다져보는 야외 전시”라 한다. 광주와 한국 작가를 포함해 중국, 일본, 싱가포르, 독일 출신 16작가(팀)의 27점으로 꾸며졌다.

‘기억’하고 ‘실천’하고 ‘준비’하자는 3부로 나뉜 구성은 각각 ‘사라지는 것 지키기’, ‘즐겁게 선택한 불편함’, ‘미래 자연과 친구하기’라는 계몽적 부제들로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개발 우선과 풍요의 충격적인 뒷감당, 그 대가의 정도와 위기의식을 더해가는 기후변화 이상징후들의 원인과 공동 대응책, 희망하는 앞날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당사자들로서의 인식과 의지를 새롭게 다잡자는 기획이다.

과제설정에 따라 전시의 구성은 시간대별로 구분되지만 어떤 하나를 통하더라도 주제의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ACC의 크고 작은 야외 공간들에 배치된 작품들을 따라 산책하다가 감상하다가 쉬다가 하다 보면 애써 구성을 맞춰가며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ACC의 동서축으로 연결되는 작품들을 따라 남이든 북이든 어느 쪽부터 시작하든 상관없이, 영상작품들이 많으니 느긋하게 반디산책을 즐겨야겠지만, 전시기간이 여유 있으니 몇 차례 나눠봐도 괜찮을 것 같다. 선선한 초가을 초저녁의 전당 산책길에서 만난 몇 작품을 소개해 본다.

이병찬, <크리처>, 2022, LED 조명, 비닐, 필름지, 에어모터, 폴리에틸렌필름

ACC 창조원 뒤편에 있는 영상복합문화관 옥상의 ‘뷰폴리’(View Folly)에 올라 노을 속에 하나 들씩 별무리들이 내려 깔리기 시작하는 도시의 야경을 즐긴다. ‘반디산책’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8시쯤에 하늘공원으로 걸음을 옮겨 현장 행사안내소에서 잠시 대략적인 전시구성과 작품 위치들을 파악하고 산책을 시작한다.

널따란 풀밭 한가운데 홀로 앉아있는 레이 레이의 <펑크 룩>은 조명이 내장되어 밝고 귀여운 모습이 포토존 역할을 하는데, 작가의 피노키오 소재 동화 속 주인공 캐릭터가 에어조형물로 나들이 나와 있다. 그 하늘공원 앞 전당의 동편 지상부와 지하부를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와 입구 미디어큐브를 연결하는 김을지로의 <입체 프리파레트>는 식물의 자양분 되어 줄기를 타고 이동하듯, 흐드러지는 봄꽃에 실려 흩날리듯, 폭포에 휩싸여 순간이동을 하듯 환상경을 즐기게 한다.

레이 레이, <펑크 룩>, 2022, 섬유 소조

도시의 불빛 소음과는 별개 세상인 전당 지하부로 내려가면 100여m에 이르는 소방도로 바닥의 투사영상 작품들이 색다른 공간으로 환치시킨다. 길고 비스듬한 경사로가 스크린이 된 이곳에는 이조흠의 <길다란 지구, 픽토그램 정글>, 정혜정의 <끝섬>, 찰스 림 이 용 <샌드위치>, 최지이 <마못의 날 : 풍수 토니 필의 일주일>, 디지털 세로토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임용현 <화석이 될 수 없어>, 카입×이슬비×이지현의 <카본클럭@ACC> 등이 연속으로 상영된다.

지구 환경생태에 관한 생각이나 메시지들 각자의 뉴미디어영상 언어로 풀어내는 이들 작품 가운데 서 있으면 나 또한 무수한 돌멩이 중 하나로 뒹굴거나 꽃 무더기와 글자들과 물속 어류들의 일부로 휩쓸리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혜정, <끝섬(VER.2)>, 2022, 디지털 3D 애니메이션, 프로젝션 매핑, 컬러, 사운드

소방도로 옆 배롱나무 숲에는 얼마 전 역대급 태풍에 남은 꽃들마저 대부분 털려버린 백일홍 꽃 대신 큼직한 조명내장 무궁화꽃 무리들인 최지이의 <인간의 순교>가 삶의 진정한 가치와 숭고한 희생의 의미를 담은 묵언의 빛을 밝히고 있다. 이곳 가까이 데크 계단 위쪽 열린 마당에는 야노베 켄지의 <함재묘>가 전당 동편 출입부를 지키고 있다. 붉은색 벽사수호 복장에 잠수헬멧 같은 보호구를 쓴 채 오염에 찌든 세상의 지킴이이자 신세계의 탐험자로 감각을 곧추세우고 있는 듯하다.

최지이, <인간의 순교>, 2022, 폴리카보네이트 카빙 후 성형, 조명, 시멘트, 혼합매체

어둠으로 적막한 창조원 앞 숲과 나비정원 쪽에서는 증강현실 가상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카입, 이슬비, 이지현 세 작가의 공동작업인 <카본 클럭@ACC>이다. 현장 안내표지에 따라 앱을 통해 10개 질문에 답을 하면 탄소 배출량이 계산되어 낯선 가상공간들과 탄소중립사회로 전환까지 남은 시간을 타임캡슐처럼 느껴보게 된다.

넓게 트인 아시아문화광장에는 이국적인 장막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준비된 의자나 침상에 편하게 앉거나 누워 미디어월을 감상할 수 있다. 민주평화교류원 뒷벽에 설치된 거대한 멀티미디어 스크린에는 성실화랑의 <멸종위기동물>, 찰스 림 이 용 <거기 있었던 것들을 위한 외로운 콘서트>, 정혜정 <반의 반의 반 세계>, 에이에이비비 <바벨×바벨Ⅱ>, 장종완 <내가 돌아오는 날 그는 떠났다>, 디지털 세로토닌 <뉴월드?Ⅱ>, 김을지로 <고사리 걸음>, 레이 레이 <우주목화> 등이 짧은 것은 30초, 길 것은 5분 정도로 연속 상영된다. 동화형식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아카이브, 우화 같은 연출영상, SF영상 같은 고해상 3D 프로그램을 통해 훼손되고 희생되고 변이를 일으키며 인간세의 그늘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와 동식물과 전자문명시대 갖가지 현상들을 비춰낸다.

디지털 세로토닌, <뉴 월드? II>, 2022, 데이터 시각화 영상,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분

어린이문화원 앞 나무 그늘 아래에는 성실화랑의 <멸종위기 그래픽아카이브상>들이 십이지상들처럼 둘러서 있다. 사막여우, 수리부엉이, 인도들소, 통킹들창코 원숭이, 해달 등의 흉상인데, 멸종되고 사라져 가는 동물들의 영정 초상처럼 제작된 강화플라스틱 조각상들이다. 그 옆 어린이문화원 입구의 층고 높은 회랑공간에는 거대하고 괴이한 생명체 모양의 이병찬 작품 <크리처>가 설치되어 있다. 일회용 비닐과 포장용 플라스틱 등으로 변이된 유기체를 만들고 에어 모터로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는 섬찟한 괴생명체 형상을 통해 현대사회와 도시가 만들어 낸 생태계의 위기상황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성실화랑,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 사막 여우, 수리부엉이, 인도들소, 통킹들창코원숭이, 해달>, 2022, 섬유 강화 플라스틱, 아크릴

마지막으로 지상부로 올라와 상상마당에 이르면 엄아롱의 <움직임의 징후>가 전당과 도심 일상에 접점을 만들어준다. 경계에 매이지 않는 새와 재개발지구에 버려진 동식물들, 폐기물들을 콘크리트 주춧돌 위 기둥에 열거하여 도시 삶의 단편들과 이주 또는 이동에 관한 사회적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엄아롱, <움직임의 징후>, 2022, 철, 콘크리트, 스테인리스 스틸, UV인쇄

ACC는 번화가나 젊음의 거리와 연접해 있으면서도 도심 속 별개의 섬이 되고 있다. ‘반디산책’은 저녁시간이면 적막이 더해지는 이 공간에 현대사회와 자연과 예술을 융합시킨 미디어아트로 전당의 야간문화를 찾아가는 시도라고 본다. 혼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잠시 몇 걸음 옮기면 청정자연의 상징인 반디를 상상하며 휴식과 자기 치유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지구환경, 생태 변이, 기후위기 같은 마음 편한 내용은 아니지만, 서로의 관심과 실천 의지를 모아 인류 공동의 현안 과제를 풀어가자는데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by 조인호
gwangjuart@naver.com
사진
ACC제공
예술 전시 미술 광주광역시
<사랑과 평화(Love&Peace)>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사랑과 평화(Love&Peace)’라는 주제로 문화축제를 마련했다. 10월 7일부터 23일까지 아시아문화광장 일대에서 선보이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즐기면서 공동체 상생을 모색하는 자리를 펼친 것.
<마이크로 유토피아>
우리나라의 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바둑 대결이 이뤄지며 우리는 순식간에 AI라는 단어에 익숙해졌고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에 관심을 가졌다. 거기에 기술의 발전에 맞춰 요즘 아이들 교육에서 코딩은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로 급부상했다. AI의 학습 능력을 넘어 창의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진행되며, 창의성, 창조의 문제는 그동안 인간 고유의 기술이며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되었던 것이,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창의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말 인간만이 창의성을 갖는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좀비주의(Attention! Zombies)》 & 작가 인터뷰
과거 서구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좀비는 오늘날 ‘K좀비’라고 불릴 만큼 대중화되고 있다. 과거, 일부 사람들의 흥밋거리였던 좀비물이 최근 들어 왜 사람들의 폭넓은 관심을 받게 된 걸까?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좀비는, 보다 더 사람 같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로서 좀비의 개별 서사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좀비와 다르다.
<Brand New Asia>
아시아 도시 간 문화교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는 아시아 청년 예술 페스티벌 이 10월 24일부터 3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아시아 문화공동체 구축을 통해 아시아 청년 예술인들과 지역 예술단체의 성장, 국제문화교류의 새로운 모델 제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활성화, 아시아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써 광주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네 가지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 이번 행사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연대'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은 크게 아시아 청년 예술 캠프 <터닝 포인트>, 예술 난장 <콜렉티브 아시아>, <아시아 미래 사회 청년 포럼>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아시아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ACC 창제작 어린이 공연 가족 음악극 <나무의 아이> &
ACC 어린이극장 공동 기획 국악 뮤지컬 <깨비 친구 삽살이>
큰 도로에서도 꼬불꼬불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두메산골.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오르면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상수리나무였는지 느티나무였는지, 이름은 모르겠으나 두 팔을 한껏 벌려 안아도 손이 닿지 않던 크고 우람한 나무였다. 동네 아이들은 늘 그 나무 둘레에서 함께 놀았다. 그네도 타고, 자치기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나무줄기에 매여있던 그네에 올라타면 작은 동네는 더 작아지고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훌쩍 날아올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드폰도 게임도 없던 시절, 온 동네 아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반겨주던 나무 한 그루. 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을 뿐인데 나무 아래 머무는 시간 동안 넉넉하고 포근한 보살핌을 받았던 것 같다.
알록달록 ACC 산책
알록달록 색들이 춤을 추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 가을이다! 파랗고 청량한 여름의 컬러를 뒤로하고 이제 빨강, 노랑, 초록의 다양한 색들이 춤을 추는 가을의 색을 만끽할 시간이다. 그중 가을의 색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산책이 아닐까 싶다. 색으로 둘러싸인 가을 길을 걸으며 선선해진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산책이야말로 가을의 지금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여성, 삶, 그리고 자유를 위한 멈추지 않는 이란의 시민운동
거리에서 춤을 추기 위해/키스하기 두려워서/내 여동생을 위해, 당신의 여동생을 위해, 우리의 누이를 위해/빈곤을 위해/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을 위해/쓰레기 줍는 아이와 그의 꿈을 위해/부패한 경제를 위해/오염된 공기를 위해/ValiAsr거리의 시든 나무를 위해/웃는 얼굴을 위해/학생들을 위해/미래를 위해/이 강요된 천국을 위해/수감된 지식인들을 위해/이민 온 아프간 아이들을 위해/공허한 슬로건을 위해 /평화를 위해/긴 밤 뒤에 떠오르는 태양을 위해/ 신경안정제와 불면증 약을 위해/남성, 조국, 번영을 위해/소년이 되고 싶었던 소녀를 위해/여성, 생명, 자유
중장기 발전계획 발표식
돌 속에 건축 작품이 있고, 목재 속에 조각 작품이 있고, 색채 속에 회화가 있고, 소리 속에 언어 작품이, 소음 속에도 음악 작품이 있다. 예술작품은 단순한 사물 자체와는 별개의 것이고, 사물 속에 다른 것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Allegorie)나 상징(Symbol)이라 일컬어진다.
<찾아라! 애니메이션 친구들>
광주 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광주를 대표하는 수식어로서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자유롭게 교류하고 소통하는 문화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국가 문화 프로젝트의 명칭이다. 문화와 창의력이 국가 발전의 성장 동력이자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대에 어쩌면 국가의 미래를 견인할 수도 있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 광주를 중심으로 키워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스몰리와 ACC의 유쾌한 만남
지난 7월 ACC에서 미스몰리가 홍보 동영상을 촬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촬영 예정일은 8월 1일 월요일, ACC의 휴관 일에 맞춰 진행 예정이었던 촬영은 비 소식으로 9월 5일로 연기됐다. 잠깐의 비 소식이었지만 미스몰리를 만나는 날은 한 달 뒤로 미뤄졌고 아쉬움 속에서 그들과 만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9월 초, 한국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할 거라는 태풍이 다가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