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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웹진

미디어월 쇼케이스 아케이드 4WALLS 벽이 들려주는 여섯 가지 이야기


이슈&뷰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로 75m, 세로 16m에 이르는 거대한 미디어월은 2017년에 ACC와 접해 있는 전남도청 뒤쪽 벽 앞에 LED 스크린으로 설치했는데 미디어아트 활성화와 각종 공연정보와 콘텐츠 홍보에 활용하기 위하여 운용되고 있다. 이 거대한 미디어월을 이용해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 상황에서 안심하고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야외공간에서 「미디어월 쇼케이스 아케이드 4WALLS」 미디어아트 전시회가 기획되어 열리고 있다.
사실 미술과 벽과의 관계는 아주 오래되었다.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그림이 동굴벽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찰이나 성당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과 조각(부조)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이렇듯 대중들에게 열려있는 벽은 그림을 그리는 장(場)이라기보다 무언가를 말하는 즉 소통하는 장(場)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영상기술의 발전으로 벽 위의 이미지를 살아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시각적 상징과 기호로만 이루어진 기존 회화의 내레이션은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가능해졌다.

작년 12월 1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월 쇼케이스 아케이드 4WALLS」 전시는 5.18 광주와 4차 산업혁명, 기술과 기후변화 시대의 인간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아시아 지역 공모를 통해 여섯 명의 작가들을 선정했고 필리핀 작가 시린 세노(Shireen Seno)와 짐 룸베라(Gym Lumbera), 태국 작가 타이키 삭피싯(Taiki Sakpisit), 홍콩 작가 입육위(Ip Yuk-Yui) 그리고 한국 작가 양아치와 김웅용의 작품들이 한 달씩 미디어월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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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세노 「아이는 죽고, 아이는 놀고, 여자는 태어나고, 여자는 죽고, 새는 날아오고, 새는 날아간다」

처음 소개되는 작품은 시린 세노의 「아이는 죽고, 아이는 놀고, 여자는 태어나고, 여자는 죽고, 새는 날아오고, 새는 날아간다」이다. 제목에서부터 시간과 세대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 작업은 필리핀을 오가는 철새들과 토착 조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교차 편집을 통해서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찾아가는 것과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은 바늘구멍을 통해 숨어서 관찰하는 것 같은 영상 연출을 주목해야 하는데 작가는 이 제한된 시각(환경)을 통해 관객을 관찰자의 위치로 옮겨 놓음과 동시에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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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키 삭피싯 「Seeing in the Dark (어둠 속에서 보기)」

두 번째 작가 타이키 삭피싯은 태국의 어두운 현대사 위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Seeing in the Dark (어둠 속에서 보기)」는 지난 100년 동안 21번의 쿠데타가 있었을 만큼 혼란스러운 태국의 역사를 흑백 화면에 담담하게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영상은 태국의 현대사를 굴곡지게 만든 네 명의 정치인들의 행보와 국민들의 선택을 따라가면서 그 위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눈을 피해 태국의 국보와 금괴 등 각종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동굴을 탐사하는, 지금은 박쥐만이 가득한, 풍경을 오버랩 시키면서 혼란스러운 사회를 은유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모순의 근원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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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Sally Says (셀리는 말한다)」

「Sally Says (셀리는 말한다)」는 한국 작가 양아치의 작품으로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가상의 서울의 풍경을 통해 디지털 시대가 가져올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AI, 네트워크,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스마트시티 그리고 기본소득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이거나 미래에 당면할 문제들에 대한 낙관적 해법을 라이다(Lidar) 카메라, 열화상 카메라 그리고 디지털 편집을 이용하여 만든 가상의 도시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유토피아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 영상이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결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오지는 않을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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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용 「여자의 파장으로」

김웅용의 「여자의 파장으로」는 ACC 미디어월의 구조적 특성을 잘 이용한 작품이다. 75m의 긴 화면 전체가 고밀도 LED 화면이 아니라 좌우 양옆에만 고밀도, 고휘도 스크린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는 미디어월의 특성에 맞춰서 플롯을 짜고 연출한 점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살려주고 있다. 이어지지 못하고 시공간적으로 분절되는 영상 속에는 철모를 쓰고 총을 든 군인들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고, 완전한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끝나버리는 내레이션은 그날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고, 엔딩 부분의 어두운 밤, 고여 있는 듯 흐르는 강물 위를 부표처럼 떠가며 침잠해 들어가는 얼굴은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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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룸베라 「The Black dog which causes cholera (콜레라를 유발하는 검은 개)」

「The Black dog which causes cholera (콜레라를 유발하는 검은 개)」는 COVID-19과 관련된 작업으로 필리핀 설화에 등장하는 ‘아스왕’이라는 흡혈 괴수가 데리고 다니는 검은 개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100년 전 군도를 콜레라가 휩쓸고 지나갈 때 그랬던 것처럼 2020년 코로나가 퍼져 나갈 때도 텅 빈 새벽 거리에서 개들의 하울링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울링 소리와 함께 확대 재생산되어 가는 공포를 보고 짐 룸베라는 시각 언어학자답게 거리를 배회하는 검은 개의 사진을 찍고 벡터 이미지를 추출해서 7,000점의 개 이미지를 수집하여 패턴화시킴으로써 죽음과 공포의 실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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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육위 「☜ ☞」

7월 14일까지 진행되는 「미디어월 쇼케이스 아케이드 4WALLS」은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홍콩 작가 입육위의 작품은 지금까지 소개된 작업들과는 다르게 인터랙티브한 작업으로 관객들의 능동적 참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인덱스라 불리는 손가락 시각 기호를 왼쪽과 오른쪽 방향으로 나란히 배치한 제목 「☜ ☞」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작업은 정치적이다. 미디어월 맞은편에 흰색과 검은색 버튼이 설치되어 있고 관람객이 버튼을 누르면 게임처럼 작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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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화면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알려준 다음 ‘국유화’, ‘민영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과 같은 좌우 이념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용어들을 스피커를 통해서 하나씩 들려준다. 그러면 관객은 그것을 듣고 자신이 생각하는 용어의 성향을 좌우 버튼 중 하나를 선택하여 누르면 되는 것이다.

일견 간단하고 단순하게 보이는 이 인터렉티브 작업의 진면목은 뒤에 숨어 있는데 어떤 용어에 대해 관객이 선택한 좌우 성향이 데이터가 되어 서버에 저장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오른쪽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답으로 관객들이 왼쪽을 더 많이 선택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관객들의 참여가 데이터가 되어 축적되고 빅데이터가 되어서 용어의 성향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자 행동이라는 것을 입육위는 단순한 좌우 버튼 누르기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ACC에 와서 「☜ ☞」 작업에 참여하길 권한다.

최근 ACC의 미디어월을 철거하자는 목소리가 있는데 5.18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건물인 옛 전남도청의 뒷면을 가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미디어월은 전남도청뿐 아니라 ACC를 찾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있어서 단순한 미디어 플랫폼을 넘어서 소통의 장(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1980년 5월, 외부와 단절된 광주시민과 도청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던 시민군이 가장 바랐던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침묵해서 돌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들은 것을 우리가 말해야 할 때이다.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 중에 유산이 있고 유물이 있다. 새로운 세대와 함께 숨 쉬며 매 순간 새롭게 생명을 얻는 정신은 유산이 되고 문화가 되는 반면 유물은 세월과 함께 조금씩 낡아갈 뿐이다.



  • 글. 노순석 noriso@naver.com
    사진. 노순석
    ACC 제공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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