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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전시작가 임용현 경쾌함과 진지함, 그 상상력의 진폭


아티스트

임용현 작가

미디어아티스트 임용현은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진지하면서도 유희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영역을 여러 표현 매체로 다루는데, 그중에서도 프로젝션 맵핑과 영상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하면서도 디지털 작업에만 무게를 두지 않고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 기술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 은근한 풍자와 비판 및 미디어가 가진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미술작가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보통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계속 작업을 해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분야를 전공하거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미술의 매력에 빠져서 미술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늦깎이로 미술세계에 뛰어든 사람들이 대체로 작품 활동에 매우 열정적이다. 아마도 내면에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예술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임용현 작가 역시 늦깎이로 미술을 전공하고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미술작가가 되기 전에 예술과 전혀 관련없는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멀티미디어와 영화를 공부했던 그가 처음에 몸담았던 곳은 영화계였다. 조감독으로 활동을 했지만 추진하는 작품마다 제작이 무산되어 제대로 입봉도 못한 채 궁핍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당장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영상을 창작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케이블TV의 피디(PD)였다. 피디로서 그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회사의 제작 방침과 공장식 제작 환경은 그와 맞지 않았고 순수한 창작에 대한 갈증만 커져 갔다.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묘하게도 방송 제작 중 알게 된 미술작가가 그에게 미술을 공부해보라고 권유했다. 그 미술작가의 한마디는 마치 운명의 큐 사인(cue sign) 같았다. 그는 뭔가에 홀린 듯 서둘러 사표를 쓰고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런던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임용현 작가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미디어아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영상 관련 기기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와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미디어아트를 하며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가 영화와 TV방송 현장에서 경험하며 관심을 갖게 된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진 미디어의 양면성'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 나갈지 고민했다. 이 주제는 스크린에 보여지는 다듬어진 이미지와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스크린 뒤에서 벌어지는 행위들 사이의 괴리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즐겨 소비하면서 점점 미디어에 중독되고 의존하게 되는 모순된 현상을 보며 떠올린 것이었다.



「Weight」 3D Projection Mapping / Wood, Projector / Video Loops / 60x60x60cm, 2016
「Weight」 3D Projection Mapping / Wood, Projector / Video Loops / 60x60x60cm, 2016


2012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임용현 작가는 영상, 입체, 설치, 음향 등이 결합된 작품들을 여러 전시회를 통해 선보였는데, 특히 입체적인 대상물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기술을 이용한 작품들이 주목할 만하다. 그런 작품으로는 2016년작 「Weight」가 대표적이다. 이 입방체 모양의 작품에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처음엔 레이저 라인이 번쩍이다가 금속덩어리가 되더니 이내 흩어지고 100달러 지폐로 바뀐다. 이어 지폐는 구겨지듯 사라지고 맥주가 차오르며 거품을 일으킨다. 그리고 맥주는 금으로 바뀐 다음 'MONEY'라는 글자와 레이저 라인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WEIGHT'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덩어리로 변하더니 마침내 폭파되어 사라진다. 이렇게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경험과 느낌이 비유적으로 표현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돈과 금속덩어리는 그가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답답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맥주와 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직장인이었을 때와 달리 힘든 전업작가 생활을 하면서 맥주 한 잔도 금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WEIGHT'라고 새겨진 돌덩어리가 폭파되는 장면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전업작가 생활이지만 삶의 무게처럼 느껴지는 돌덩어리를 깨트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마음임을 암시한다. 사람들이 돈이라는 사회적 매개체를 이용하는 걸 넘어 돈의 노예처럼 되어 가는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다.



「Culture Code. C」 3D Projection Mapping / Empty Can, Wood / 4min 23sec / 300x205cm, 2017
「Culture Code. C」 3D Projection Mapping / Empty Can, Wood / 4min 23sec / 300x205cm, 2017


앞에 소개한 「Weight」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비유적인 이미지로 치환한 작품이라면 2017년작 「Culture Code. C」는 대중적인 음료인 코카콜라를 주요 소재로 삼은 유희적인 작품이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 이미지를 작품 소재로 다룬 이후로 코카콜라는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앤디 워홀은 코카콜라를 민주주의적 상품으로 보았는데, 부자든 빈자든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은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시각과 조금 다르게 임용현 작가는 예술과 코카콜라의 공통점에 주목했다. 예술과 코카콜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쾌락을 제공하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쉽게 마실 수 있는 코카콜라처럼 즐겁고 유쾌하게 감상할 만한 미디어아트를 제작하였다. 작품을 보면 여러 층으로 설치된 선반에 많은 흰색 캔(Can)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그 흰색 캔들과 배경의 벽면에 영상이 투사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킨다. 코카콜라 캔으로 시작해서 대중스타들, 세계 각국의 국기 등 현대사회의 대중문화나 소비문화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경쾌한 음향과 함께 이어지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코카콜라라는 잘 알려진 소재 때문에 가볍게 만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100개가 훨씬 넘는 코카콜라 캔 속의 내용물을 깨끗하게 비우는 작업이 만만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캔 뚜껑을 열지 않고 말끔히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상 사이즈에 맞는 선반을 제작하고 그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캔들을 고정한 후 여러 영상장비를 활용해 스캐닝을 하여 준비작업을 마쳤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영상 제작과 음향 작업 등을 하고 빔 프로젝터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보면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Miracle」 3D Projection Mapping / Canvas, Beam Projector, Mac Computer / 2min 56sec, 1080p / 130x130cm, 2018


임용현 작가가 생각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진 미디어의 양면성'이라는 주제는 그의 작품에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인 현상을 관찰하거나 삶의 문제들을 대할 때 필터처럼 작동하면서 작업 구상의 단초 역할을 하게 된다. 「Miracle」(2018)에서도 그런 면을 볼 수 있다. 2018년 북경창작센터에서 입주작가로 작업을 하는 동안 그는 스마트폰의 편리성과 유용성에 열광한 중국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없겠네, 스마트폰 안에 모든 것이 있으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문득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이 등장하는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태양의 이미지를 만들고, 무료로 제공되는 달의 전개도를 가공하여 달의 이미지를 새롭게 제작하였다. 하지만 그는 태양과 달을 분리하지 않고 혼합하였다. 「Miracle」에서는 차가운 달이 점점 타오르며 뜨거운 태양이 되었다가 다시 식어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과거에 신앙의 대상이었던 태양과 달을 더는 바라보지 않고 스마트폰 속의 정보에서 살 길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디지털 시대에 바라볼 만한 가상의 태양과 달을 제시한 셈이다. 앞에 소개한 「Culture Code. C」가 경쾌하고 감각적인 면이 강하다면, 「Miracle」은 매우 묵직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띤다고 할 수 있다.



「Apple Consume」 Holographic Fan / Video Loops, 12 Edition / 2019
「Apple Consume」 Holographic Fan / Video Loops, 12 Edition / 2019


2019년에 임용현 작가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12개의 영상 박스로 구성된 「Apple Consume」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온전한 사과가 한 입씩 베어먹히면서 점점 줄어들었다가 다시 온전한 형태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런데 사과 이미지를 살펴보면 빔 프로젝터나 티브이 모니터를 통해 재생되는 영상이 아니다. 각 박스마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막대들이 있는데, 그 막대들에 박혀 있는 수백 개의 LED램프들이 컴퓨터의 신호에 따라 빠르게 깜박이며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과 이미지는 그가 오래전부터 작업에서 다뤄 온 주요 소재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 소멸했다가 다시 생성하기를 반복하는 사과는 기독교의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에덴 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는데,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죄로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그들의 자손인 인류는 그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선악과를 먹은 후 죄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류의 모습과 미디어의 맛을 보고 중독되어버린 현대인의 삶이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즉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사과는 새로운 미디어를 끝없이 생산하고 소비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하는 셈이다.



「달콤한 트루먼 Sweet Truman」 Single Channel Alpha Video / Web Cam, Color, Sound, Styrofoam, Urethane / Video Loops 3min 15sec/ 200×200cm, 2021
「달콤한 트루먼 Sweet Truman」 Single Channel Alpha Video / Web Cam, Color, Sound, Styrofoam, Urethane / Video Loops 3min 15sec/ 200×200cm, 2021


지난해부터 시작된 팬데믹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더라도 안전을 위해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사람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연대하며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감시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 감시와 통제 사회의 명암을 주제로 ACC는 지역아시아작가전 [친애하는 빅브라더: 다시는 결코 혼자일 수 없음에 대하여]를 개최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 함께 이 전시회에 초대된 임용현 작가는 「달콤한 트루먼」(2021)을 출품하였다. 그는 팬데믹 이후 감시와 통제 사회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태도에서 이중적인 면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공적인 감시체계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전하게 관리되는 사회 속에 살아간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달콤한 감시'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며 그는 '우리 모두가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거대한 무대 세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자문하였다. 그래서 작가는 눈동자 모양의 둥근 영상 속에 두리번거리는 감시카메라들과 모니터의 정보만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무인기들을 등장시켜서 세상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여기서 첨단기술로 제작된 감시카메라들과 살상용 무인기들은 감시체계의 냉혹함과 폭력성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둥근 영상의 중심에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객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관객 위에 설치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내보내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상화된 감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임용현 작가의 작품들은 경쾌하면서 묵직하고 발랄하면서도 진지하다. 그런 작품들 속에서 하나의 고정된 형식을 찾기는 어렵다. 전달하려는 이야기나 다루는 소재에 따라 적합하고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고, 전혀 다루어 보지 않은 재료로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을 그가 즐기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성향은 작업에 영감을 주는 여러 사회적 현상이나 미디어를 둘러싼 현상들을 바라볼 때도 이어진다. 그 현상들의 드러난 면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다양한 문제들까지 열린 시각으로 탐구하면서 작업 구상을 해 나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그는 꿈에 그리던 개인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공간적인 한계 때문에 해 보지 못한 작업들을 마음껏 풀어낼 생각에 들떠 있다. 새로운 작업실에서 반쯤 누운 편안한 자세로 가슴 위에 메모지 한 뭉치를 올리고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있는 그가 선보일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임용현 08anaki@naver.com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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