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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앙상블] 전시 리뷰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따스한 관계 맺기


이슈&뷰


전시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타이틀인 [포스트휴먼 앙상블]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았다. 처음 ‘포스트휴먼(Posthuman)’을 마주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영화 ‘터미네이터’ 또는 최근 개봉한 ‘듄’ 등 고도화된 기술력,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탈인간중심주의/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의 한 부분일 뿐, 최근에는 기계만이 아닌 비인간으로,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에 관하여 주목하고 있다 한다. 이에 ACC는 지난해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인간과 생태계 간의 ‘경계’를 탐구했던 전시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에 이어 본 전시에서는 ‘조화’에 대한 고찰을 제시해보는 것으로 작가들의 적극적인 목소리를 작품으로 담아냈다. 출품된 작품 대부분은 참여작가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기획자와 꾸준한 소통을 거치며 완성한 신작이기 때문에 관람 내내 전시주제를 상기하며 작품을 찬찬히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ACC 문화창조원 3관에서 4관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프롤로그’, ‘섹션 1, 2, 3’, ‘에필로그’의 세 구성으로 나뉜다. 마치 악장과도 같은 느낌인데 이는 전시 타이틀인 [포스트휴먼 앙상블] 중 ‘앙상블(Ensemble)’에서 의미를 찾아보게 한다. 여러 음색을 가진 악기가 아름다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합주곡처럼, 14인/팀이 참가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루카스 실라버스, 김제민 전시 전경(2021)
루카스 실라버스, 김제민 전시 전경(2021)

먼저, 전시의 시작이자 첫 번째 구성인 ‘프롤로그(prologue)‘에는 인도네시아 작가 루카스 실라버스(Lugas SYLLABUS)와 김제민이 매칭되어 전시 전체의 주제를 아우른다. 두 작가는 코로나가 일상이 된 시대를 맞아 인간 이후의 포스트휴먼에 대한 단상을 화폭에 그려내었다. 「달」 연작에서 인간 문명을 거대한 자연 풍경의 일부로 표현한 루카스 실라버스는 포스트휴먼의 모습을 신작 「Step of Life」로 상징한다. 작가는 포스트휴먼도 가족을 여전히 필요로 하며, 하늘로 길게 뻗어 있는 계단은 가족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이라 말한다. 자연과 문명이 혼합된 풍경과 중앙에 놓인 계단, 그리고 이를 힘차게 걷고 있는 듯한 인간의 뒷모습은 어려움 앞에서 늘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인간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인 바람이 담긴 듯하다. 이와 함께 김제민이 그려내는 포스트휴먼에서는 인간을 대신해 이름 모를 잡초가 일상의 풍경을 재치 있게 보여주고 있다. 안마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루의 행복」, 벤치프레스를 하며 체력을 기르고 있는 「끈질긴 잡초 생명력 기르기」는 자연물을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하며 본 전시의 키워드인 비인간적인 개체를 향해 관객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도입부에서 강렬한 첫인상을 느꼈다면 이제는 본문과도 같은 ‘섹션 1, 2, 3’로 넘어가 보자. 여기에서는 ‘비인간적인 존재란 무엇인가’를 질문으로 8인의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 식물, 곰팡이 같은 보이는 것부터 바이러스, 우주 속 미지의 존재 같이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이렇게나 다양한 존재들이 인간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감탄을 갖게 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런 다양한 존재들이 인간과 분리되지 않고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경하 「공터」 연작(2021)
이경하 「공터」 연작(2021)
레나 부이 「Kindred」(2021)
레나 부이 「Kindred」(2021)

이경하는 자신의 주변에서 생겨나는 공터를 주요 키워드로 이곳에서 자라나는 초록의 식물들, 그리고 흙으로 변모되어가는 인공 폐기물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록한다. 「공터」와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한 10점의 「공터드로잉」 연작은 하나의 화면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순환의 과정이 함께 일어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인 자연 간의 순환고리는 레나 부이(Lêna BÙI, 베트남)의 환상적인 체험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Kindred」에서 자신의 몸이 사원의 문을 통해 새로운 개체로 이어졌던 꿈을 스토리텔링의 형식으로 영상에 담아낸다. 이를 통해 인간을 만물의 중심이 아닌 귀속된 존재로 인정하고 10점의 연작 「Circulations」에서 인간과 문(포털), 자연과의 순환적 관계를 도식화한다.

황문정 「비인간 지구」 (2021)
황문정 「비인간 지구」 (2021)

황문정의 「비인간 지구」는 인간에 의해 소외되고 있으나 여전히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도심 속 쓰레기, 비둘기, 바퀴벌레, 쥐, 잡초 등의 비인간적인 개체들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들을 치우고자 하나 다시 생겨나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이를 게임적 요소로 반영한다. 보드 위 아파트 건물 모형 한가운데 위치한 전광판은 관객에게 직접 비인간들(구슬)을 청소하라는 미션을 준다. 관객이 구슬을 모아 열심히 치워보지만, 구슬들은 다시 보드로 올라온다. 제거하려 해도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는 비인간적인 존재들에 대한 인정을 몸소 느끼게 한다.

페이 잉 린 「바이오필리아」 (2021)
페이 잉 린 「바이오필리아」 (2021)
페이 잉 린 「바이오필리아」 (2021)

페이 잉 린(Pei-Ying LIN, 대만/네덜란드)의 「바이로필리아」는 ‘바이러스’에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를 조합한 단어로, A부터 Z까지 거대한 두루마기에 나열한 영어단어들은 지구상에서 발견된 바이러스 이름들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들을 음식 재료처럼 활용하여 2065년에 작성한 가상의 요리책이 놓여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바이러스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는 현대인과 달리 작가는 바이러스를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그는 바이러스와의 관계를 체험으로 옮겨가 실제 요리를 하고 섭취하는 것을 영상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양희아 「무한정원+△」 (2021)
양희아 「무한정원+△」 (2021)

섹션의 마지막에는 양희아의 「무한정원+△」으로 입장한다. 중앙에 있는 기하학적 모양의 조형물, 천장에서부터 반짝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설치물, 그리고 부유하는 무언가를 그린 드로잉들은 비인간적인 개체 중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우주 저 너머의 순수한 미지의 존재들을 상상해 보게 한다. 이 알쏭달쏭한 객체들은 책상 위에 놓인 기록물에서 확장된다. 이는 작가가 2년 넘게 ‘양자역학’을 키워드로 수많은 물리학도와 채팅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물리 덕후’의 기운이 짙어지는 대화가 흥미롭다.

앙상블은 어느덧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에 다다른다. 통로를 따라 4관으로 넘어가면 드론, 인공지능, 뇌파측정 등 융복합 예술이 공간을 채운다. 아마 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이곳에 입장하는 순간 ‘드디어 내가 상상하던 포스트휴먼 전시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4인/팀의 작가는 오늘날 인간의 여러 감정을 개체화하고 실체화하는 흐름을 반영하여 하나의 비인간적인 개체로 제안한다. 기계를 통해 감정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인간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과정에 관객을 직접 초대한다.

천영환 「into the mind(마음속으로)」 (2021)
천영환 「into the mind(마음속으로)」 (2021)
천영환 「into the mind(마음속으로)」 (2021)

천영환의 「into the mind(마음속으로)」은 진열장에 놓인 형형색색의 유리병들에 관객의 시선을 주목하게 한다. 그간 작가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감정을 재해석하여 담은 ‘이모션 백신’으로, 슬픔, 기쁨, 분노 등 당시의 감정을 적은 라벨이 다양한 이름으로 적혀있다. 뇌파측정기와 인공지능의 디코딩을 통해 참가자들의 감정을 색상과 향으로 재해석한 백신은 각자의 색이 미묘하게 달라 인간이 가진 감정의 무한함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게 한다. 이 백신 하나를 측정기에 올려두면 전방에 놓인 거대한 스크린이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듯 백신의 색을 따라 변화하는데, 마치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듯한 울림을 준다.

조은우 「AI, 뇌파 그리고 완벽한 도시 No.2」 (2021)
조은우 「AI, 뇌파 그리고 완벽한 도시 No.2」 (2021)

전시장 가장 안쪽에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조은우의 「AI, 뇌파 그리고 완벽한 도시 No.2」는 관객 뇌파의 특정 주파수를 감지해 고층건물처럼 세워진 타워를 밝게 빛내는 신기한 체험을 선보인다. 불을 밝히기 위해 직접 착용하는 뇌파측정기는 여러 뇌파 중 ‘창의적인’ 순간 발생하는 생체신호(데이터)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었다. 관객은 작가가 캐스팅한 뇌, 팔, 다리, 몸통과 같은 신체의 부분들을 바라봄과 동시에 홀로그램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뇌파를 빛에 연결하는 참여로 관계 맺기를 시도하게 한다.

도입부부터 마무리까지 전시를 관통하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필자의 공통된 감정은 ‘따스함’이었다.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를 리뷰에 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인간중심주의가 초래한 생태계의 교란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전 세계 질병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보다는 비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포옹으로 치유되길 바라는 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주변의 비인간적인 존재를 인지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을 기대하며 기획전시 [포스트휴먼 앙상블]의 리뷰를 마친다.

  • 글. 최보경 sasha.bochoi@gmail.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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