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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어린이 극장, 개굴개굴 고래고래 바다로 간 개구리


이슈&뷰


그림자를 준비하는 무대에
불이 꺼지고, 불이 켜진다.
어린 관객과 가족들의 시선이 모아진다.
앙상하게 마른 나무 두 그루...








사전적으로 그림자[shadow,影]는 빛이 지나가는 경로 위에 물체가 있을 때, 물체 뒤쪽으로 빛이 통과하지 못해 생기는 어두운 부분. 광원의 반대쪽, 즉 물체가 광원을 향하고 있을 때 물체의 뒤쪽으로 생기는 무늬₁입니다. 아마 평소에 우리는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지만, 잠자리에서 나의 그림자를 가장 확연히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불을 끄고 누워 수면등을 하나 켰을 때 드러나는 그림자를 가지고 놀아 본 경험은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놀던 그림자는 예쁜 공주도 되었다가, 무서운 호랑이도 되었다가, 요술을 부리는 마법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멋진 꿈의 세계로 안내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광대는 아니었을까요? 이제 더 이상 그림자의 세계를 탐험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일상에 지쳐 무겁게 늘어진 그림자가 보이네요. ACC에서 잃어버렸던 그림자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미지 설명

ACC와 극단 즐겨찾기,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다.






6월 26, 27일에 막을 올린 「개굴개굴 고래고래」는  [2021 ACC 아시아 스토리 어린이 창제작 공연 시리즈]의 제1편입니다. 아시아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어린이 공연 개발을 목표로 2020년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으며 아시아문화원과 극단 즐겨찾기가 만나 2년여의 시간 동안 완성도를 높여가며 제작한 작품입니다.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는데요. 베트남에는 ‘개구리가 울면 왜 비가 내릴까?’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개굴개굴 고래고래」는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힘찬 개구리 소리를 듣기 어려워진 도시의 아이들에게 개구리 구르구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이번 공연을 펼친 ‘극단 즐겨찾기’는 마임, 무용을 베이스로 한 피지컬시어터를 지향하고,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호흡하는 공연을 만들어가는 단체입니다. 다양한 예술장르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양식의 공연들을 시도하고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공연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멈추었던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긴 시간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여 선보이는 작품이라서 배우와 제작진 모두 관객을 만나는 기쁨이 더욱 컸다고 합니다. 특히나 36개월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인지라 어린 관객에게는 ‘생애 첫 공연 관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네요. 공연장에서 개구리처럼 힘차게 노래를 부르던 어린 관객들의 호응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닐 테지요.


개구리 구르구르는 왜 바다로 가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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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켜지고 무대에 선 세 명의 배우가 옷을 입습니다. 이제 세 광대는 호랑이, 코끼리, 사슴이 됩니다. 이곳은 물이 흐르고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이 어우러져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비가 내리지 않아 앙상한 나무와 목마른 동물들만 남은 사막이 되었습니다. “바짝바짝 메말라. 비가 내리지 않아 목말라~ 목말라~” 호랑이는 목이 말라 어흥 소리를 내지 못하고, 코끼리는 피부가 갈라지고 있고, 사슴은 안구건조증이 생겼습니다. 목마름에 신음하는 세 친구의 표정 연기에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불현듯 무대 밖에 사는 78억 인구와 생명들은 목이 마르면, 웃을 수 없을지도 노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관객의 손을 잡고 앉은 어른들 사이로 마냥 웃을 수 없는 사막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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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친구들을 위해 용감한 개구리 구르구르가 앵무새에게 방법을 묻습니다. 앵무새는 비를 내리게 하는 비밀을 알고 있는 ‘고래 선생님’을 찾아 바다로 가야한다고 알려주었고 구르구르와 세 친구는 바다로 향합니다.


그림자와 여백이 있는 무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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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인형으로, 때로는 그림자로, 때로는 몸짓으로 연기하기 위해 배우들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감추어 두었던 랜턴을 옷 주머니에서 꺼내 빛을 비추면 상대 배우가 펼쳐 든 종이막 위에 그림자가 펼쳐집니다. 그림자극이라고 하면 주로 빛을 뒤에서 비추고 오브제₂를 통과한 빛이 막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관객이 보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종종 배우들이 무대 바닥에 누워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이는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스스로 노출함으로써 그림자놀이를 하고 싶게 만드는 연출자의 의도가 깔린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림자에 단순히 평면이 아닌 입체적 효과를 주기 위해 층을 낸 기차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커다래진 기차 그림자가 객석을 향해 달립니다. 작은 것이 커다랗게, 커다란 것이 조그맣게... 규정된 크기가 없는 곳, 그림자의 세계입니다.

무대에 등장한 철재 사다리는 어느새 기차가 되어 바다로 향합니다. 바다행 열차에 올라탄 코끼리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국악기로 편곡된 미션임파서블 음악에 난데없는 판소리 진양조 가락이 뽑아져 나옵니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원하게 한 가락을 뽑아내는 코끼리의 노래를 따라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혹시 추억 속의 바다를 찾아갔다가 깜짝 놀란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 넓던 백사장이 깎여 좁디좁아졌고 쓰레기와 악취가 남은 바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구르구르와 친구들이 만난 바다도 그런 바다였습니다. 라면 봉지와 반짝이는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비닐 장막이 사그락거리며 조용히 객석으로 다가옵니다. 조명을 받은 비닐이 인간들이 벗은 허물처럼 조심스럽게 꿈틀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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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래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이로 접어진 하얀 배에 종이 인형들이 올라탑니다. 코끼리, 사슴, 호랑이...아이쿠! 개구리 구르구르가 타 보기도 전에 배가 뒤집어집니다. 오늘 지구는 선택된 동물만 탈 수 있었다는 노아의 방주가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좁은 배 때문에 결국 혼자서 길을 떠나야 하는 구르구르. 고래 선생님을 찾아 떠난 바닷길에서의 모험은 종이 인형을 오려 놀던 때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종이 인형으로도 하루가 벅차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접어 띄워 보낸 종이배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폭풍우에 휩쓸린 종이배. 바닷속에 빠진 구르구르. 다행히 고래 뱃속에서 ‘고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고래 선생님 또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에 숨구멍이 막혀 고통스러운 처지입니다. 구르구르는 어떻게 이 위기를 이겨냈을까요? 결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자와 소품, 배우들뿐이지만 여백의 무대에는 그렇게 환상과 추억이 가득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






‘카산드라의 저주’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과 아무도 자신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를 함께 받았습니다. 오늘날 기후변화를 예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그녀에 비유하곤 합니다.₃ 기후변화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언제부턴가 수없이 들어왔지만 불안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이 반복되고 있을 뿐 우리의 변화는 더딥니다. 오늘 이 공연이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인 것은 우리가 기후변화를 대하고 있는 막연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전에는 달라지지 않을 결말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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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한쪽에서는 가뭄을, 한쪽에서는 홍수를 겪어야 하는 지구의 불균형입니다. 지구의 온도를 낮춰주는 빙하가 녹아내리고, 뜨거운 대기는 정체되어 땅을 달굽니다. 풍요와 발전의 논리를 앞세우는 동안 순환할 수 없는 지구는 고장난 냉장고처럼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날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가 자초한 기후변화의 모든 영향을 체험하는 세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공연장을 나오는 길.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과 들뜬 발걸음 뒤로 묵직한 그림자가 스쳐갑니다. 이번 공연은 고래 선생님이 비를 내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행복한 결말이었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결말을 들려줄 수 있을지 그림자가 물었습니다.




1) 두산백과
2) 오브제[objet]: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일상생활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상징, 몽환, 괴기적 효과를 얻기 위해 돌, 나뭇조각, 차바퀴, 머리털 따위를 쓴다. -표준국어대사전.
3)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노승영 옮김, 북하우스, 2020.


  • 글. 박나나 tonana@hanmail.net
    사진. ACC 제공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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