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볼 수 있는 음악 - 움직이는 추상

< ACC 인문강좌 > 하반기 프로그램

K-pop부터 K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 열기가 뜨겁다. 세계 곳곳에서 K팝을 들으며 한국 댄스를 따라 추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는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문화, 한류 열풍의 시작에는 어쩌면 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에 이미 스스로를 “한국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이라고 표현했던 사람. 그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경계를 허무는 행위예술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이 정도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 백남준.

2022년은 백남준이 작고한 지 16년이 되고 태어난 지 90주년이 되는 해다.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국내외 예술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백남준을 회고하는 행사들이 이어졌다. 문화예술 전문가를 초대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탐구하는 ACC 인문강좌에서는 “백남준의 볼 수 있는 음악, 움직이는 추상” 강좌를 진행했다. 백남준 연구가이자 홍익대 미대에 재직 중인 김은지 교수가 백남준의 삶과 예술세계를 열정적으로 펼쳐 보였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작품세계를 완성해낸 예술가 백남준. 그의 이야기는 의외로 미술이 아닌 음악에서 출발한다.

인문강좌 운영 전경 - 강의 중인 김은지 교수님

# 귀로 듣는 음악을 전시하다

“백남준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음악에 심취해서 음악을 전공하셨어요. 남들이 하지 않은 음악, 남들이 이뤄내지 못한 음악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셨고 평생을 음악가로 살면서 비디오 예술과의 접목을 이뤄낸 융합형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 예술의 세 가지 장르인 비디오 영상, 설치, 조각을 완성함으로써 비디오 예술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정을 받게 됐지요.”

-김은지 교수-

1932년, 백남준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서울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하며 음악을 배웠다. 일찍이 쇤베르크의 음악에 매료돼 아방가르드 음악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갔으며, 독일에서 2년 정도 음악을 공부한다. 그러던 중 비디오라는 매체를 만나게 되면서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그가 평생토록 추구해온 새로운 변화와 실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첫 작품이 1963년 독일 부퍼탈이라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선을 보인 “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다.

인문강좌 운영 전경 - 강의 중인 김은지 교수님

제목만으로도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느낌의 이 작품은 ‘귀로 듣는 음악을 보이는 음악으로 전시하고 싶다’는 백남준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의 실험정신이 만나 탄생한 작품이다. 들리는 것을 볼 수 있게 전시하기 위해 백남준은 값비싼 피아노를 망가뜨리는(?) 파격을 시도한다. 피아노의 열두 개 건반에 백남준만의 장치가 이뤄지면서 음악이 우리 눈앞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된다. 솔방울과 양동이, 양은 주전자를 달아놓기도 하고 백열등 전구에 건전지를 부착해서 건반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게도 만든다. 건반을 누르면 멜로디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흔들리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볼 수 있는 음악이 등장하게 된다.

1970년대 들어서 백남준은 기계기술을 이용한 본격적인 비디오 예술의 세계를 열기 시작한다. 일본의 공학도 ‘아베’와의 협업으로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제작한 후 음악과 시각적인 형태를 조합한 다양한 비디오 예술작품을 완성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신시사이저가 더욱 주목받은 것은 최대 7개의 녹화된 영상을 믹싱할 수 있고 서로 상호보완하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그 대표작이 지금도 비디오아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작품 “Global Groove”이다. 이 작품에서도 음악이 시각으로 살아난다. 리듬과 박자와 멜로디가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통해서 동시에 움직임과 색채, 모양의 변화를 이뤄낸다. 지금이야 대단한 기술이 아니지만 50년 전이라는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획기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백남준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추상’으로 이어진다.

# 움직이는 추상을 구현하다

“추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부분 추상을 얘기하면 형태가 없는 것, 난해하고 모호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추상이 형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점 하나도 형태이기 때문에... 예술에서 추상은 더 개성적이고 더 독창적으로 예술가의 고유한 세계를 표현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편화되거나 일반화되지 않은 시각적 자기주장의 결과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 이어지게 되지요.”

-김은지 교수-

백남준의 작품 “Global Groove”에서는 미술사에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받는 움직이는 추상이 구현된다. 7개의 녹화된 영상이 서로 겹치고 합쳐지면서 전혀 알 수 없는 형태로 변화하고 모든 것이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색채 또한 노란색과 보랏빛이 나는 푸른색의 결합으로 색채의 대조를 아름답게 이뤄낸다.

인문강좌 운영 전경 - 강의 중인 김은지 교수님

하지만 1973년에 “Global Groove”가 세상에 나왔을 때 미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30분 정도의 영상에 현란한 음악과 전 세계의 TV 광고가 등장하고 세계 각국의 음악과 춤이 색채, 모양, 형태의 변화하는 작품. 환경과 생태 문제가 예술의 주요 소재였던 당시에 백남준의 작품은 이해받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이었는지 모른다. 백남준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지, 전통의 가치에 근거해서 평가받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백남준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최고 단계는 정지되고 고착되어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매 순간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여겼다. 바로 그가 움직이는 추상으로 구현해낸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십여 년 뒤, 1980년대에 뮤직비디오가 출현하면서 백남준의 작품세계는 새롭게 주목받는다. 시대에 앞선 천재적인 능력을 갖춘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백남준 비디오 예술의 또 다른 특징은 끝없는 재생에 있다. 끝없는 재생은 시간과 공간의 유희로 연결된다. 1974년에 작업한 작품 “TV-Buddha”에서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의 부처와 녹화된 영상 속의 부처가 같은 시간에 존재한다. 공간은 실제의 공간과 기계 기술 속의 사이버 공간으로 나뉜다. 하나의 시간에 서로 다른 두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리얼과 라이브의 유희, 시간과 공간의 유희가 일어난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작품인 “Real Flower Live Flower” “Real Fish Live Fish”에서도 드러난다. 시각적 장치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문강좌 운영 전경 - 강의 중인 김은지 교수님

#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자산”의 선구자

“NFT는 무형의 세계인데 무형의 세계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입니다. 백남준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을 보면 이런 세계를 미리 예견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어요. ‘언젠가는 텔레비전 가이드북이 맨해튼의 전화번호북처럼 두꺼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기계 기술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보이는 형식이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상관이 없다’ 이런 얘기들을 하셨어요.”

-김은지 교수-

김은지 교수는 강좌에서 백남준의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정신을 설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NFT’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대체 불가능한 자산, NFT.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무제한 복제가 가능한데 이런 이미지의 원본을 만들어주는 것이 ‘NFT’이다. 이미지를 복제해갈 수는 있지만, 그 소유권은 NFT 원작자가 갖는 것이다. 2021년에 백남준의 “Global Groove” 이미지가 NFT로 제작돼 실제로 미술 경매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20세기에 비디오 예술로 완성된 작품이 21세기에 NFT로 재탄생한 것이다. 기술은 늘 개혁과 혁신에 의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작품이 보여지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던 백남준의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쯤이면 궁금해진다. 백남준의 남다른 상상력과 창의력, 시대를 내다보는 예지력의 근간은 무엇이었을까. 김은지 교수는 시작도 끝도 음악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모든 예술세계가 궁극적으로 최상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움직이는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비디오 영상을 시작으로 비디오 설치, 비디오 조각까지 비디오 아트의 세 장르를 완성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하지만 스스로는 비디오 조각가라는 명칭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난한 길을 걸으며 아방가르드를 추구해왔는데 왜 다시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이라는 이름에 자신을 옭아매느냐며 탐탁지 않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문강좌 운영 전경 - 질의응답 시간 진행중인 송재영 작가님과 김은지 교수님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흘렀지만, 백남준이 남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그의 예술 정신과 마주할 수 있다. 백남준이 1977년 자신의 생일을 앞두고 발표한 음반의 제목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처럼 거침없이 자신의 한계,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백남준을 기억해본다. 백남준의 삶과 작품세계를 친절하게 풀어낸 ACC 인문강좌 -“백남준의 볼 수 있는 음악, 움직이는 추상”은 ACC 채널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인문학적 사유의 시간, ACC 인문강좌는 2023년에도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온다.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ACC제공
예술 인문학 교육 미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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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새기다> & <ACC에서 튀르키예(터키) 공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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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영화관, 드라이브 인 ACC
목요일 저녁 퇴근길, 차를 운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부설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왜인지 모르게 조금 설레는 기분이다. 아마도 자동차 극장은 처음이라 그랬나 싶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소설도 지나고 이제는 5시만 조금 넘어가도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밤, 요즘 들어 아름다운 노을을 즐기며 어서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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