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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레퍼토리 공연 「호모 루피엔스」 리뷰 호모 루피엔스,
미래의 인류를 상상하다


#ACC


- 인류는 진화 [evolution, 進化] 중?
살아남으리라! 호모 루피엔스(Homo Lupiens)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인류는 진화 중일까요? 1859년 11월, 찰스 다윈은 「종(種)의 기원(起源)」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연선택과 생존 투쟁에서 선호되는 종족 보존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한 연구]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특히 진화론의 골자인 자연선택설은 생물의 어떤 종(種)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에,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해 버린다는 견해입니다. 곧, 개체 간에서 경쟁이 항상 일어나고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고 하는 설입니다.[1]

인간은 물질로서는 연약한 한 덩이 살점과 몇 리터의 피를 지닌 유기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인간에게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거부할 수 없는 존재 조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이성과 막강한 생존 본능으로 자연에 부딪쳐 왔습니다. 자연을 지배할 수 있을 듯, 영원히 멈추지 않는 바퀴를 열심히 굴려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바퀴, 문명이야말로 현대인을 위협하는 또 다른 자연이 되었습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선언했듯 이성과 문명이 만든 ‘제2의 자연’이 이제는 인간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혹시 AI[2]를 알아야 하고, 메타버스[3]에 올라타야 하고, 비트코인[4]과 NFT[5]에 투자해야 하고, AR[6], VR[7] 기술에 적응해야 하고, 변화하는 디지털 조작에 뒤처지지 않을까 끙끙거리는 것이 혹시 현재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게다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비대면 접촉을 부단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키오스크[8] 앞에서 머뭇거리면서도 점점 적응해가는 우리를 봅니다. 21세기와 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적응하는 형질을 선택하는 중일까요? 인류의 나무는 어디로 가지를 뻗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중인가요? 게다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 로봇 기술은 인간에게 불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진화의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숭이가 떠오르는 유인원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모습으로 변화했음을 생각하면 현대인이 기묘하고 낯선 미래 인류의 모습을 그리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꾸준히 고민해 온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이번 공연의 연출자인 김경신은 그동안 연작 형태로 ‘호모 시리즈’를 발표해 왔습니다. 「호모 루덴스」[9], 「호모 파베르」[10]가 오늘의 「호모 루피엔스」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전작들을 거쳐 오며 미래에는 유희의 인간이 지식의 인간과 도구의 인간 그리고 로봇까지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호모 루덴스(Homo Ludens)와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합성어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더하여 호모 루피엔스(Homo Lupiens)라는 인간 유형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1. 서막: 새로운 전쟁, 금속 막대를 든 사람들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어둠과 정적을 깨고 긴박한 경보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빙빙 도는 불빛이 어둠 속에서 위협적으로 회전합니다. 무대의 정중앙에 놓인 금속 막대, 기둥은 객석과 무대에 빛을 쏩니다. 문명의 상징인 듯 차갑게 번쩍이는 금속들이 무대를 누비자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금속 막대를 집어 들고 휘젓는 사람들과 이에 쓰러진 사람들. 2050년, 인간이 만들어 낸 로봇들이 지구를 점령한 것입니다.

따뜻한 조명으로 바뀌면 시간은 이내 과거로 돌아갑니다. 얼굴을 베일로 덮은 사람들이 다함께 춤을 춥니다. 매우 규칙적인 리듬의 음악에 맞추어, 이내 바둑판같은 배열로 늘어서더니 분주하게 교차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바쁜 아침 출근길의 모습처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의자에 앉은 그대로인 듯 수직과 수평의 경직된 각도로 보행하는 모습은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어느 직원의 익숙한 자세인 것도 같습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하게 살아 있기 위한 전쟁을 합니다. 카드값을 내고, 보험료를 내고, 차를 바꾸고, 적금을 넣는 안온한 삶에 퇴출되지 않도록 바둑판 위에서 춤을 춥니다.



2. 탈출_경쟁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푸른 조명 아래 놓인 탁자. 그 덫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인간들은 다양한 방법을 도모하고 생존을 위해 협력과 논쟁을 벌입니다. 부딪치는 사각형 탁자의 충돌음. 베일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무용수들.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기 얼굴을 발견한 것일까요?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과 땀방울이 튀는 얼굴에 다급한 인간의 고통스런 눈빛이 전해옵니다.

ACC 극장1의 가변형 무대가 극이 펼쳐지는 중간중간 전환됩니다. 무대의 단이 높낮이를 달리하여 변화하고, 전면과 후면에 겹으로 배치된 무대세트가 동시에 펼쳐지기 때문에 무대에는 2개의 이야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중심이 되고 긴박한 이야기는 전면의 공간을 주로 이용합니다. 특히 건물을 상징하는 탈출 구조물이 등장하면 무용수들은 미로 같은 무대를 뛰어다닙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바퀴가 달린 사각형의 무대 조형물이 어지럽게 충돌합니다.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산소호흡기가 달려옵니다.



3. 인간은 신이 되려 하는가? 창의(創意)와 창조(創造)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처음에는 온통 베일에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었지만 어느새 얼굴을 드러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옷을 입은 사람과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단 한 종류의 인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인류가 공존하는 미래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가위를 든 사람이 옷을 찢어내자 마주선 인간을 닮은 또 하나의 존재가 탄생합니다. 현재 인류는 유전자를 변형 또는 조작하는 기술에 이르렀습니다. 재조합 DNA 기술이란 특정한 유전형질을 갖는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제거하는 조작을 통해 새로운 재조합 DNA를 만드는 것입니다. 유전자를 수선하는 것은 특정 표적 위치의 DNA를 정확하게 절단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때 사용되는 제한효소, 징크핑거뉴클라아제, 탈렌, 크리스퍼 카스 등을 가위에 빗댄 것이 유전자 가위(gene scissor)입니다.[11] 이제 인간은 이 가위로 인간을 재단하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의 가위를 얻은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인류와 새로운 인류의 전쟁은 완성된 예고편이었습니다. 모두가 미쳐가는 듯한데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숙연한 노랫소리.... 모두가 춤을 멈추면 한 마리 종이새가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한 줄기 빛을 따라갑니다.



4. 해체되는 인간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힘겹게 출구를 찾아 탈출하지만 여전히 그 바깥도 아수라장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무용수들은 춤을 멈추고 그들의 응시 속에 한 남자가 어둠 속을 천천히 걷습니다. 그를 비추는 작은 불빛들은 미래의 인류를 위한 축복의 빛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로봇이든 복제인간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어쨌든 살아남은 것은 호모 루피엔스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걸어 후면무대로 향합니다. 무대 천장에서 서서히 인체 모형이 내려옵니다. 절단되고 해체된 인체가 상징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 “너는 누구인가,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
움직이는 인간, 멈추지 않는다.

ACC 레퍼토리「호모 루피엔스」공연 사진

무용단 언플러그드 바디즈(Unplugged Bodies)의 호모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호모 루피엔스(Homo Lupiens)」에서 호모 루피엔스는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과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담은 용어이기도 합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은 곧 끝없는 투쟁과 탈출의 이어짐입니다. 움직이는 인간은 대체 무엇을 지배하려 하고, 무엇으로부터 살아남고자하는 것일까요?

작품이 공연되는 내내 어떤 내레이션이 배경처럼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인가?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춤추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듯 아무도 주목하거나 답하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인류는 달나라도 가고, 인공 태양도 만들어내고, 유전자도 잘라내는 인류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대답하지 못하는 인류이기도 합니다. 무대의 불은 꺼졌지만 무대 밖 인류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1) 찰스 다윈 [Charles Robert Darwin] (두산백과)
2)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3) metaverse: 웹상에서 아바타를 이용하여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는 따위처럼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이르는 말.
4) Bitcoin: 지폐나 동전과 달리 물리적인 형태가 전혀 없는 온라인 디지털 화폐
5) 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블록체인의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암호 화폐)
6) 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의 약자.
7) Virtual Reality: 가상 현실의 약자.
8) kiosk: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
9) 요한 하위징아의 「유희의 인간(Homo Ludens)」에서 영감을 받아 2019년 MODAFE(국제현대무용제)에서 초연한 작품.
10) 앙리 베르그송의 ‘도구의 인간(Homo Faber)’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도구에 의해 지배되는 역설적인 세상을 인간의 본성과 욕망으로 들여다 본 작품.
11) 유전자 가위: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하여 해당 부위의 DNA를 절단하는 제한효소로서, 인간 세포와 동식물 세포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사용된다.(두산백과)

  • 글. 박나나 tonana@hanmail.net
    사진. ACC 제공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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