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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 ACC아시아창작스튜디오
청년작가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리뷰 새로운 지구에서 사유하기


아티스트

앞으로 지구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져서 인류에게 종말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 이런 상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전 지구적으로 기후 위기, 환경 오염, 팬데믹 등을 겪으며 미래에 대한 불길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이미 여러 SF영화에서는 사람들의 상상과 우려를 실감나게 그려 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2014)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는 환경 변화로 인해 황폐해진 지구와 식량난에 허덕이며 절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가 등장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주 탐사팀은 토성 뒷면의 웜홀을 통해 인류가 이주할 만한 행성을 찾아 나선다. 한편 영화적 상상이 아닌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와 유사한 외계 행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가깝게는 화성에서부터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들까지 연구 중이다.

전시포스터

이런 흐름 속에서 미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새로운 지구행성으로의 이주]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회가 답하였다. 조주현 큐레이터(연세대 겸임교수)가 총괄기획한 이 전시회는 2021년 하반기 ACC아시아창작스튜디오 청년작가 레지던시 결과보고를 위해 꾸려졌는데, 파괴된 지구 환경에서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다종다양한 존재들이 거주하는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면서 여러 문제에 대해 탐구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일반적으로 레지던시 결과보고전이라면 작가들이 저마다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작품을 보여주기 마련이지만, [새로운 지구행성으로의 이주]는 특정한 주제와 그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미 레지던시 공모 단계에서 특정한 주제를 내걸고 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작가 8팀(9명)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레지던시 과정에서 작가들이 카이스트(KAIST)에 재직 중인 인류학자, 과학기술연구자, 고고미술사학자와 함께 각각의 연구 주제를 토론하며 작업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들은 어떤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을까? 지난해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 전시회가 열렸던 ACC 복합2관 커브(CURVE) 전시장으로 가서 작품들을 만나보자.



신재은 「Twins」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신재은 「Twins」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5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닥과 공중에 설치된 크고 작은 모니터들이 보인다. 공중에 매달린 모니터에서는 동물의 눈이 껌벅거린다. 도축되기 10분 전에 촬영한 돼지의 눈이다. 그 아래 놓인 커다란 모니터에서는 한 남성이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을 하듯이 돼지 한 마리를 해체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뒤쪽의 작은 모니터에서는 돼지머리에서 코와 귀를 잘라서 먹는 작가의 행위가 담담히 펼쳐진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의 벽면에는 돼지고기가 소시지로 가공되는 영상이 흐르고, 한쪽의 테이블에는 돼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나리오도 놓여 있다. 이 영상설치 작품은 신재은 작가의 「Twins」이다. 작가는 인간과 가장 비슷한 유전자와 높은 지능을 가진 돼지를 인간의 쌍둥이 형제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단지 인간을 위해 식용, 의료용, 산업용 등으로 소비되는 돼지의 존재를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또한 인간과 돼지의 모습을 통해 포식자와 피식자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불균형한 관계를 꼬집는다.



강민희 「u:m」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강민희 「u:m」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신재은 작가의 영상설치 작품 옆에는 강민희 작가의 「u:m」이 있다. 독립적인 직방체 공간 속에 설치되어 있는 이 작품은 관객의 행동에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체험하려면 관객은 우선 마이크처럼 생긴 센서를 들고 사방이 천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부 공간의 한쪽 천 위에는 작은 입자들이 불규칙적으로 떠다니는 영상이 보인다. 관객은 그 앞에 서서 센서에 대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반복하면 된다. 그러면 영상 속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들이 순식간에 변화를 일으킨다. 마치 산의 능선들이 출렁이는 듯하다. 이는 관객의 호흡이 센서를 통해 데이터화되어 영상으로 변환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중국의 반고(盤古) 신화를 떠올렸다. 반고는 혼돈 속에서 하늘과 땅을 갈라 놓은 존재로 그가 죽자 그의 육신은 해, 달, 산, 강 등 자연으로 변했는데, 그중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고 한다. 반고 신화처럼 강민희 작가의 「u:m」 역시 인간과 자연의 연결성과 일체성을 깨닫게 한다.



박지수 「Hz Stalagmite, soundscape of Gwangju, 2121」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박지수 「Hz Stalagmite, soundscape of Gwangju, 2121」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박지수 「Hz Stalagmite, soundscape of Gwangju, 2121」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전시장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조형물 두 개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주변에선 잡다한 소음이 들린다. 그 소음을 자세히 들어보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이 작품은 박지수 작가의 「Hz Stalagmite, soundscape of Gwangju, 2121」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는 소음 공해에 주목한다. 특히 어두운 동굴 속에서 수천 년에 걸쳐 자라나는 석순처럼 인류세의 소음들도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 가시적인 형태로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 무등산, 광주천, 양동시장, 광주공항 등 광주 지역의 자연, 상업, 산업 지구별로 소음을 채집한 다음 그 소리의 파동 그래프를 입체적인 조형물로 변환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형물은 빛을 받으며 특정 지역에서 채집된 소음을 들려준다. 그리고 옆에 놓인 또 하나의 둥근 조형물은 비슷하지만 불쾌하고 기이하게 변형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소음들이 석순처럼 자라난 100년 후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소음이 만들어낸 광주의 음향 풍경을 보여준다.



황선정 「Tanhamu Project」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황선정 「Tanhamu Project」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박지수 작가의 작품 뒤로는 황선정 작가의 「Tanhamu Project」 연작들이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펼쳐져 있다. '탄하무(Tanhamu)'는 작가가 새로이 만든 고유명사로 '신체, 마음의 욕구나 목마름'을 의미하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탄하(Tanhā)'와 '춤추다'를 의미하는 한자 '무(舞)'가 조합된 것이다. 그는 탄하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과 다른 종의 소통과 연결을 되새기는 작업을 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군균 시스템과 나무들의 네트워크를 연구하였고 인간들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정보를 공유하듯이 식물들은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는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공생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이번 결과보고전에서 균사체와 인간의 모습을 합성하여 새로운 종을 보여준다. 특히 다양한 균사체와 인간의 이미지를 학습한 AI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영상은 낯선 행성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나혜수 「Pintment」 판넬, 6,500x1,600x2,000mm, 2021
나혜수 「Pintment」 판넬, 6,500x1,600x2,000mm, 2021

전시장 중간에는 건축을 전공한 나혜수 작가가 전시 주제로 촉발된 상상을 새로운 건축 이미지 「Pintment」로 보여준다. 그는 요즘처럼 황사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보다 더 심각한 재난 이후의 건축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 상상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신원이 확실하고 건강한 이들끼리 모여서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들의 그런 노력은 공상적인 건축 형태로 진화한다. 우산을 펼친 형태와 비슷한 이 건축물에는 인간들의 삶에 필요한 여러 시설과 튜브 형태의 통로가 구비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건축물들은 지하로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이동도 가능하다. SF영화에 등장할 만한 이 건축물은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 온 공기의 중요성과 그 공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호흡 및 삶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장은하 「Invasive Species Behind the Notoriety: Multi-directional Narratives for Abundant Futures」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장은하 「Invasive Species Behind the Notoriety: Multi-directional Narratives for Abundant Futures」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나혜수 작가의 건축 이미지를 지나면 신진연구자 장은하의 「Invasive Species Behind the Notoriety: Multi-directional Narratives for Abundant Futures」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을 영상과 소논문 등으로 보여주는데, 그 내용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은 퇴치되어야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재검토하면서 그런 인식을 어떻게 하면 다른 관점으로 바꿀 수 있을지 연구한 것이다. 전시 영상에서는 아시아에 식량자원으로 유입된 외래종인 한국의 '황소개구리'와 대만의 '아프리카대왕달팽이'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는 동물들을 외래종과 토종으로 구분하는 것을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개념으로 보면서 인간과 외래종이 어떻게 의미 있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그리고 대만 작가 장은만의 영상 작품에서 해답을 찾는다. 그 영상작품에서 타이완 부족이 외래종을 전통적인 요리법에 적용하면서 삶에 활력을 주는 종으로 인정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생태계의 시각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셈이다.



임의그룹 「Heart of the city」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임의그룹 「Heart of the city」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1

신진연구자 장은하의 작품 건너편에는 작가팀 임의그룹의 「Heart of the city」가 자리잡고 있다. 퍼포먼스 영상이 재생되는 커다란 스크린 앞에는 비닐, 의자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어쩐지 삭막하고 휑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분위기는 퍼포먼스 영상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공사 중인 건물이 등장하는 흑백의 영상은 한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공터 앞에 묻어둔 집 열쇠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그 공터에 건물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당황한 남자는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이 집안에 있어서 그는 당장 자신을 증명할 방법도 없고 더구나 집 주소마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꼼짝없이 노숙자가 될 처지에 놓인다. 이 가상의 이야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뒤에 남겨진 사람들, 즉 불가항력적이거나 자발적으로 도태와 고립의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 관해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윤재 「Only True Voyage – part.2」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이윤재 「Only True Voyage – part.2」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이윤재 「Only True Voyage – part.2」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1

전시장의 맨 마지막에는 이윤재 작가의 「Only True Voyage – part.2」가 기다리고 있다. 두 쌍의 모니터와 두 개의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한결같이 추상적인 빛의 이미지들이 조금씩 움직인다. 그것은 도로 위의 자동차 불빛들이다. 일견 6개의 영상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각기 다르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써야 했는데, 2018년 어느 날 밤에 안경을 벗고 길을 걷다가 자동차 불빛들이 평면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시각 경험을 하였다. 그는 이 특별한 경험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가 동일한 대상을 조금씩 다르게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눈에 관해 연구하며 시각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번 레지던시 기간 동안에 그는 두 사람의 양쪽 각막 형태를 그대로 본뜬 카메라렌즈 필터들을 제작하여 같은 장소에서 영상을 촬영하였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각막 형태를 가진 인간들이 각자 고유의 시각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함께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카이스트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
카이스트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

지금까지 소개한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전시장 중간에는 카이스트 연구자들의 연구관련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서 전시 작품과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연구 내용은 '재야생화(최명애)', '공기위기를 견디기 위한 과학(전치형)', '인류세와 생존 건축(조현정)'에 대한 것으로 지난해 11월 27일과 28일에 작가와 카이스트 연구자 들이 함께 참여한 '온라인 리서치 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리서치 쇼 영상

이 레지던시 결과보고전은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한다는 상상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의 터전인 지구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차가운 합리주의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경도된 채 지구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과 동등하게 공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전시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인류세에 예술의 역할과 예술가의 상상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전시이다.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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